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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주 Jun 08. 2020

<밴쿠버 대탈주기> 01. 인종차별의 서막

야 이놈의 레이시스트들아!!!

 오늘은 밴쿠버에서 가져온 원두로 마지막 에스프레소를 내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마지막이란 상념에 잠기기도 잠시, 크레마도 제대로 추출되지 않은 이도 저도 않은 녀석이 추출된 것을 보며 마치 나의 밴쿠버 살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의 기록은 남은 지독한 미련의 마무리가 될 것이다.




 코로나가 유행을 타기 시작했을 즈음, 광역 밴쿠버 외곽에 사는 한 블로거가 백인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았다고 한 글을 본 적이 있었다. 외곽으로 갈수록 인종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그런 소소한 차별들은 점점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다운타운에도 다가오고 있었다.


 2월 마지막 주, 같이 일하는 한국인 동생과 이야기하다가 화가 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동생은 오랜만에 놀스 밴쿠버 North Vancouver, 줄여서 놀밴이라고 말하곤 하는 다운타운과 불과 대중교통으로 30분 전후로 떨어져 있는 부촌에 오래간만에 놀러 갔다고 한다. 그런데 지나가다가 백인 커플 중 남자에게 "Fucking Corona!!!"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었다. 듣는 내가 화가 치솟아 지인에게 얘기하니, 사실은 자기도 일하는데 외국인 남성에게 "Can I buy corona virus?"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Here you are~"라고 하며 입김을 불어주었더니 기겁을 하며 도망갔다고 한다. 저 두 이야기가 너무나도 믿기지 않았는데, 불과 며칠 뒤 내 눈을 의심케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양 국가에서는 마스크를 쓰면 아주 아픈, 죽을병에 걸린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마스크를 쓰면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워낙 중국어가 모어인 화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밴쿠버이기에 처음에 우한에서 발생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중국인을 조심하자는 이야기가 돌곤 했다. 그래서인지 유일하게 중국-대만인이 운영하는 곳을 가면 전 직원이 마스크를 쓰곤 했고, 길거리에서도 마스크를 쓴 그들을 왕왕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오래된 이민자들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중국인들을 필두로 휴지 사재기가 번지기 시작하여 특히 차이나타운에 위치한 다운타운 코스트코는 2월부터 입장에만 한 시간이 걸리고 물건들이 동이 났다고 한다.


 이로 인해 중국인에 대한 혐오가 슬슬 표면으로 올라오고 있던 3월 첫 주의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오는 길에 콘도(우리가 생각하는 아파트의 개념) 로비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밴쿠버에서는 화재경보기가 잘 울리기도 하지만, 한 번 경보기가 울리기 시작하면 소방관이 출동하여 꺼주기 전까진 경보가 멈추지 않는다. 알고 보니 이 날도 화재경보기가 울려 엘리베이터가 다 멈추었기에 다들 로비에서 엘리베이터가 운행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나도 아무 생각 없이 마스크를 쓴 중국계 추정 중년 여성 뒤에 줄을 서 있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키가 최소 180센티미터는 되는 몸이 엄청나게 건장한, 근육질의 백인 남성이 우리 앞을 지나갔다. 그 몸집에서 오는 위압감이 엄청나서 무표정임에도 불구하고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갑자기 그가 몸을 돌려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는 그 여성에게 증오스러운 눈빛과 위협적인 낮은 목소리로 삿대질을 하며 “당신, 조심해.”라는 말을 남기고 지나갔다.


 그 남자가 피해자에게 직접적인 신체적 위해를 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몸집과 말에 담긴 감정은 너무나도 강렬해서 50센티미터 옆에서 보고 있는 나조차 몸이 자동으로 굳어버렸다. 뭐라고 한 마디 하고 싶었어도 한 대 맞으면 바로 구급차 신세를 져야 할 것 같은 체격차와(내가 체격이 작은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에서 주변에 있던 누군가가 도와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기에(평소 그런 이상한 사람을 보면 누군가가 옆에서 Shame on you!, 를 외치는 걸 보았는데 이번만은 아무도 어떤 소리를 내지 않더라.) 어버버 하는 사이에 사라진 백인 남성의 행동을 복기하며 공포에서 벗어나게 될수록 점차 화가 차오르기 시작하는데 그 중국인 여성이 자리를 뜨더라. 마침 바로 그 앞에 내 룸메가 서 있었기에 방금 그걸 봤냐고 물었고, 뒤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모르고 있었던 룸메는 내게 상황을 듣곤 길길이 날뛰며 화를 내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미 상황은 지나가 버렸고 우리는 이 곳에서 철저한 약자인 것을. 그리고 며칠 후, 나에게도 긴가민가한 차별이 찾아왔다.


