셧다운으로 캐나다에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다.
아직도 3월 16일, 그 무시무시한 날이 잊히지가 않는다. 나는 지금도 세월호가 전원 구조라는 오보 알림을 최초로 보내왔을 때 그때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고 어떤 상황이었는지 선명히 기억하는데 이 날의 국경 봉쇄는 개인적으론 그에 준할 정도의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버렸다. 전 세계에 닥친 엄청난 재난상황이 나에게도 일어난 날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전초는 있었다. 2월 마지막 주부터 일하던 라멘집의 손님이 슬슬 줄기 시작했다. 새로 일하게 된 초밥집도 평소보다는 손님이 적은 편이라는 사장의 말이 있었지만 평년보다 유독 추운 날씨 탓이라고 생각했었다. 단골로 가던 가게도 마찬가지로 요즘 손님이 덜하다는 얘기를 하곤 했었다.
3월 첫 주.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적당히 한가한 이 상황이 감사할 뿐이었다. 그전에 일하던 서버와는 달리, 라멘집은 주방일을, 초밥집은 캐셔였기 때문에 팁이 적은 상황이라 차라리 덜 바쁜 게 좋았기 때문이다. 본의 아니게 투잡을 뛰고 있던 상황에다, 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초밥집이 중간중간 미친 듯이 바빴었기 때문에 그저 한가함만을 감사하게 여기고 살아왔건만...
그렇게 3월 16일의 공포가 다가오고 있는지 누가 알았겠나.
그날도 오전에 초밥집 근무를 하러 가서 일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다른 날보다도 유독 더 손님이 코빼기도 안 보일 정도여서 사장과 의아해하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평소라면 바빠서 확인할 새도 없었겠지만)2월 말에 한국에 들어간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거 보시라면서 그분이 보내준 내용은 그저 충격이었다. 트뤼도가 당장 국경을 봉쇄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는 비보였다. 깜짝 놀라서 모두에게 이야기를 하고, 간간이 오는 손님을 받는 동안 지인은 지속해서 캐나다 정부의 공식 발표를 요약해서 보내주었고 사장은 계속 뉴스를 체크하였다.
이렇게까지 손님이 없었던 이유는 아시안 식당에 대한 불안감과, 인근 사무실과 어학원의 대부분이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을 하기 시작했던 게 원인이었다. 그리고 점점 퍼져가는 코로나로 인해 일찍이 좋은 일자리와 학원들은 3월 첫 주부터 재택을 하기 시작했었고. 그게 셋째 주인 16일에는 더더욱 확대되어있던 상태였는데, 일하다 말고 트뤼도의 공식적인 국경 봉쇄가 발표되어버린 것이었다.
뒤이어 그날 오후, 당장 다음날인 3월 17일, 세인트 패트릭 데이라는 공휴일에 다운타운 내 식당과 펍을 셧다운 시키겠다는 발표가 나왔다(처음엔 다운타운으로 발표가 났었지만 이어 광역 밴쿠버로 확대 시행하기로 변경이 되었다.). 두 탕 째로 라멘집에서 일하다 말고 초밥집 사장에게 받은 연락이라 당황스러웠다. 앞으로 근무시간이 조정될 것이란 얘기는 들었지만 정부 차원에서 하루를 닫게 한다니... 하루치 일당이 날아감이 아쉬웠긴 했지만 적어도 아직 잘린 건 아니니까 그것만으로도 감사하자고 생각하며 라멘집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셧다운 소식을 알렸다. 그렇게 17일에는 모든 요식업 종사자들이 일을 못하게 되었고 우리는 불안감에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17일 오후에 초밥집에서 최종 해고 통보 연락을 받았다.
당연히 앞으로의 거취가 걱정이 됐다. 그러나 아직은 일자리가 하나 남아있었고, 한국으로 돌아가기엔 너무나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악명 높은 택스 리펀도 아직 진행이 덜 된 상황이었고, 해결해야 할 수많은 것들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지금의 기회가 정말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
18일 오후, 남아있는 라멘집 스케줄만을 바라보고 조마조마하고 있던 차에 단톡 방에 공지가 올라왔다. 역시나 휴직을 빙자한 해고 통보였다. 정말 3일 만에, ‘드디어 돈을 모을 수 있게 되었구나!’하던 주에 타국에서 하루아침에 전염병으로 인해 실업자가 되어버렸다. 현지인들도 생계에 문제가 생긴 마당에 외국인인 내가, 그것도 비자가 두 달 남은 상황에 재취업은 불가능했다. 더 이상 지체할 상황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다. 집 보증금은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당장 다음 주엔 다음 달 집세를 내야 한다.
빠른 결정이 필요했고, 나는 밴쿠버를 뜨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