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작품을 소장한다는 것
몇 해 전부터 연예인, 유명인은 물론이고, MZ세대들을 중심으로 한 청년들의 미술작품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 미술시장의 규모가 더 커졌다.
지금은 좀 사그라들었다 해도 서울은 세계가 주목하는 수준의 아트페어, 지방 주요 도시에서도 아트페어가 매년 열리고 “부모님 댁에 그림 한 점 놔드려야겠어요”라는 패러디 광고가 등장했으니 예전과 같을 순 없을 것이다.
작품 투자의 과열현상을 꼬집는 의견도, 이제 호황이 끝났다는 주장도 있다. 그래도 지난 세대에 비해 예술 작품에 대한 높은 관심과 이해가 있기에 소장도, 투자도 하는 것일 테니 분명 반가운 일이다.
대학시절 첫 월급을 받아 그림을 샀다는 한 공중파 방송국 여성 아나운서의 책을 읽고, 나도 그런 상황을 소원해 봤지만 지방 출신으로 서울에 갓 입성한 자취생(요즘 말로 1인가구)이었으니 첫 월급으로 브라운관 텔레비전과 청소기 따위를 사야했다.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예술작품을 소장하고픈 마음이 컸지만, 쉽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사십대가 된 내가 처음으로 구매한 예술 작품은 강길순 작가의 조형작품이다. 2021년 가을 개인전을 통해 바닷소리 ‘절울’과 제주 여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섬세한 형상으로 빚었다는 평가를 받는 강길순 작가는 내가 제주올레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 십여 년 전 처음 만나 이후 지금까지 제주에 들르면 꼭 만나 뵙는 존경하는 분이다.
십수 년 전 제주올레에 단 한 명의 직원도 없던 그 시절, 언론이나 잡지에서 필요로 하는 사진을 전달하는 자원봉사를 하던 나는 한 블로그에서 공들여 찍은 수준 높은 올레길 풍경사진들을 발견하고 메일을 썼다. 제주올레 홍보를 위해 사진을 제공해 주십사 부탁하기 위함이었다.
나의 장황하고도 곡절한… 그럼에도 무례할 수도 있는 부탁에 블로그의 주인장은 제주올레를 만든 서명숙 이사장이 자신의 중학교 후배라며 제주를 알리는 일인데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흔쾌히 허락해 주셨고, 나는 사진 제공에 대한 저작권 표기 밖에 약속드리지 못했다. 초창기 제주올레를 알리는데 기여한 가슴 뛰는 사진들 가운데 대부분은 강길순 작가의 작품이다.
당시 중학교 미술교사셨던 강길순 작가는 몇 해 전 서귀포 남원에 <바람섬 갤러리>를 짓고 다양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계신다. 특히, 강길순 작가의 해녀사진은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과 함께 출간한 책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을 통해서도 주목받았다. 갤러리 한 켠에서는 지금도 활동 중인 젊은 젊은 해녀의 사진을 볼 수 있다.
강길순 작가는 해녀 사진뿐 아니라 제주 4.3 70주년 기념전시에 해녀들의 테왁을 소재로 조형물을 내놓을 만큼 해녀라는 주제에 관심이 높았는데, 몇 해 전부터는 해녀의 형상을 주제로 한 조형작품을 이어가고 있다. 해녀의 상반신을 흙으로 빚는 테라코타 작업, 도자 조형작품이 바로 그것이다.
선생님에게 직접 이들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듣다 보면 뭍에서는 물론이고, 바닷속에서 고달픈 삶을 지탱하느라 애쓰는 해녀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첫 번째 조소 전시에서는 주제를 깊은 바다의 울림소리를 의미하는 제주 방언 ‘절울’이라, 두 번째 전시에서는 깊이를 더해 ‘물웃’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나는 두번째 전시의 표제작이었던 ‘물웃’이라는 작품을 구매했다. 작품을 보는 순간 사로잡혔다고 밖에 생각하지 못할 만큼 강하게 휘몰아치는 어떤 마음이 쿵하고 부딪쳤고, 물 위에서 쉼에 대해, 바다에서의 치열한 순간들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하지만 아직 작품을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육지로 가져오지 못했다. 그 덕분에 여전히 바람섬 갤러리에 가면 이 작품을 볼 수 있다. 여러 사람이 작품을 볼 수 있으니 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나는 10년 전 법환해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동기생으로는 앞서 언급한 해녀 책을 쓰기 위해 입학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을 비롯해 지금 제주 곳곳에서 해녀로 활동하는 이들이 있다.
당시 육지에서 회사를 다니던 나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열리는 해녀학교 수업을 위해 비행기를 탔다. 매주 이론 수업과 실습을 이어갔고 두 달을 꽉 채운 마지막 날에는 몸에 돌을 달고 법환바다를 5m 수직하강해서 30초 간 밧줄을 잡고 있다가 물위로 올라오는 졸업시험을 통과했다.
그 시절 강길순 작가가 해녀학교 학생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주셨다. 나는 이 사진을 참고해 제주마린걸이라는 캐릭터를 스케치하고 프로필로 활용하고 있다. 강마레라는 나의 또 다른 이름에는 바다를 향한 지향도 담겨있지만 해녀학교의 경험도 한몫한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해녀를 주제로 한 이야기를, 작품을 풀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