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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밍키 Apr 05. 2021

다시 4월




2017년 4월 10일. 경빈이의 어머니를 처음 뵌 건 안산의 추모제였다.

출처 스브스뉴스


어머님은 인터뷰를 하러 온 나를 위해 커피를 타 주셨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려는데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PD님 가방엔 노란 리본이 없네요."


"그 리본이..."

수많은 변명거리를 떠올리며 괜히 가방을 뒤적였다.


"노란 리본이 가족들한테는 되게 중요해요. 어떤 차 뒷 유리에 노란 리본이 붙어있더라고요. 내가 막 쫓아갔어요. 너무 고마워서. 쫓아가다가 이건 아니다 싶은 거예요. 그 차 주인은 내가 누군지 모르니까. 내가 우리 경빈이 엄마인지 모르니까, 쫓아가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겠구나. 그래서 멈췄어요. 미안해서."


솔직히 그 작은 리본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지 몰랐다. 4월 16일 추모 영상을 제작하는 일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리본이 붙은 차를 쫓아가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깨달았다. 가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위로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추모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노란 리본을 당장 가방에 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출처 스브스뉴스





2019년 8월 2일. 회사 앞에서 경빈 어머님을 다시 만났다. 세월호 진상규명 서명 운동을 위해 전국을 돌고 계셨다. 못 본 사이 노란 리본 관련 아이템이 더 많이 나왔다. 머리끈, 팔찌, 스티커, 열쇠고리, 인형들이 내 시선을 잡았다.


“어머님 이거 굿즈라고 해도 되겠는데요?”


“예쁜 게 많아졌지. 근데 사람들이 잘 안 가져가요.”


그렇게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작은 도구라도 나누고 싶으셨을 거다. 사람들이 가져간 작은 리본은 생각보다 매우 큰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2019년 11월 1일. 세월호 참사 당일 해경 해상에서 구조한 단원고 학생을 뒷전에 두고 해경을 태웠다는 보도가 나왔다.

[기자]

세월호 참사 당일, 생존 가능 신호를 보였음에도 제때 구조되지 못한 단원고 학생 고 임경빈 군.


경빈이. 내가 생각하는 그 친구가 아니길 바랐다.


[전인숙/고 임경빈 군 어머니 : (처음에) 해경이 헬기 있는 영상까지만 딱 준 거예요. 정말 헬기를 타고 나온 거처럼… 근데 그게(배를 타고 나온 게) 이제야 밝혀진 거예요]


결국 경빈이었다. 절망스러웠다. 특조위는 세월호 희생자 故 임경빈 군이 위급한 상태에서 구조된 뒤 최종 사망 판정을 받기까지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당시 경빈이는 긴급 이송이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응급 헬기를 이용하지 못했고 네 차례나 해경 함정을 갈아탔다. 이로 인해 경빈이는 무려 4시간 40분이 지나서야 병원에 도착했고 결국 사망 판정을 받았다.




2021년 4월

경빈 어머님은 여전히 청와대 앞에 계시다.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아야 끝이 날까. 경빈이와 가족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잊지 않는 일이다. 그것이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위로다.




Side note:

오랜만에 꺼내보는 우리의  기획 <스브스토커>

출처 스브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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