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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남이 Jun 14. 2020

이슬아에게 답장이 왔다

많이 부끄러웠던 이야기


길고 아름다운 답장을 적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연재를 마치며 많은 답장을 받았는데 아무에게도 답장을 못 쓰다가 해남이 님께는 짧게라도 적고 싶어 졌습니다.



올해 초 이슬아 수필집 '일간 이슬아'를 읽게 되었다. 2018년 봄부터 가을까지 이슬아가 메일로 연재한 글들을 묶어 놓은 책이다. 그녀의 가족, 애인, 주변 사람들의 일상을 아름답게 그려내는 글솜씨에 반해버렸다. 소중한 것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글을 잘 쓰고 싶다고 늘 생각해 왔다.

 

그런 이슬아가 올해 다시 연재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연재가 끝나면 곧 책으로 엮어져 나올 이야기지만 구독으로 만나고 싶었다. 이미 진열되어 있는 빵보다 갓 구워진  빵은 향과 온기가 더해져 더 맛있는 법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구독 신청서를 작성했다. 글이 매일 자정 즈음 도착한다고 하니 글을 받을 주소는 부러 회사 메일로 남겼다. 건조한 업무 메일함에 이슬아의 글이 오아시스처럼 자리 잡고 있을 걸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함께 기분 좋았으면 하는 친구들에게도 회사 메일 주소를 받아 구독을 선물했다. 늘 반복되는 일상에 이슬아의 글이 우리에게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길 바랐다.




고소한 빵 냄새가 풍기는 카페에 있는 기분으로


그렇게 4월 한 달의 아침은 내게 꽤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사무실에 서둘러 갈 이유도 생겼다. 자리에 앉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이슬아의 글이 도착 했는지 확인한다. 바로 열어보지 않고 따뜻한 커피를 준비해 온다. 편안한 마음으로 이슬아의 글을 열어본다. 이 시간만큼은 사무실도 몽마르트 어딘가 있는 헤밍웨이의 카페가 남럽지 않았다.

 

그 카페에서 나는 코로나 시대의 도서관을 구경하기도 하고, 새소년의 황소윤이라는 인물을 들여다 보기도 하고, 응급실 청소노동자의 삶을 알아가기도 했다. 그러다 공장식 축산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맞닥뜨리게 되었다.


마지막 주 목요일에 보낸 '실패할 것이 분명한 이야기'라는 글은 그녀의 친구 홍은전이 쓴 글이었다. 경기도 화성의 한 공장식 축산을 하는 곳에 다녀와 적은 글이었다. 이슬아가 비건을 지향한다는 것은 글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중요함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도축장 이야기는 끝까지 읽어낼 수가 없었다. 매일 아침 카페가 된 나의 일상에 도축장을 상상해본 적은 없었다.




사랑과 용기를 담아  


노력했지만 끝내 그 글을 다 읽어내지 못하고 업무를 시작했다. 불쾌한 기분이 이어지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대한 이슬아의 글은 이런 글이 아니었다는 생각, 그래서 고기를 먹는 나를 비난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 이렇게 예고도 없이 갑자기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다니 무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등등. 어느새 팬이 었던 내 마음은 글을 구독하는 소비자가 되어 그녀에게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후로 나는 이 일에 대해 종종 생각하게 되었다. 불편함을 느끼는 나에 대해서 그리고 이 글을 보낸 그녀에 대해서. 그러다 문득 이번 연재 마지막 글의 제일 마지막에 적혀 있었던 인사가 눈에 띄었다.  '사랑과 용기를 담아 이슬아 드림'


이슬아가 담았다는 '사랑과 용기'에 대해 내 마음대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이슬아에게도 말하고 싶어 졌다. 독자에게 모두 답장을 하지는 못하지만 후기를 소중하게 읽고 있다고 했던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슬아 님. 안녕하세요. 회사 다니며 겨우 짧은 글을 써내는 해남이라고 합니다. 4월 한 달을 '슬아글커피한잔'으로 시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지난 목요일에 보내준 '실패할 것이 분명한 이야기'는 다 읽지 못했습니다. 동물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었다기보다 솔직하게는 '고기를 먹는 나'를 비난하는 것 같아 읽기 힘들었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슬아 님의 글이 아니라 당황스러웠습니다. 슬아 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느낌 받았습니다. 지인에게도 구독을 선물했는데 '괜히 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곧 나도 누군가에게 '강요 같아 보이는 것'을 하고 있겠구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자꾸 강조하다 보니 상대방이 불편함을 보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 저는 바로 돌아서버리는 편입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만을 찾아갑니다. 그런 것이 편하기도 하지만 외롭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슬아 님은 슬아 님을 잘 모르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자신이 맞다고 믿는 이야기를 꾸준히 드러내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슬아님은 정말 용기있는 사람이구나... ' 생각했습니다. 문득 글의 마지막에 '사랑과 용기를 담는다'는 말이 이런 의미는 아닐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직은 동물권에까지 제 생각이 가닿지는 못해 불편한 마음을 느꼈습니다.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 일에 대해서도 저만의 방식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날이 온다면 시작은 아마도 슬아님의 글이었다고 말하게 될것 같네요. 또 만나길 기대하며 글 줄입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소중하게


바로 다음날. 이슬아에게 답장이 왔다.

  


제 글을 받아주시고 마음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해남이 님의 일상에 '슬아글커피한잔'이 될 수 있어 영광입니다. 한 달 동안 여러 주제의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중 어떤 것도 독자님께 강요할 마음은 없답니다. 감히 그럴 수는 없지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바꾸게 하는 건 산 하나를 옮기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그리고 소중하게 다룰 뿐입니다.  



부끄러웠다. 이슬아의 클래스를 느꼈다고 할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강조했다고, 내가 맞다고 믿는 이야기를 드러낸다고'. 그러나 그녀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그리고 소중하게 다룰 '이라고 말했다.  


그녀와 내가 쓰는 단어와 표현의 차이에서 삶의 태도가 드러난 것 같았다. 이슬아가 왜 이슬아인지. 그녀의 글이 주는 따뜻함과 아름다움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이슬아처럼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더 어렵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그녀에게 메일을 쓰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우아한 그녀에게 쁜말로 얻어맞았다. 당분간 나는 아마 깨나 자랑을 하고 다닐 것 같다. 이슬아에게 답장을 받았다고. 그리고 많이 부끄러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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