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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남이 Oct 18. 2020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했던 일들(상)

회사생활의 기록

면접관은 물었다.

"잘할 수 있겠어요? 몸으로 하는 일이 많은데 힘들지 않겠어요?"

나는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잘할 수 있습니다. 석사 과정에서 모두 경험해 보았습니다. 잘할 수 있습니다."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 이야기다. 이 시국에 비하면 10년 전의 취업은 쉬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 또한 눈물겨운 취준생 시절이 있었다. 공대를 나와 석사까지 마친 나는 주로 제조업 기반의 기술 연구소에 입사 지원서를 넣었다. 연구소에서는 고객의 니즈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고 공장에서 생산하기 전에 미리 테스트를 진행하는 일들을 하기 때문에 생산 현장과 상황이 비슷하다. 거의 대부분의 제조업 생산 현장은 안전을 제일 우선으로 한다. 위험한 기계와 무거운 재료, 높은 온도와 압력을 컨트롤 해야하는 일들을 해내야 하는 곳이다. 면접관은 아마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질문했을 것이다. "정말 잘할 수 있겠어요?"


면접관은 세 번 정도 같은 질문을 했다. 나는 세 번 모두 잘할 수 있다고 대답했지만 그는 자꾸 내 대답을 의심했다. 네 번째 질문을 받았을 때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해버렸다. "저… 혹시 지금 제가 여자라서 계속 물어보시는 건가요?" 나는 대답 대신 불합격 메일을 받았다. '그때 그 말을 하지 말고 다시 더 잘할 수 있는 이유를 말했어야 했는데…'라고 잠시 자책을 하기도 했지만 네 번이나 같은 질문을 하는 이유를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 회사는 여자 지원자에게 그 질문을 공통적으로 하는 것 같았다. 어떤 여자 지원자는 재차 질문하는 면접관 앞에서 앉고 있던 의자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리는 것으로 할 수 있음을 증명 했다고 한다.(꽤 무거운 의자로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 장면을 상상하면 아직도 울컥하는 마음이 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남자'와 비교해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대답에 공을 많이 들였었는데 그것은 대게 물리적인 힘 같은 것과 관계가 있는 것이라 사실 그런 질문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최선의 준비였다. 취업 카페에서는 결혼을 하거나 출산을 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답도 준비해 두었는데 지금까지 미혼인 내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참 별 걱정을 다 했구나' 싶다.


결국 나는 내 입으로 '미인박명하지 않겠다'는 자기소개를 하고서야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미인박명하지 않겠다는 말은 '미인은 빨리 죽는다는 사자성어를 활용하여 나는 예쁜 척, 약한 척하지 않고 이 회사에서 오래 살아남겠다' 정도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당시에 이 비유가 나름 신박하다고 생각한 나 자신이 정말 너무너무너무 밉다.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 내가 입사한 회사는 대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회사 중 하나였다. 회사의 성장이 정점에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채용 규모도 컸고 더불어 여자 신입 사원의 비율도 이례적으로 높은 편이었다. 나름의 우여곡절 끝에 현재 가장 인기 있는 대기업에 입사한 내가 조금 대견해 보이기도 했을 무렵,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올해 여직원 채용 비율을 필수로 늘려야 해서 평소보다 여자 직원을 많이 뽑았다고..' 나는 금세 겸손해질 수 있었다. 여자는 뽑지 않을 이유도 되지만 뽑을 이유도 되었다.


처음 배정받은 팀에는 나보다 2년 먼저 입사한 남자 사원, 여자 과장, 남자 차장, 남자 파트장, 남자 팀장이 있었다. 나의 보고 라인이기도 했다. 남자 사원은 나보고 운이 좋다고 말했다. 이유는 여자인 내가 여자 과장님 밑에서 일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운이 좋은 이유는 그가 운이 나쁜 이유기도 했다. (남자 상사를 둔) 동기들보다 본인이 훨씬 더 힘든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선배들도 그런 그의 노고를 자주 인정해주었다. 그런 이유로 운이 좋은 거라면 그는 성별이 다른 사람이 1명이고 나는 3명인데 다들 나 보고만 운이 좋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100% 다른 성별과 일하는 동기들보다는 내가 25% 운이 좋은 셈이었다. 동기들은 종종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파트장이 내가 여자라서 너무 어렵대'. 여자라서 어렵다고 하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 그들에게 여자 직원은 '어렵거나 다루기 까다로운' 존재처럼 보였다. 그런 이미지로 불려지는 여자 선배와 친하게 지내는 것은 슬기로운 회사생활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자 선배들과 더 잘 지내려고 노력했다. 그때는 나에게 주어진 25%의 운을 실감하지 못했다.


나는 회식이 그렇게 싫지 않았다. 술을 곧잘 먹어 선배들이 술자리에도 자주 불러주었다. 술잔을 들고 구석구석 이동하며 친분을 쌓는 남자 선배를 보았다. 그 모습 좋아 보였고 어떤 선배는 다른 사람들하고도 한잔씩 하는 거라며 술잔을 쥐어주며 등을 떠밀기도 했었다. 나도 그 생각에 동의했고 자리를 옮겨 다니며 술을 먹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내 또래의 한 여자 선배는 회식 내내 같은 자리였다. 나중에 그 이유를 들어보니 어떤 여자 사원이 회식에서 자리를 이동하며 술을 잘 먹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저 사원은 술자리 애교로 회사생활을 한다는 식의 평가를 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로 선배는 자리를 옮겨 다니지 않다고 말했다. 나도 그 말을 듣고 나서는 회식자리에서 망부석이 되었다. 대신 술잔을 들고 오시는 분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것으로 회식을 즐게 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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