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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마레 Dec 25. 2023

전시관 산책하기

2023년 전시 관람의 기록

올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이어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사진첩을 두루 살피며 정리하다가 꽤 다양한 전시를 다녀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전히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그림을 그려온 지 몇 해를 지나면서 달라진 점이라면, 가능한 전시나 아트페어 어디든 새로운 그림을 볼 수 있는 곳이라면 찾게 된다는 것. 그 기록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

국립중앙박물관 2023.1.7

새해 첫 전시는 지난해 일치감치 얼리버드 티켓을 구해두고 벼르고 있던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이었다. 화려하고 웅장한 그림들 중에서 단연 눈에 들어온 것은 마리 앙투아네트 초상(1778)과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 축하연(1773)을 그림 작품이었다.

곽수연 개인전

헤이리이랜드갤러리 2023.1.8

조선후기 민화나 풍속화와 같은 한국화에 동물을 의인화한 작업을 하는 곽수연 작가의 개인전. 너무 귀엽고 재치 넘기는 표정은 어쩔. 한국화 컬러링북 <반려견 풍속화첩>을 어머니에게 선물했는데, 무척 즐거워하며 색칠에 매진하시는 모습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전혁림 회고전

K현대미술관 2023. 2.11

통영의 바다, 장난감 블록 같은 건물들, 다리, 바다 위의 배들… 작가가 평생을 달궈 엮어낸 같은 듯 다른 그림들을 만날 수 있었다.

통영항

청와대 2023.2.18

전혁림 회고전에서 본 그림들보다 큰 통영 바다를 그린 작품이 청와대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마침 개방된 그곳을 찾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요청으로 제작된 작품 통영항은 높이 2.8m, 폭 7m로 한산섬과 미륵섬 등을 남해안 다도해 풍경을 담고 있다.

조선, 병풍의 나라 2

아모레퍼시픽 2023.2.24

전시를 보다가 다리가 아파서 힘들었던 경우는 드문데, 이 전시는 꽤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품 수는 45점이나 한 병풍당 적으면 6폭 많으면 12폭까지 있으니 얼추 400여 폭의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실로 놀라운 작품들이 많았다.

조선을 병풍의 나라라고 칭한 전시의 제목은 적확했다. 조선시대 병풍은 그야말로 미술작품이면서, 궁중의 역사적 기록이고, 생활의 도구이기도 하고… 어쩌면 거의 모든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라는 책처럼, 병품의 거의 모든 것으로 보고 온 것만 같다.

2023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

부산 벡스코 2023.3.5

요즘 핫한 작가들은 주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궁금할 때 찾게 되는 아트페어. 인스타그램에서 작업 중의 모습을 보며 감탄했던 극사실주의 작품을 그리는 동갑내기 안정환 작가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어 좋았다. 처음 만나는 이색적인 스타일의 작품들도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In the Garden, 양영자 & 김미아 14번째 모녀전

헤이리이랜드갤러리 2023. 3.18

미술교사였던 어머니가 50세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해 유화 작품을 그려오고 계신다. 딸은 팝아트를 주로 그리는데, 해외에서 열리는 초대전도 잦고, 주문도 많은 작가라고 한다. 모녀가 그림을 그려 함께 전시를 매년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자연 안에서의 평안, 김명진 개인전

서울서부지방법원 4층 2023.3.24

김명진 작가는 내 20대 중반 무렵 교회에서 만났다. 당시 화가인 언니가 그저 신기하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수묵과 담채로 풍경화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고 아트페어나 전시를 할 때면 그림만 보고 시간대가 맞지 않아 언니는 정작 만나지는 못하고 있는데, 이 전시도 마찬가지.


전시 장소가 독특해 평일에만 볼 수 있어 휴가를 낸 이른 봄날, 그림을 볼 수 있었다. 판사복을 입은 한 분과 나란히 서서 그림을 한동안 바라보았던 독특한 기억.

얼굴을, 보다

광화문 교보문고 2023.3.24

광화문 교보문고 한켠 작은 공간엔 다양한 전시가 언제나 열리고 있다. 많으면 10점 정도의 소규모 전시지만, 서점에 들를 때면 잊지 않고 이곳도 꼭 챙겨본다. 청년작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점이 좋다. 이 날은 얼굴을 주제로 한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데이비드 호크니 & 브리티시 팝아트

동대문디지털플라자 2023.4.22

데이비드 호크니는 청년 시절부터 노인이 된 지금까지 시대적 흐름을 이끌고 있다. 전시는 1960년대 사회적 문화적으로 급변하는 에너지 가득한 영국 런던을 담고 있었다. 호크니옹이 요즘 즐겨하고 있다는 아이패드 작품들도 볼 수 있어 좋았다.

