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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uren Aug 21. 2019

당신은 어떤 왕관을 쓰고 있나요?


꽃 배송 시간은 오전 10시였다. 8시 30분 즈음 느긋하게 출근 준비를 시작하는데, 전화가 울린다. 


"꽃 배송 왔는데 1층 로비 문이 안 열려서 들어갈 수가 없네요."

"10시에 오기로 했는데,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제가 아직 출근 전이거든요"


오늘도 고급지지 못한 나의 생존 중국어로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시간은 모르겠고, 배달 가라고 해서 온 건데, 건물에 들어갈 수가 없네요."

"그럼 보안 아저씨한테 1층 출입문을 좀 열어달라고 해 주실래요? "


아저씨가 전화를 끊지 않아서, 이내 두 남자의 대화 내용이 들렸다.  

"꽃 배송 왔는데, 여기 문 좀 열어주세요."

"카드가 없으면 출입이 안돼. 카드가 있어야지. 안돼, 열어줄 수 없어."


보안 아저씨가 끝까지 1층 출입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배송 온 아저씨는 난감해하며, 그냥 1층 로비 출입문 바깥쪽에 꽃을 두고 가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출입문 안쪽에만 놓아도 에어컨이 켜져 있어서 괜찮을 텐데, 출입문 바깥쪽은 꽃들이 견디기엔 아직 햇살이 너무 뜨거웠다.






이곳 작업실로 이사온지 1년 하고도 반이 지나간다. 보통은 2년에 한 번씩 작업실을 이전했었는데, 이번 작업실은 걸어서 10-15분이면 출근할 수 있고,  학생들을 위한 주변 환경이나 교통도 편리해서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작업실 건물은 23층의 고층 빌딩인데, 주거 목적으로는 중국 사람들과 일본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고, 나머지는 요가학원이나 피아노 학원 혹은 피부마사지나 네일숍 등이 들어와 있다. 우리 작업실 바로 아래층에도 중국인이 하는 네일숍이 있는데, 꽃을 하다 보면 손톱이 망가지는 일이 많아 퇴근 후 종종 내려가 손톱 관리를 받으며 얘기를 나누곤 했다.


"너네 여기 이사 오고 나서 키 큰 보안 아저씨한테 선물했니?"

"선물? 무슨 선물? 아, 이사 왔다고 인사드리며 케이크는 드렸었어. 근데, 왜? "


"앞으로는 무슨 때마다 꼭 선물해야 할 거야. 예를 들면 춘절이나 추석, 국경절 이런 때는 꼭 선물해야 된다. 싼 거는 받지도 않아. 그래서 우리는 매번 과일도 비싼 거 사서 박스로 주고, 담배도 비싼 걸로 사서 몇 보루씩 주기도 해. 여기 키 큰 보안 아저씨 말이야,  진짜 안 좋기로 유명하거든. 정말 별로야"


중국에서 우리가 흔히 보안이라 부르는 분들은 한국으로 말하면 경비아저씨 정도가 될 것 같다. 이전한 작업실 건물의 보안 아저씨는 여느 다른 보안 아저씨들과는 달리 키도 훌쩍 크고, 호리호리 마른 체구에 옷도 아주 깔끔하게 입는 편이어서 조금 깐깐해 보이긴 했어도, 출근길 매일 환히 웃으며 인사를 하면 멋쩍은 듯 같이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어서 나는 그 친구들의 말을 반신반의했었다. 게다가 나는 경비 아저씨나 청소부 아주머니, 꽃시장에서 일하는 직원들 그 누구에게도 붙임성 있게 거리감 없이 대하는 편이라  중국에 사는 7년 동안 어느 누구 하고도 얼굴 붉힐 일이 없었기에 사실 그녀들의 말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1층 출입문에서 직접 연결되는 작업실내 인터폰이 먹통이 되었다. 보안상 건물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1층 출입문에서 인터폰을 통해 연락을 해야지만 방문객들이 건물 내부로 들어올 수 있고, 엘리베이터도 탈 수 있었다. 


"아저씨, 저희 인터폰이 고장 났나 봐요. 1층에서 눌러도 인터폰이 연결이 되지 않아요"

"응, 안될 거야. 인터폰을 끊었거든."


'네? 안될 거라고요? 끊었다고? 누가? 왜요? '



그래도 이건 좀 아니잖아요!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인터폰이 안되니 작업실에서 1층 출입문을 열어 줄 수 없어 작업실을 오는 학생들과 방문객들이 출입하는데 큰 곤란을 겪었다. 부동산 아저씨 말에 의하면 우리만 그런 것 같지는 않고 건물 전체에서 실제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곳의 인터폰을 모두 끊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1주, 2주... 가만히 지켜보니  왠지 우리 작업실만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한마디 통보 없이 인터폰 연결을 끊어버린 건 다름 아닌 그 보안 아저씨였다. 그로 말하자면 작업실이 있는 건물주의 친척으로, 주변 쌍둥이 고층건물 세 채를 총괄 관리 감독하는 분이란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고 했다.  


