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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주 Jan 15. 2023

추억을 곱씹으러 간 자리에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

기억이 가물가물해도 당신이 3040이라면 이 영화를 맘껏 즐길 수 있다!


 볼일을 보고 약속시간까지 네 시간이나 남아 전혀 예정에도 없던 영화를 보러 갔다.

 최근 3040에게 가장 핫하다는, 행복했던 시절을 추억하게 해 준다던 바로 그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3~40대 중에서 슬램덩크를 모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뭐 그중에서도 90년대 이후 태생은 잘은 모를 수도 있겠단 생각이 조금 들긴 하지만 적어도 80년대생은 만화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한 번이라도 접해봤을 거라 자신한다. 나 또한 만화책으로는 본 적이 없지만 SBS에서 방영하던 슬램덩크 만화영화를 즐겨보곤 했었으니까.




 강백호, 서태웅, 정대만, 채치수, 송태섭. 이 영화의 다섯 명의 주전의 이름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왼손은 거들뿐'과 같은, 이제는 오래된 밈이 되어버린 대사에, 심지어 강백호와 서태웅의 하이파이브는 각종 패러디로 쓰여 이 만화를 전혀 모르는 세대에게도 익숙하다. 심지어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도 쓰일 정도니!


그래, 바로 이 짤 말이다!


 평소 원어를 선호하긴 하지만 이 작품만은 더빙으로 예매했다. 도저히 하나미치(꽃길)라는 강백호의 원작 이름에서 웃지 않을 자신이 없었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고, 너무나도 로컬라이징 된 이름에 익숙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이름마저 누굴 말하는지 모르겠으면 어떡하나 싶어서. 물론 자막은 로컬라이징 된 이름으로 나온다는 것 같긴 하다만 내 경우엔 일본어를 할 줄 알아서 방해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공식 포스터의 맨 앞에 위치한 '송태섭'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아버지를 여의고, 설상가상으로 형마저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남은 세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볼수록 저 어머니는 어쩜 저 다지도 가혹한 운명을 견뎌야 했을까 싶었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이 이야기는 송태섭의 어머니의 성장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로.


 이윽고 이야기의 주 무대인 '산왕공고'와의 경기로 오프닝이 시작되는데 인물 하나하나가 그려지며 흘러나오는 밴드 사운드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정말 너무나도 잘 만든 오프닝이라 이것 하나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을 정도로!



 베이스로 시작해 드럼으로 이어지다 이윽고 기타와 함께 거칠게 내달리는 보컬까지. 묵직한 록 사운드에 주전 한 명 한 명이 그려지며 최강자인 산왕고교와 맞붙기 전의 긴장감을 너무나도 잘 표현한 오프닝이 아니었을까.


 초등학생 때 본 만화영화였다는 정도의 배경지식만 가지고 보러 갔던 터라 솔직히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을 하긴 했지만, 송태섭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아 맞아, 그랬었지.', '이런 명대사가 있었었지.'를 연발하게 된다. 경기 장면과 교차편집이 되는 부분은 어찌 보면 루즈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찐 팬이 아닌 나 같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고 기억을 회상시키기엔 적당한 장치가 아니었을까.


 3D로 제작된 인물 작화 또한 2D에 익숙한 옛날사람에게 약간의 위화감을 주었지만, 후반부의 내달리던 경기 연출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적합한 장치가 아니었나 싶다. 그 옛날 어벤저스 1의 격투장면을 보고 내적 박수를 치던 그 희열감을, 슬램덩크에서 다시 느끼게 되다니! 동선을 너무나도 잘 짜지 않았나! 후반부의 그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 만들어낸 연출과 음향과 음악의 적절한 삼박자는 정말이지, 최근 본 콘텐츠 중 손꼽게 멋진 연출이었다!



그리고 나는, 애먼 밴드사운드에 꽂혀버렸다.


그러나 나만 그런 것이 아닐 거라 확신하고 있다. 엔딩에서 흘러나오던 이 곡을 들었던 모두가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어쩜 이리도 찰떡같은 OST를 만들 수 있는 것일까!




 굉장히 재미있게도, 극장에서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끝까지 앉아있던 사람들은 남녀불문하고 30대 이상이었다. 물론 나도 그중의 하나였고. 어릴 때 등장인물들은 까마득하게 어른 같아 보였던 고등학생이었건만, 나는 어느새 30대 중반이 되었고 저들은 아직도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극장 안에서 멍하니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걸 지켜보았다. 마지막의 짧지만 감동적인 쿠키도 보고.


 덕분에 약속장소로 향하는 차 안에서 계속 엔딩곡을 돌려 듣고, OST를 찾아 듣고, 보지 못했던 만화책을 보려고 e-book을 찾아보았다. 슬프게도 e-book은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20여만 원이나 하는 전질을 살까 고민하다가 일단 넷플릭스에 있는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집 정류장에 내리지 못할 뻔하기도 하고. 영화 자체를 엄청 감명 깊게 봤다기보다는 그 시절의 향수를 느끼며, 또 시원한 밴드 사운드에 환호하며 본 영화였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다음번에는 자막판으로 한 번 더 보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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