에드워드 호퍼 : 길 위에서   

서울시립미술관 2023.5.13

무척 붐볐다. 한국에서 열리는 첫 번째 호퍼의 전시회. 작품들을 사진으로 찍을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눈에 담을 수 있는 특별함이 남으니까. 유화들도 좋았지만, 스케치와 물감의 제품에 이르기까지 제작 과정을 모조리 남겨놓은 세심함에도 놀랐다. 위작 논란 따위를 애초에 불가능. 삽화가로 활동했던 시절의 그림들도 흥미로웠다.

그대로가 좋아 니 얼굴, 정은혜 작가 초대전

울산중구문화의전당 2023.5.16

이제 배우로 작가로 성장한 은혜를 보는 내 마음이 그대로의 얼굴처럼이나 좋다. 넓은 전시공간을 가득 채운 얼굴들을 보면서 이제 내가 은혜에게서 성실함과 꾸준함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가수 이무진의 얼굴 그림에 쓴 팬레터는 사진으로 찍어 무진이 아버님을 통해 전달했음을 이 글을 통해 알려드린다. ^^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루드비히미술관컬렉션

마이아트뮤지엄 2023.5.20

12살 조카와 함께 간 전시. 20세기 추상화의 창시자로 꼽히는 바실리 칸딘스키의 흰 붓자국, 모델리아니의 알제리 여인, 피카소 아티초크를 든 여인에 이르기까지 대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특별함이 좋았다. 언젠가 쾰른의 루드비히 미술관에 직접 가보리라 다짐을 해보며 돌아왔다.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전 -라울 뒤피

더현대서울 2023.5.28

연이은 조카와의 전시관 투어. 뒤피의 밝고 맑고 화려한… 독특함에 감탄하고 있자니 조카도 이런 만화 같은 작가의 작품이 재미있다며 그려보고 싶다며 킥킥거렸다. 전기회사 다니는 고모는 전기와 빛의 시대에 대한 작품 ’전기 요정‘을 한참 바라보았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녀석은 파리 배경의 팝아트에 꽂혀 있었다는 상반된 상황도 재미있었다.

제주, 그리고 해녀

서귀포 복합문화공간 라바르, 갤러리 뮤즈 2023.6.7

사진을 전공한 손자가 할아버지의 목욕탕을 개조해 갤러리와 카페를 열었다. 서귀포 정방동의 온천탕은 이제 신체의 회복을 주던 공간에서 문화적인 회복의 공간으로 거듭났다. 다양한 전시가 이뤄지는데, 내가 방문했을 때는 제주와 해녀의 모습을 담은 일러스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장 줄리앙 : 여전히 거기

경주 우양미술관 2023.7.12

일을 하다 도저히 사무실에 있기 힘들어서 시간 연차를 내고 경주로 차를 몰았다. 산업도시 울산에서 한 시간만 가면 고즈넉한 도시 경주에 닿는다는 사실은 여전히 신기하다.


우양미술관에서는 프랑스 출신 일러스트레이터 장 줄리앙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서울 DDP에서 보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여유 있게 관람할 수 있어 좋았다. 유명 브랜드들과 협업한 작품들만큼이나 수많은 습작 드로잉이 인상적이었다.

영국 내셔널 갤러리 명화전

국립중앙박물관 2023.7.29

세잔의 사과와  금을 붙여 만든 화려한 액자에 이르기까지 감탄할 거리가 너무 많은 영국 내셔널 갤러리전. 비싼 물감 울트라마린을 아낌없이 사용한 기도하는 성모마리아와 존 스투어트경과 동생 버너드 스튜어트경의 초상도 흥미로웠다. 역시 이 시절 그림은 귀족들의 전유물.

Oasis in Inle IV : 김덕진

일산 공갤러리 2023.9.9

내가 처음 유화를 배운 선생님의 개인전. 선생님은 미얀마 인레 호수 그곳 사람들의 삶의 풍경을 그려오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여러 차례 개인전을 찾고 있지만 늘 새로운 감동을 받게 된다. 자연에 가까운 삶의 방식이 주는 특별함이 담겼다.


