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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마레 Oct 29. 2023

취미를 공유한다는 건 말이야

‘Rooms by the Sea’ 에드워드 호퍼 따라 그리기

지난 5월부터 남편과 함께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는 내 그림 수업에 남편이 합류했다. 일요일 오후에 2시간 5명이 최대인 그룹과외형 미술수업의 동료 수강생 몇몇이 평일 저녁수업으로 옮기면서 나를 제외하곤 1명밖에 남지 않았다. 난 수업이 폐지될까 두려운 마음에 잠재적 미술학도인 남편을 끌어들인 것이다.


그는 몇 해 전부터 ‘드로잉 365’라는 책으로 일주일에 한두 번 연필 스케치를 하는 취미가 있는 데다, 나와는 달리 어린 시절 미술학원을 다닌 경험에, 학창 시절 만화를 그려볼까 생각하기도 했단다.

일주일에 한 두번이지만 꾸준히 해오고 있는 남편의 드로잉 노트

더군다나 3년이 넘게 나의 미술수업 시간 동안 같은 건물 1층 카페에 앉아 공부를 겸한 업무를 하곤 했으니, 미술수업은 그에게도 업무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도전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는 첫 유화 그림으로 지난봄 서울에서 전시가 열린,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번 전시에 온 호퍼의 작품들 중에서 나는 해가 지기 전 숲 풍경과 해 질 녘의 빛이 비친 건물을 통해 서늘하고도 묘한 시간을 담은 ‘황혼의 집’이라는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남편은 ‘계단’이라는 작품을 손꼽았다. 그 그림에도 문 너머에 깊은 숲이 있다.

에드웨드 호퍼의 전시가 열린 서울시립미술관
Edward Hopper. House at Dusk. 1935. Oil on canvas. 127x92cm
Edward Hopper. Stairway. 1949. Oil on canvas. 30x41cm

하지만 그가 유화 수업을 시작하면서 그려보기로 한 작품은 원작을 보지는 못했지만  비현실적이면서도, 뭔가 혹한 ‘바다 옆방(room by the sea)’이다.


1951년 그려진  이 그림은 호퍼가 매사추세츠주 남동부 코드곶의 절벽 위에 있던 자신의 작업실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 장소를 묘사했다기보다는 고독을 은유적으로 그려낸 그림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Edward Hopper. Rooms by the Sea. 1951. Oil on canvas. 102x74cm

코로나시대를 건너오면서 호퍼의 그림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림 속 인물들에게서 느껴지는 고립과 단절, 공허와 고독, 상실이 누구나 외롭다는 위안을 주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다정하고 따뜻한 그림이 더 회복을 줄지, 고독감을 표현한 그림이 위안을 제공할지는 모르겠지만.


매주 한번 2시간씩 진행되는 수업인 만큼, 그림의 완성까지는 6개월 남짓 소요되었다. 그 기간을 통해 남편은 내가 작업하고 있는 여러 그림에 대한 단계별 이해가 이전보다 급격히 높아졌다.

예전에는 큰 관심이 없던 그림의 진행과정에 대한 이해 말이다. 이를테면 초벌을 마치고 세부 묘사가 진행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한 구분, 색의 톤 다운이나, 무채색 만들기의 고충에 대한 공감에 이르기까지.


예전에 수업을 마친 직후 내가 그리고 있는 그림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 지난 시간 사진과 비교해 고민을 거듭해 틀린 그림 찾기를 하던 상황과는 꽤 달라진 것이다. 아마도 같은 취미를 갖는 것의 장점일터.

이재석. 바다 옆방의 작업 과정

난 호퍼의 그림을 그려본 일은 없는데, (고독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을지라도, 고립감을 그리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남편의 그림을 통해 이번 기회에 호퍼의 전시나 책을 통해 작품을 보는 것 이상으로 그림을 깊이 바라보게 되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보고 읽고 해석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레벨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요즘 허다하게 많은 도슨트들의 미술작품 해설서나 미술애호가들의 에세이를 보노라면, 남의 그림을, 남의 이야기를 가져다가 뭘 하는 건가 싶은… 좀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남편이 호퍼의 ‘바다 옆방’을 그리는 동안, 나는 자넷 리커스의 정물화를 마무리하고, 호크니의 ‘더 큰 풍덩’을 그려왔다. 아직 그 작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물이 튀는 표현을 남겨두고 있지만.


새롭게 어떤 그림을 그려볼까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고, 응원하는 일은 혼자 일 때보다 분명, 즐겁다. 그는 다음 그림으로 반 고흐의 멋진 작품을 모작하게 될 것 같다. 따로 또 같이 그려나갈 새로운 그림도 기대해 주시기를…

이재석. Rooms by the Sea. 2023. Oil on canvas. 45.5x53.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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