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살이 D+176일 차의 소회
아직 다 가지 않은 2019년, 아직은 서른둘. 그렇다. 쌍팔년도 어쩌고의 바로 그 쌍팔년도 생이 나다(*친구의 제보에 따르면 쌍팔년도 = 88년, 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관형어구와도 같이 쓰이기 때문에 문장은 고치지 않도록 하겠다.). 88년생이라고 말하면 중장년층에게서 항상 듣던 질문은 "88 올림픽은 봤냐?"였고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 뱃속에서 봤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런 내가, 서른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아니 워홀 최고령?(사실 작년에 받아놓은 87년생이 올해 왔다면 이쪽이 최고령이겠지만)으로 막차를 타고 캐나다 밴쿠버로 도망치든 떠나온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는 10년간 저임금과 비정규직을 전전하다 보니 이 나이엔 한국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둘째로는 가족이란 지긋지긋한 울타리를 벗어나 보고 싶었고, 셋째로는 초등학생 때부터 평생의 소원이었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할 수 없었던 해외살이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족하느냐고? 사실 모르겠다. 역시 사람이 뭐든 경험해봐야 아는 거라고, 나도 내가 이럴 줄은 몰랐거든. 이곳에 오면 행복하고 즐거운 일만 가득할 것만 같았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판을 뒤흔드는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판을 뒤흔들려고 온 건데 어째 내가 뒤집힌 기분이다. 14살 때부터 지금까지 나를 계속 봐온 친구는 아주 간간이 통화할 때마다 "뻑킹 코리아!, 를 외치면서 갔는데 왜 한국을 그리워하냐. 네가 그럴 줄 상상도 못 했다."라고 하는데, 나도 그래 친구야... 나도 내가 이럴 줄은 몰랐다고!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찌 됐던 나에게 지금 이 시간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이고(누군가가 말하듯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의 문제를 떠나 만 서른 살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입장에선 진정으로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제 곧 반 밖에 남지 않을 이 시기를 어떤 식으로든 잘 마무리 짓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지내야 하는 상황이면 잘 지내다 가고 뭐 하나라도 인생에서 얻어가면 좋은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안 그러면 도저히 버티기가 힘들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런치에 글을 써보기로 했다.
과연 이 귀중한 1년을 뚝 떼어서 이곳으로 올 만한 가치가 있었는지, 그 모든 기회비용을 생각해도 이게 옳은 일이었는지 찬찬히 생각을 정리하는 여정을 이곳에서 시작해보기로 했다. 앞으로 쓰일 글들은 이 제목과 같이 그 가치를 탐구하고 증명하는 글이 될 것이다. 또한 궂은 날씨만큼이나 한없이 가라앉게 되는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루틴을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슨 요일이 될 진 모르겠지만 주 1회는 글을 올려보도록 노력할 것이다.
지나간 반년과 앞으로의 반년 혹은 플러스알파의 기록을 읽어주실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이 글을 끝맺음과 동시에 연재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 캐나다 밴쿠버에서, 2019년 11월 21일 목요일 오전 12시 3분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