공갤러리는 일산에 위치한 대형 카페인데, 전시를 통해 때때로 이색적인 모습으로 손님을 맞는다. 작가에게도. 손님에게도, 카페 줜장에게도 좋은 일. 역시, 카페가 필요하다.

2023 울산국제아트페어

울산 우에코 2023.10.20

이번 울산국제아트페어가 올해로 세 번째를 맞았다. 초기엔 계속 열릴 수 있을까 남의 걱정도 많이 했는데, 그래도 3년 연속 이어지고 있으니 다행이다. 이번 전시에서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작품은 박소은 작가의 BTS멤버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 한국민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해오고 있는데, 한국적 요소와 트렌드를 잘 머무려 내는 솜씨가 좋다.  


또 아프리카 여러 국가 작가들의 그림도 내놓은 갤러리도 눈에 띄었다. 색감과 표현이 이색적인데, 묘하게 빠져드는 느낌. 또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사계

울산중구문화의전당 2023.10.30

내가 그림을 배우는 문화센터의 단체전. 유화로 그린 앞니 빠진 조카 2호의 초상인데, 어쩌다 포스터에 포함되었다. 전시 후에는 녀석이 좋아하는 공룡친구들 덕분인지 자기 방에 걸어두고 싶다고 해서, 자체 제작한 어음 5,000만워(원이 아니다)를 받고 걸어주었다.

2023 대구아트페어

대구 엑스코 2023.11.5

지역 예술인과의 협업 프로젝트 덕분에 알게 된 백다래 작가의 작품을 보러 대구에 갔다. 대구아트페어는 처음인데, 청년미술프로젝트 섹션을 꾸준히 마련해오고 있다고 했다. 설치와 영상 작업을 주로 하는 백다래 작가는 요즘 존재론적 고민을 담은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다양한 청년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안소현 개인전, 수무한 바람

도잉아트 2023.11.11

미술 관련 기사를 검색하다가 안소현 작가의 개인전 소식을 접하고 무척 추워 고민을 거듭하다 양재까지 갔다. 제주 자연의 바람을 찍은 김영갑이 떠올랐다. 안소현 작가는 구글 스트릿뷰를 통해 본 먼 어느 도시의 바람을 담아내고 있다고

한다. 젊은 친구들이 좋아할 만한 파스텔 톤의 아기자기한 색이 담긴 바람의 표현이 따스하다고 느껴졌다.

이슬아, 네모 안의 너와 나

이구이구갤러리 2023.11.18

인스타그램의 팔로우가 9만에 이르는 스타작가, 이슬아. 깔끔하고 단정하면서도 도시의 소외와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을 담고 있어, 인기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전시에 다녀오면서 구매한 일러스트 책도 때때로 열어보곤 한다.

Oasis in Inle IV : 김덕진

울산 아트그라운드HQ 2023.12.1

김덕진 선생님의 올해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전시. 어느 공공기관 로비에서도 진행하고 있다는데 가보지 못했다. 아트그라운드HQ는 울산 남구 주택가에 있는 작은 전시공간이다.


지난여름 일산의 대형 카페에서와는 다른 인례 호수의 풍경을 또 볼 수 있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이 작은 공간에서 나도 전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뭐 언젠가는 말이다.

2023 어반브레이크

부산 벡스코 2023.12.15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광고도 한몫했지만, 내가 일러스트를 그리고 있는 집앞목욕탕의 팝업스토어 몰래탕의 부스를 만나러 부산에 갔다.


라이브로 진행되는 그래피티 라이브 페인팅이 출입구에서부터 시선을 끌었고, 기존 아트페어와는 또 다른 생동감, 젊은 감각이 느껴져서 좋았다.

정리를 하고 보니, 올해만 모두 25번의 전시회에 다녀왔다. 물론 몇몇 빠진 것들도 있다. 부디 그저 눈으로 스쳐 지나간 것이 아니었기를.


책이 인쇄된 종이의 묶음이 아니라, 책 안에 활자에 담긴 의미들 그리고 그 사이 침묵들이 책인 것처럼. 그림도 그저 눈에 보이는 다채로움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의미와 진행되던 과정의 수많은 공기들이 담긴 것임을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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