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칼퇴왕 정대리가 알고 보니 사장님 아들?!
아버지 회사로의 이직을 결정하고서 본격적으로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아버지 회사로 옮기고 나면 곧 중국에 가야 할 터, 결혼을 먼저 하고 약 반년 정도 신혼을 가진 후에 이직을 하기로 했다. 당시에는 별생각 없었지만 회사의 사정을 고려하면 좀 더 회사 입장에서 나은 일정이 있었을 거 같다. 하지만 아버지는 우리가 결정한 일정을 상수로 두고 거기에 맞춰 나의 입사를 준비하셨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가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회사 일로 인해 우리 가족의 신변이 크게 바뀐 적은 없었다. 가정의 중요 의사결정을 앞에 두고 회사 운영을 거기에 맞춰 나가는 게 아버지의 철학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된다. 그렇게 나는 결혼 준비를 먼저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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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로 결혼이 결정되고 나서 이직 일자는 2015년 7월 1일로 정해졌다. 약 1년 정도 남은 시간, 아버지 회사와 사업에 대한 공부...를 하진 않았고 평상시와 다름없이 회사를 다니고 결혼 준비에 집중했다. 간간히 아버지께서 중국에서 이런 걸 진행하고 있다고 알려주셨지만 당시에는 "아 그런 일이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하고 넘어갔다. 딱 하나 나름 준비라고 할 거는 2014년 11월, 중국 출장에 따라가서 일종의 MOU 사인 행사에 참석한 것. 회사에 휴가를 내고 동행한 출장에서 아버지는 이런 일이 재미있을 거 같은지 물으셨고 나는 뭣도 모르는 상태에서 재미있을 거 같다고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그렇게 모르니까 시작할 수 있었다 싶다.
앞으로 갈 회사에 대해서 미리 공부하는 대신, 나는 현재 회사 일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그렇다고 칼퇴왕이 야근왕이 된 거는 아니었고(...), 전과 같이 회사생활을 했다 정도. 이직을 결정하고서 회사생활을 어떻게 할지, 회사에는 언제 알릴지를 결정해야 했는데, 결혼 후 2015년 3월에 알려서 약 3개월의 준비기간을 서로에게 갖는 걸로 마음을 먹었다. 그게 지금 일하는 팀에 최대한 부담을 덜 주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내 나름대로 최대한 일찍 이야기해서 결원에 대한 준비기간을 충분히 갖게 하는 것. 그리고 퇴사 직전까지는 퇴사가 예정되지 않은 사람처럼 일하는 것. 그게 나를 받아주고 키워준 회사와 팀에 대한 의리라고 생각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약 2주가 지난 3월의 첫 주, 팀장에게 퇴사와 이직 계획을 이야기했다. 팀장과 팀원들은 꽤나 놀란 눈치. 항상 행색이 후줄근하고 부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전형적인 지방에서 올라온 흙수저 타입이라고 봤는데 알고 보니 금수저였어? 이런 느낌. 아버지가 사장님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나면 많이들 금수저 얘기를 하는데, 이 한 마디로 정리를 하곤 했다.
제가 금수저면 신혼집이 14평 빌라겠습니까?
결혼 직전까지 내가 10년을 살았던 자취방도 학교 근처 4평짜리 월세방이었으니 금수저와는 좀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는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는 분이었고 이는 자식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중학교 1학년 때, 스타크래프트를 하려고 컴퓨터를 바꿔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랑 형은 그 해 겨울방학 1달 동안 아버지 회사 공장에 가서 일을 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거저 주어지는 것은 없다, 일을 해야 뭔가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다. 물질적인 재산을 받은 것보다 훨씬 값어치가 큰 것을 물려받은 셈이다. 그렇게 부유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환경에서 다른 친구들과 비슷한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게 좋았다.
2015년 6월, 간단히 짐을 싸서 팀장과 팀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회사를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고 몇 시간 후 주거래은행에서 전화가 와서 전 직장과 연계해서 만들었던 마이너스 통장은 해지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퇴사가 실감이 났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이 회사가 내 마지막 회사가 되도록 해야겠지. 이런 각오와 두려움과 설렘으로 시간은 지나가고 입사일인 7월 1일이 다가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