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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월 Dec 21. 2020

중년 일기 2

기억의 생존성ㅡ나의 첫사랑


하루키의 신작 <일인칭 단수>를 읽고 있자니 이런 하찮은 소재들이 소설이 되는구나와 동시에 이런 건 너도 쓸 수 있고 나도 쓸 수 있는데 우리는 왜 못쓰고 있지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결론 없이 어설프게 끝나는 <일인칭 단수> 안의 단편소설들은 하루키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경험했던 자신의 기억이나 취향을 담은 일기 같은 단상들이다. 

 그중 단편 <위드 더 비틀스>의 앞부분에서 <중년 일기 2 >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 번도 꿈꾼 적 없었던 민주주의의 훼손 불공정한 정치적 견해들이 나로 하여금 인생의 일정 시점의 기억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는 키는 작았지만 다부진 소년이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초등학교부터 가톨릭 신부가 되기로 마음먹은 신심이 강한 oo성당의 어린 복사였다. 복사들은 미사 시간에 신부 주변에서 미사 예절을 돕기 때문에 신자들 눈에 띄게 되어있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그 애를 가까이에서 처음 봤다. 여름방학 수련회에서 같은 조가 됐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지만 단연 그 애ㅡ일단 f라고 하자ㅡ가 중학생 중에 제일 빛났었다. 나는 남자 중학생의 짧은 머리가 그토록 단아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중3학년 말, 진학할 고등학교는 추첨으로 배정받게 되어 있다. 내가 OO여고로 입학이 결정되었을 무렵 세 살 아래 나의 남동생에게  내가 어느 학교에 배정됐는지를  f가  물어봤다고 남동생이 전했다. 그 애가 나를 좋아하고 있을 수도 있구나를 알았다.  눈에 띄게 잘 생긴 외모는 아니지만 성실함이 필요한 교회에서 그 미덕에 맞는 인성을 가진 인기 있는 남자였음은 틀림없었다. 나중에 우연히 본인 스스로 자신에게 호의를 표했던 여학생이 많았었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고등학생인 된 후 예비신학생으로서 집안이 가난했던 f는 교구에서 일체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보조받고 있었다. 성당의 모든 사람들이 느님께 부름 받은 자라 하여 그 애에게 공손히 대해줬고 그에 맞게 f는 행동가짐도 언제나 반듯했다. 내가 f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일종의 유혹이 될 수 있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속엔  뜨거운 불이 가슴에 활활 타올랐다.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몰랐지만 주말이 되면 미사 시간에 그 애가 복사로 나오는 시간에 맞춰 미사를 봐야만 했다. 그 시간이 나에게는 f와의 무언의 약속 같은 의무였다.  영성체중 밀떡을 나눠주는 신부 앞에는 신자들의 줄이 길게 선다. 신부 바로 옆에 서 있는 f. 내 앞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제쳐지며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심장은 딱딱해지면서 빠르게 뛰고 숨이 가빠지고 주위의 소음이 사라진다. 


  정작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그 애의 바로 아랫집에 사는 고1 남자 S와 친해지게 되었다. 남동생이 늘 좋은 형이라고 칭찬하던 S는 우리 집에 가끔 놀러 왔다. 대문 앞에서 남동생을 부르다가 남동생이 없어도  나하고 여러이야기를 나눴다. 학기 중에는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로 발전했다.  s와 편지를 주고받는 동안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컨트롤할 수 있었고 거기에 지치지도 않았다. 고등학생들이 나눌 수 있는 진지하고 발랄한 감정들로 편지 내용은 가득 찼던 것 같다.


 그 해 겨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신학생을 꿈꾸던 f가 학교로 편지를 보내왔다.  2-선반 OOO에게.  그 애가 사귀자는 내용이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내 머릿속에는 두장으로 쓰인 편지 내용들을 다 기억한다.

 2학년 겨울방학은 정식으로 남자 친구가 생긴 셈이다. 데이트는 성당 근처 어디선가를 배회하거나 나의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실 때는 성당 탁구장에서 탁구 치던 그 애에게 직접 가서 우리 집에 몇 시에 오라고 전하기도 했다. 그 시간에 딱 맞춰 우리 집에 도착한 그 애에게 나는 라면도 끓여주고 우유차 같은 종류의 음료를 대접했던 기억이 있다. 추운 겨울이라 연탄불을 피우는 방은 딱 한 개였다. 내 방이란 게 없던 터라 한방에 남동생, 여동생, 우리 둘이 함께 집에서 데이트했다. 그 시간은 지금 생각해도 썩 좋은 그림은 아니었으나 그땐 나름 재미있었다.

 어느 날 S가 집에 놀러 왔다. 나의 들뜬 마음을 눈치챘는지,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대뜸 자기 엄마가 나와 나눈 편지를 우연히 모두 읽어봤다고 말했다. 또한 자기가 누나인 나랑 편지 주고받은 과정을 f에게 다 얘기했다고 했다.  


성당에서 S의 엄마를 마주칠 때마다 17살 소녀가 갖었던 나의 어색한 인사는 지금 생각만으로도 몸으로 반응하는  느낌. 위아래 집에 사는 두 소년의 어머니들은 우연히라도 분명 내 얘기를 했으리라.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f의 엄마가 더 난처했을 터, 그렇게 나는 두 소년을 유혹한 소녀가 되었다. 다행히도 아들을 믿었는지 f의 엄마는 단 한 번도 눈치 준 적 없이 오히려 굉장히 잘해주셨다. 우리 엄마의 말을 빌리면 그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아닌데 네가 싫지는 않았나 보다 후에 말씀하셨다. 그때 나의 외모가 지금보다 낫던 건 아니다. 나는 지금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당시 내 거울 앞에 붙여놓은 소피 마르소처럼 갸름한 얼굴을 가졌지도 않고 부룩 쉴즈처럼 늘씬한 몸을 지니지도 않았다. 폭풍처럼 먹어대던 내 몸에서 자꾸 뭔가를 더 섭취하라고 시키는 사람이 있는 듯 먹고 또 먹었다. 뒤늦게 성장한 탓에 반에서 앞자리에 머물던 내가 고3에 가서는 55번째 키 순위로 덩치 좋은 여학생이 되었다. 귀엽게 생겼다라는 소리는 가끔 들었었는데 그 면도 다 사라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f는 신학교에 진학했다.

 이미 f와는 고3 때 서로 서먹서먹해졌다. 일단 성당에서 소문이 날까 신경도 쓰였고 대학입시라는 1년을 보내야 했으며 특히 내 몸이 불어나고부터 내가 피하고 싶었다. 어느 날 외지에서 직장을 다니다 주말에 미사에 참석했던 f의 형이 나를 반갑게 아는 척 하다가 무심코 나의 패션에 대해 조언을 했다. 구체적으로 어디서 어떤옷을 사면 좋다고 말이다. 그 순간 나는 평가받는 기분이 되어버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옷을 살만큼 엄마가 용돈을 준 적도 없었고 맏이로서 무언가를 갖기 위해 투정하는 법을 배운 적도 없었다.


 그래도 f에 대한 남은 불씨들은 가슴에 남아있었다. 그 시대는 그런 모든 마음은 편지로 해소되었다. 끊임없이 편지는 오고 갔다. 그걸로 나는 만족이었다.

내가 결혼하던 해에 그 애도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때까지 f가 보내온 편지들은 김대중 얘기로 가득 찼었다.ㅡ중년일기3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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