' 아! '  

풀리지 않았던 퍼즐 조각이 하나, 둘 맞춰지는 듯했다. 


'비싼 선물이 아니면 받지도 않는다는데, 나는 나름 이웃과 다름없는 아저씨에게 소소한 정을 나눈다며 출근길에 해맑게 웃으며 커피나 건네고, 빵이나 건넸으니... ' 이 답답한 한국인이 가장 쉽게 반응할 수 있는 것으로 선제공격을 해온 거다. 


너무 화가 났다.  홍빠오(红包_ 돈 봉투의 의미)나 비싼 선물을 가져오지 않는다고 일방적으로 아무 통보도 없이 인터폰을 끊어 버리다니! 그보다 더 화가 났던 건 그가 외부적으로 왜 인터폰을 끊을 수밖에 없는지 내세운 명분 때문이었다. 한국사람들이 현관 문도 제대로 닫고 다니지 않는 데다가  너무 시끄러워서 인터폰을 끊은 거라며, 다시 연결해 줄 수 없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중국에서 살아봤다면 정말 실소할 얘기다. 물론, 그렇지 않은 중국인들도 많지만, 대개는 두세 명만 모여 대화를 나눠도 마치 싸우는 것 같아 한번 더 돌아보게 되는 쪽은 늘 중국사람들인데, 우리가 시끄럽다고?  게다가 작업실은 꽃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각자 자신의 작품을 몰입해서 만들다 보면 제대로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을뿐더러 큰 소리를 낼 일이 전혀 없는 무척이나 정적인 공간이다.  1층 로비 또한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혹은 출구로 나가기 위해 지나가야 하는 통로일 뿐인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그 짧은 시간 동안, 그곳에서 꽃을 들고 얌전히 오가는 우리는  무엇 때문에 얼마나 시끄러울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은 어떤 왕관을 쓰고 있나요?



인터폰이 먹통이 되고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한 지 3개월이 지났다. 불편함을 해결하려면 그때 당장 비싼 담배 몇 보루라도, 홍바오(红包)라고 하는 돈봉투라도 아저씨 손에 쥐어줘야 했다. 하지만, 나는 절대 그의 부조리한 갑질에 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몸은 조금 더 바삐 움직여야 했고 마음의 여유도 줄었지만, 그렇다고 한국인을 깎아내리고 생트집을 잡아서라도 원하는 것을 얻고 싶어 하는 그에게는 똑같은 수준으로 맞대응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저씨의 그 무례하기 짝이 없는 갑질 놀이의 대상이 되면서 한편으로는 중국이란 곳에서 이제 정말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번 물꼬가 터지니 마음에 담아두었던 다른 불만들도 슬금슬금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것은 중국이냐, 한국이냐의 문제는 아니었다. 국적, 인종을 불문하고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권력이 생겨나고,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도 생기게 마련이며, 사람은 근본적으로 욕심과 탐욕 앞에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어디로 다시 떠난다 해도 비슷한 상황은 또다시 생겨날 수 있다.


세 채의 건물 총괄 관리를 맡은 건물주의 친척도 그 세 채의 건물 안에서는 자기가 왕이다. 자기 세상에서 마음대로 진두지휘할 수 있고, 원하는 대로 칼자루를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은  멈출 수 없는 유혹이고, 그만두기 싫은 '갑질 놀이'일 것이다.  좁은 울타리 안에서도 완장만 채워지면 밑으로 줄 세우기 바쁜데,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반짝이는 왕관이 머리에 씌워졌을 때 우리는 과연 다른 사람에게 그 왕관을 넘길 때까지 양심을 지키고, 나를 위한 규칙을 따로 만들지 않으며 그 왕관의 무게가 주는 의미에 집중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크든 작든 저마다 왕관을 쓰고 있다.  부모라는 왕관, 선생님이라는 왕관, 팀장이라는 왕관, 사장이라는 왕관... 그 왕관을 머리에 처음 쓰게 되었던 영광스러웠던 순간을 잊고, 크고 작게 '갑질 놀이'를 하며 우쭐대지는  않았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왕 노릇을 하며 자녀와 배우자를 나의 소유물처럼 대하며 상처를 주지는 않았었는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왕 노릇 하며 일괄성 없이 자신의 감정에 따라 온전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함부로 무시하지는 않았었는지. 한 번쯤 나는 어떤 왕관을 쓰고, 그 무게에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돌이켜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1층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꽃 박스들을 낑낑 거리며 엘리베이터에 옮겨 실으며 멀찌감치 서있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광채도 없고, 낡고 초라한 왕관을 쓰고 오늘도 그는 자기의 세상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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