 지인과 약속이 있어 늦은 저녁을 먹기로 해 9시 즈음 집을 나섰다. 건널목을 건너려고 걷고 있었는데 한 백인 여성이 나를 쳐다보며 뭐라 뭐라 하는 것이었다.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도 않았고 그다지 남이 그 시간에 말을 걸 리가 있나 싶어서 굳이 빼질 않았는데 갑자기 그 여성이 다리를 기역자로 들어 올리며 내가 가는 길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만약 내가 가려던 길 너머에 무언가를 하고 있어서 지금 그 길로 가면 안 된다거나 하는 말을 하고 싶었다면 그런 행동을 취할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간과, 약간 취한 듯한 표정과 살짝 경멸 섞인 눈빛이 이 상황이 일반적인, 친절한 캐나다인의 오지랖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들게 했다. 너무나도 찝찝한 기분에 그녀를 잡아 얘기를 할까 하다가 제정신이 아닌듯한 외국인을 붙잡아서 대체 무슨 얘기를 하겠나 싶어서 더러운 기분을 안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이렇게 유럽권에 비해서는 사소했지만, 점차 시작되고 있는 차별과 경멸의 시선을 목도하면서 캐나다인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고 있었는데, 3월 첫 주부턴 일하던 음식점 두 곳 다 눈에 띄게 손님이 줄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밴쿠버에도 상륙한 이후부터 아시안 레스토랑이 점점 장사가 안 되고 있긴 했는데 3월 들어선 확연하게 차이가 보이는 것이었다. 동양인 = 코로나, 라는 인식 때문에 모든 아시안 레스토랑에 잘 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었고, 실제로 2월부터 줄어들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눈에 띄게 줄진 않았기 때문에 조금씩 억울해지기 시작했다. 동아시아인인 우리야 서로를 구분할 수 있지만 서양인 눈에는 어차피 다 같은 동양인이니 모든 혐오는 동양인 전체에 대한 혐오가 되어갔고, 급기야 몬트리올에서는 한식당이 테러를 당하고 한국인이 칼에 피습을 당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마스크를 쓰지도 않으면서 마스크를 써서 너와 나를 보호하겠다는 동양인에 대해 차별과 위협을 가하는 데에 울화통이 올라오기 시작했지만 그와 동시에 길을 걷는 것조차 무서워졌다. 마스크를 구하기도 힘들었지만, 구한다고 하더라도 쓰고 다니는 것도 무서웠다.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까 말이다. 집 근처 중국계 마트인 T&T에서 한인 여성이 위협을 당했다는 기사를 보고 위협은 점점 더 현실로 다가왔다.


 마스크에 대한 캐나다인들의 인식을 10살 때 이민을 온 세컨드 잡 사장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는데, 어느 날 중국계 손님 둘이 마스크를 쓰고 온 걸 보더니 “왜 저렇게 유난 떠는지 모르겠다.”며 눈을 흘기며 나간 손님들을 쳐다보더라. 조금 황당해져서 “마스크를 써야 하는데 여기가 안 쓰고 다니는 거죠.”,라고 응수를 했는데 사장은 계속 마스크를 쓴 손님이 너무 과하고 여기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면 싫어한다며 좋지 않은 말을 내뱉었다. 들을수록 황당해져서, 한국이 그나마 방역을 성공하게 된 건 마스크 덕이며 여기선 쓰고 싶어도 구하기 힘들고 위협받아서 못 쓰고 있는 거라고 말을 하고 대화를 마무리했었다. 그 후 점점 코로나가 창궐하니 사장은 갑자기 말을 바꿔 마스크를 쓰고 싶어도 여기선 못 쓴다며 억울하다는 듯 이야기를 하더라.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전자가 일반적인 캐나다인의 마스크 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임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2월부터 3월 중순까지는 인종차별과의 싸움이었다. 셧다운이 시작된 후, 어떻게들 구했는지 백인들도 간혹 마스크를 쓴 걸 보긴 했지만... 여전히 무서운 건 마찬가지였고 다운타운 곳곳에서도, 집과 5분 거리에서도 감염자가 발생했었기에 칩거와 다름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귀국을 위한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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