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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Oct 26. 2024

글 읽기만큼 쉬운, 그림을 보는 방법

아키타 마사오, <그림을 보는 기술> 서평


미술관이 편의점만큼 실용적인 곳이었다면 아키타 마사오의 <그림을 보는 기술>은 실용서로 분류되었을 책입니다. 책은 미술관에서 그림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그림의 구조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예시를 들어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같은 예시를 여러 번 사용하며 복습합니다. 비슷한 류의 미술 입문서(?) 처럼 예술가의 삶이나 미술사의 일화를 꺼냈다면 읽기는 더 재미있었겠지만, 이 책은 재미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독자는 모르는 화가를 마주처도, 사조에 배경 지식이 없어도 이전보다 오래 한 그림을 감상할 수 있게 됩니다.


표지 출처: 알라딘: 그림을 보는 기술


<그림을 보는 기술>이 알려주는 메시지는 그림의 모든 곳에 화가의 의도가 서려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멋진 풍경일지언정 인간의 감상과 무관한 자연과는 반대입니다. 화가는 무엇을 어떤 구도로 그릴지 계산한 후에야 그림을 그립니다. 관객은 화가의 의도를 모두 파악할 수는 없지만 어떤 그림은 ‘느낌이 좋아서’ 머무르게 되고, 시대를 넘어 관객의 사랑을 받은 그림이 명화로 남게 됩니다.


책을 읽고서, 그림을 보는 것이 글을 읽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이 짧은 서평을 쓰는데도 문단의 흐름을 고려해서 글을 쓰고, 독자에게 더 잘 읽히도록 문장을 다듬은 후 내놓으니까요. 그러나 그림은 글만큼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기에, 그림의 의도를 파악하는 일은 소설의 주제를 읽어내는 것보다 훨씬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까치 서포터즈라는 좋은 기회로 책을 읽었고, 책에 나온 대로 그림을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서평을 기회로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올해 초, 보스턴에 출장을 갔다가 보스턴 미술관에 들렀습니다. 인상파 관도 작게 있었는데, 그곳에 다른 그림들은 기억도 안 나게 만든 강렬한 그림이 한 점 있었습니다.



La Japonaise (Camille Monet in Japanese Costume) – Works – Claude Monet – Collections Search – Museum of Fine Arts, Boston


모네의 아내가 기모노를 입은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왜 인상적이었을까요? 당시에는 다른 그림보다 크기가 커서라고만 생각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림을 보는 기술>을 읽었으니 그 이유를 말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녹색 벽을 배경으로 새빨간 기모노의 대비가 선명합니다. 화랑의 다른 그림들은 풍경화이니 이렇게까지 색의 대조가 강하지 않지만, 이 그림은 모네가 직접 보색을 골랐을 그림입니다. 벽에 붙은 부채도, 아내가 든 쥘부채도 청색과 붉은 색이 반복해 나오며 통일감을 주지만, 기모노와 벽만큼 강한 채도를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림에서 제일 먼저 눈에 가는 것은 얼굴입니다. 금발 아내의 얼굴과 기모노에 있는 일본풍 무사의 얼굴입니다. 시선은 왼쪽 위를 올라가 시작해 오른쪽 아래로 끝납니다. 배경의 부채가 아내의 몸짓과 함께 사선을 그리기 때문입니다. 그림 밖으로 나가려는 시선을 다다미 바닥에 떨어진 부채가 잡고, 기모노의 화려한 아랫단으로 이끕니다. 


아내의 몸은 캔버스 중앙을 나누고 있지만, 얼굴을 정중앙에 두지 않고 손에 든 부채와 대칭이 되도록 위치했습니다. 허리춤의 무사도 얼굴을 왼편에 두고 근육이 눈에 띄는 팔을 오른쪽에 두어 균형을 나누고 있습니다. 배경의 벽과 바닥도 직사각형의 캔버스를 정사각형과 아래로 나누고 있습니다. 


시선을 따라가며 구조를 읽으니 모네가 기모노의 반짝이는 금실, 비단의 매끄러운 질감, 그와 대비되는 다다미의 거친 바닥까지도 붓질만으로 보여주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화랑에서 걸린 그림 중 가장 모네답지 않은 그림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것은 대조되는 색상 뿐 순간의 인상을 붓질로 재현한 건 같았습니다.


미술관에서 직접 그림을 볼 때보다 서평을 쓰면서 훨씬 깊게 그림을 보았습니다. 인상파 그림은 인상이 좋아서(?) 좋아했는데, 책 덕분에 그림이 왜 좋은지 길게 감상하고 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장처럼 직접 와닿지 않으니 천천히 오래 보아야 하지만, 정말로 구조가 있을까? 하는 의심 속에서 정말 그렇네! 하고 답을 찾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해외를 가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꼭 들렀는데, 그림을 보는 방법을 미리 알고 갔다면 훨씬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을텐데 아쉬울 정도입니다. 책 한 권으로 감상의 깊이가 달라지는 책이기에 기꺼이 추천합니다.



본문에도 언급했지만, 까치글방 서포터즈로 책을 제공받아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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