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비 Jan 29. 2020

삶의 아이러니

겁쟁이 쫄보인 나는 죽음이 두렵다. 비행기를 타면 기도를 한다. 목적지까지 무사히 날아가게 해 달라고. 운전대를 잡으면 침착하고 안전하게 운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유행병이라도 돌면 다 지나갈 때까지 무사하도록 기도하고, 남편이 출근할 때,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소풍이라도 가면 늘 기도를 한다. 매사에 겁이 많은 사람은 이렇게 피곤하다.


겁이 많아 좋은 것보다는 힘든 게 당연히 많다. 사서 걱정하느라 안 써도 될 에너지를 많이 쓴다. 준비하고 준비해도 매번 부족한 것만 같다. 여행에는 짐이 늘고(온갖 상황에 대비하느라), 일상은 바쁘다. 그렇게 쓴 에너지로 유일하게 좋은 것은 건기의 여행지에서 소나기를 만나도 허둥대지 않고 제일 먼저 우산을 펼칠 수 있다는 것. 딱 그 정도다. 걱정을 대비한 짐은 대부분 한번 꺼내지도 못하고 정리한 그대로 들고 올 걸 알면서도 쉽사리 포기가 되지 않는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애를 써보았다. 가장 도움이 됐던 것은 두려운 대상에 대해 정면돌파하는 것이었다. 비행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 비행기의 기종과 이 착륙 상황, 난기류에 대한 책과 자료를 수도 없이 읽었다. 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여행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을 미리 체크한다. 여행이 시작되기도 전에 온갖 후기들로 위험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하곤 한다. 어딘가가 아프면 관련 질병에 대한 자료들을 끝도 없이 파해친다. 그렇게 얻은 지식들로 막연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잠재우곤 한다. 


마음은 쫄보이지만 겉으론 지식인 인척 하며 공부하듯 두려움을 다스린다.



연휴기간 TV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보았다. 마침 한 방청객의 질문에 리모컨을 멈추었다.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죽음에 대한 질문이었다. 법륜스님의 이야기는 단순했다. 


"아름다운 죽음이란 건 없어요.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냐만 다를 뿐이지요."


자연의 흐름처럼 늙어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내려가고 올라가는 삶의 과정을 유연하게  인정하는 것 그것만이 있다고 했다. 순간 그 말이 이렇게 들렸다.


"이렇게 죽으면 어쩌나, 저렇게 죽으면 어쩌나를 왜 걱정하나요?

아름다운 죽음은 없어요.

그 고민하는 지금이 아름다운지 살펴보세요."


나는 지금 안전하며, 건강하다. 그래서 행복해야 하지만 불안해다. 이 행복을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불안에 하나씩 덧칠을 해볼 생각이다. 걱정 대신 향기로운 차 한 잔을, 또 다른 걱정 대신 잠깐의 산책을. 그렇게 모자이크에 색을 입히듯 행복을 덧칠할 것이다. 인생의 단순한 진리를 하루아침에 몸에 새길 수는 없다. 한 가지씩  환기시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오늘의 나는 행복한가?






매거진의 이전글 모서리가 닳아 둥근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