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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 Sep 26. 2019

유학생의 프랑스 집밥: 콩나물밥

콩나물밥과 참치 양념간장



  나는 야채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기나 생선을 썩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야채는 대부분 싫어한다. 특히 향이 나는 채소가 제일 싫다. 자취할 때도 그런 식성은 마찬가지여서 나는 아주 가끔만 야채를 먹었다. 개인적 기호뿐만이 아니라 1인 가구가 소비하기엔 너무 많은 양과 비싼 가격 때문이기도 했다. 한국에도 가끔 1인 가구용으로 포장된 야채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가격이 부담스럽거나 구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소위 말하듯 몸이 "지금 야채를 안 먹으면 죽어!"라고 외칠 때만 야채를 사 먹었다.


  하지만 프랑스에 온 후로는 자주 야채를 산다. 기본적으로 밀가루를 자주 먹다 보니 야채라도 먹어야 살겠다는 게 첫째, 1인 가구용으로 나온 야채가 많고 또 싸다는 게 두 번째 이유다. 샐러드를 끼니마다 먹는 문화이기 때문일까? 프랑스 마트에는 손질된 야채가 아주 싸고 다양하다. 채 친 양배추와 당근, 샐러리 한 팩이 한화로 천이백 원, 미니 당근 한 봉지가 천 원. 그리고 콩나물 한 봉지가 천오백 원.


  프랑스로 올 때 가장 걱정한 건 음식 문제였다. 나는 파스타를 먹으면서 라면 국물을 생각하고, 김치가 없으면 한 끼도 못 먹는 토종 한국인 입맛이다. 특히 일주일에 한 번 떡볶이를 안 먹으면 입에 가시가 돋친다! 그래서 오기 전에는 내가 제일 먼저 그리워할 음식이 김치찌개나 떡볶이일 줄 알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프랑스에 와서 제일 처음으로, 가장 간절히 먹고 싶었던 음식은 콩나물밥이었다.






  나는 야채를 싫어하지만 콩나물은 예외다. 엄마가 빨갛게 양념을 한 콩나물무침, 콩나물을 넣어서 볶은 불고기, 데친 콩나물을 함께 넣어 비벼먹는 낙지덮밥, 콩나물을 넣어서 매콤하게 끓인 해장 라면, 시원하고 심심한 콩나물국. 그리고 갓 지은 콩나물밥. 잘게 썬 소고기 볶음을 넣은 것도 좋지만 콩나물과 밥만 들어있는 것도 좋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방식은 김이 식지 않은 콩나물밥에 참기름 조금, 쪽파와 고춧가루를 넣고 만든 양념간장을 슥슥 비벼 먹는 거다.


  콩나물밥이 먹고 싶어서 끙끙 앓은 지 이틀 째, 기숙사 앞의 대형 마트에서 우연히 콩나물을 찾았다. 한국 콩나물과는 생김새가 조금 다르지만 틀림없이 콩나물이었다. 어떻게 다 먹을지 계획도 없이 두 뼘 만한 콩나물 한 봉지를 사서 돌아왔다. 천오백 원짜리 콩나물 한 봉지인데 한우 선물 세트라도 받은 양 마음이 들떴다. 설레는 마음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마트에서 콩나물 찾았어! 저녁에 콩나물밥 해 먹을 거야." 전화기 너머로 엄마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그렇게 기뻐?" 응, 완전!






  마트에서 산 초밥용 쌀을 한 컵 떠서 밥통에 붓는다. 한국 쌀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길쭉한 베트남 쌀에 비하면 훨씬 한국의 쌀과 비슷하다. 주먹 두 개 만한 밥통은 쌀 한 컵으로도 3분의 1이 찬다. 쌀을 깨끗하게 씻고, 마찬가지로 한 컵의 물을 붓는다. 마트에서 사 온 콩나물 봉지를 뜯어 한 움큼을 흐르는 물에 씻는다. 한국 콩나물과 비교하면 조금 더 짧고 기둥이 뚱뚱하다. 헹군 콩나물을 밥통에 듬뿍 넣는다. 책상 옆 서랍에 둔 밥솥에 밥통을 넣고 뚜껑을 닫은 뒤 코드를 연결하면 콩나물밥은 끝이다.


  밥이 지어지는 동안 양념간장을 만든다. 자취 요리의 포인트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소한의 쓰레기와 최소한의 설거지거리를 만드는 데에 있다. 쌀을 부었던 컵에 한국에서 가져온 참치와 간장, 참기름, 고춧가루를 넣는다. 서로 잘 섞이도록 젓가락으로 휘휘 젓고 나면 양념장까지 완성이다. 밥이 지어지길 기다리면서 하나 있는 그릇을 꺼내 씻는다. 프랑스인들은 시리얼이나 샐러드 먹는 용으로 쓰는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영락없이 밥그릇이길래 마트에 간 첫날 사 왔던 그릇이다. (빨간색 그릇보다 갈색 그릇이 5백 원 비쌌지만 갈색을 샀다. 밥을 빨간 그릇에 담는 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


  밥은 15분이면 되지만 밥솥이 꺼진 후에도 십 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뜸을 들이지 않으면 밥이 너무 고슬고슬하기 때문이다. 잠시 기다린 후에 밥솥 뚜껑을 열자 숨이 적당히 죽은 콩나물이 보인다. 갓 지은 밥 냄새와 함께 희미한 콩나물 비린내가 났다. 작은 주걱으로 밥을 잘 섞고, 꺼내 둔 그릇에 예쁘게 담는다. 그 위에 다시 참치 양념간장을 얹는다. 쪽파나 깨가 있으면 좋겠지만 데코레이션까지는 무리다.



  한국에서는 모두들 잘 시간, 밥그릇 같은 샐러드 그릇 앞에서 혼자 인사를 한다. 

  저녁 준비하느라 수고하셨어요.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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