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아들 키우기
2020년 2월, 뉴스에서 연일 들려오는 코로나19 소식을 보며 "설마 우리나라까지야" 하던 것도 잠시. 어느새 마스크 없이는 외출이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에게도 마스크와 함께하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돌도 지나지 않은 아들은 다행히 마스크 착용 대상이 아니라서 그나마 숨통이 트였지만, 나와 아내는 외출할 때마다 마스크를 쓰고 나가야 했다. 처음에는 답답하고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 그런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우리가 열심히 개척해 온 외출 코스들에 가기 어려워진 것이다. 문화센터, 키즈카페 등은 영업 중단이 많았고 감염 걱정 때문에 식당이나 카페도 거의 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니 5단계 여행 계획은 고사하고 동네 나들이조차 어려워진 상황. 그동안 실내 시설을 잘 활용했던 우리의 육아 패턴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원래 아내는 2020년 3월 또는 9월에 복직할 계획이었다. 육아휴직을 1년 반 정도 쓰고 직장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는데, 코로나 상황을 보니 계획을 수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 이 상황에 어린이집 보내고 복직하는 게 맞을까?"
"그러게 어린이집도 감염 위험이 클텐데..."
"그럼 복직을 최대한 미루자!"
다행히 아내 회사는 육아휴직 기간이 약 20개월 정도 가능하여 2021년 3월 복직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최대주주님의 현명한 판단!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만약 그때 복직했다면 코로나 시대 적응과 아들의 기관 생활 적응을 동시에 했을 텐데,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렇게 우리는 예상치 못하게 집콕 육아의 달인이 된 것은 아니고(...) 야외 활동을 더 늘렸다. 그나마 우리에게는 그동안 열심히 도장 깨기를 해온 동네 공원들이 있었다. 야외에서는 사람들이 별로 없으면 그나마 마스크를 좀 벗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게다가 아들은 마스크를 안 써도 되니 신나게 뛰어다닐 수 있었고. 이 시기에 우리는 진짜 안양/의왕/군포의 모든 공원과 산책로를 섭렵했다. 평일에도 갈 곳이 없으니 아내와 아들은 집 근처 공원을 매일 다녔다.
하지만 아무리 공원이 많아도 매일 같은 루틴은 지겹기 마련. 그때 우리에게 큰 힘이 된 것은 비슷한 처지의 지인들이었다. 아들과 비슷한 또래 아이를 둔 선배/후배/친구 가족들과 자연스럽게 '코로나 육아 동맹'을 결성하게 되었다. 서로 집을 오가며 아이들을 함께 돌보는 일종의 공동육아가 시작된 것이다. 원래도 집에 손님 초대해서 놀고먹는 걸 좋아했는데 공동육아 핑계로 더 많이 초대하고 찾아갔다.
아이들은 친구와 함께 놀 수 있어서 좋고, 어른들은 육아를 나눠서 할 수 있어서 좋고. 이렇게 아내와 둘이서만 육아하는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 우리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구나" 하는 위안도 되었고. 무엇보다 놀고먹을 핑곗거리가 생겨서 좋았다(...). 이 시기를 같이 보낸 집들 중에 우리 아들처럼 외동인 집들이 많아서 서로 형제가 되어주기로. 둘째는 다음 생에(...).
마스크를 쓰고 외출하는 것도, 실내보다는 야외를 선호하는 것도, 친구네 집에서 하루 종일 보내는 것도 이제는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아들에게는 이 모든 게 당연한 일상이다. 이 아이에게는 마스크 쓴 어른들, 문 닫힌 키즈카페, 집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이 그냥 세상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5단계 여행 계획은 코로나 종식까지 연기되었지만, 우리는 새로운 방식의 육아를 배웠다. 못 하는 것들이 생겨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 화려한 시설이 없어도 친구들과 함께라면 즐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못 가게 되니 오히려 지인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게 신기한 아이러니.
2023년 5월에 코로나는 공식적으로 종식되었고 이제는 3년 동안 마스크를 쓰고 살았던 사실이 낯설게 느껴진다. 전쟁 중에도 사랑은 싹트고 애는 태어난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그랬다. 코로나 시대에도 애들은 자랐고 우리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애들이 그냥 자란 건 아니었다. 내가 코로나에 걸리고 가까운 지인들도 코로나에 걸리면서 전쟁 육아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