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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Jan 28. 2020

모서리가 닳아 둥근 말

두통이 시작되면 털을 곤두세운 고양이처럼 예민해진다. 오늘의 두통은 진통제를 먹어도 쉽게 누그러지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노는 것마저 지쳐서 잠시 소파에 누웠다.


"엄마 머리가 아파. 조금만 누워있을게. 혼자 놀 수 있지?"

"싫어~ 엄마랑 같이~ 엄마 안아~"


아이는 잠시의 틈도 주지 않으려 떼를 쓰며 내게 안긴다.


"엄마 조금만 쉬고 놀자"

"싫어~"


"찡찡하지 않기! 엄마 말 들어야지!"


아이의 칭얼거림에 예민 보스가 출동한다. 말이 짧아지고, 설명이 극도로 줄고, 목소리 톤은 낮아진다. 순식간에 따뜻한 엄마에서 차가운 엄마로 돌변한다.


혼자 놀던 아이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낮잠 시간이 가까워져 더 칭얼댔던 것이다. 자는 아이를 보면 미안하다. 잠시라도 차가운 엄마였던 것이.


아이에게 엄마는 단순한 존재 이상일 것이다. 어떤 순간에 기대어도 평화로운 공간의 개념일지도 모른다. 무서울 때, 슬플 때, 엄마 품에서 마구 뛰던 심장박동이 편안해질 것이다.




자는 아이 옆에 앉아 시 한 편을 읽었다. 웹툰 작가이자 시인이기도 한 홍인혜 작가의 '묠란드'라는 시이다. 평화로움이 모두 모인 것 같은 공간 묠란드에 대한 시다. 시의 한 구절에 오래 마음이 머물렀다.


 '모서리가 닳아 모든 말들은 둥글다'


온 나라를 돌고 돌아 느리게 온 편지의 말들이 그렇다고 했다. 모서리가 닳아 둥근 말. 착하고 순한 사람들의 말이 그려졌다. 내뱉는데 오래 걸리는 말들일 것이다.


뾰족한 말을 내뱉는 내 모습이 함께 떠올랐다. 나의 말이 가장 먼저 가 닿을 내 남편과 아이에게 둥근 말을 들려주고 싶다. 그래서 그들에게 기대기 좋은 편안한 곳이 되고 싶다.


그런 엄마와 아내이면 좋겠다.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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