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하니 생각나는 이야기
아주 오래전부터 써보고 싶은 글이 하나 있었다.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도 내 의도를 정확히 전달하는 고급 스킬이 필요한 글 이랄까. 아직 스킬은 부족하지만 마침 ‘담배’라는 글감을 받으니 이제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흡연자를 감화시킬 것인가’ 이것이 내 오랜 고민이었다. 올해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층간 담배 냄새 피해 민원이 작년보다 19.2% 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증가한 것이다. 층간 담배 냄새는 층간 소음에 비해 원인이 되는 집을 찾는 것이 더 어렵다 보니 해결도 쉽지 않다고 한다.
딱히 민원을 제기한 적은 없지만 나도 오랜 피해자 중 한 명이다. 인생의 80% 정도를 아파트 중간층에 거주해 왔으니 여름마다 겪는 일이 되었다. 일단 담배 냄새가 들어오면 소극적으로는 창문을 닫는 것, 그 보다 적극적인 방법이라면 소리를 질러 보는 것, 좀 더 적극적으로는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호소문을 붙이거나 관리실에 신고를 하는 것 정도가 있을 것이다. 우리 아파트는 관리실에 신고를 하면 여자 기계음으로 “흡.연.으.로.불.편.을.호.소.하.는.사.례.가.늘.고.있.습.니.다.입.주.민.여.러.분.의.주.의.를.부.탁.드.립.니.다.”라는 멘트가 방송으로 흘러나온다. 이 방송을 듣고 ‘어이쿠 얼른 담뱃불을 꺼야지’ 하고 느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어떻게 말하면, 어떻게 전달하면 원만하게 이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며 편지를 적어보았다. 이 편지를 발송할지 말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710호에 살고 있는 주민입니다. 잠시만 시간을 내어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제 정말 여름입니다. 이 글을 보시는 입주민님도 창문을 자주 열어 두시겠지요? 저희도 미세먼지가 없는 날에는 거의 창문을 열어 두고 생활합니다. 그런 계절이니까요.
저는 우리 아파트 풍경을 참 좋아합니다. 특히 우리 동에서는 데크가 있는 잔디밭 광장이 보이잖아요. 저는 주말이면 텐트를 쳐 놓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을 구경하곤 하는데요. 여느 공원이 남부럽지 않은 풍경이라 생각합니다. 높은 고층 아파트만 즐비한 이곳에 아이들이 활기차게 뛰어놀고 주민들이 여유를 즐기는 모습에서 사람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참 좋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가끔 시끄럽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아이들이기에 이해해 주고 싶습니다.
창문을 열고 생활하다 보니 소리뿐 아니라 냄새도 들어옵니다. 맛있는 음식 냄새가 올라오기도 하지만 담배 냄새는 참기가 어렵더라고요. 거실에서 가족과 TV를 보고 있을 때나 식탁에서 음식을 먹고 있을 때, 주방 옆의 세탁실 창문으로 담배 냄새가 들어옵니다.
혹시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담배 냄새가 날 때마다 창문에 대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담배 냄새나요! 심하게 나요!! 이러시면 안 되죠!!!” 당연히 유쾌한 목소리는 아니었을 겁니다. 네, 화가 난 목소리지요. 어떻게 집에서 담배를 피울 수가 있는지 비흡연자인 저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어떤 날은 재빨리 일층으로 내려가 어느 집에서 나는 연기인지 확인하려 한 적도 있습니다. 담배 냄새는 정확히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이 글도 불특정한 집들에게 보여드려야 할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연기의 진원지를 알아냈더라면 바로 그 집으로 찾아갔을 겁니다. 그리고 점잖고 이성적인 척, 고상하고도 엄중한 표정을 지으며 경고를 날렸겠지요. 그런데 다행히도 진원지를 알아내지 못했고 저는 그동안 이 문제를 해결할 더 좋은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흡연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담배를 나가서 피워 달라’는 부탁이 당황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부탁이라기보다 요구에 가까웠을 테니까요. 갑자기 들어온 담배 냄새가 불쾌한 것처럼 갑자기 문을 두드리고 찾아온 이웃이 반가울 리가 없겠지요. 사랑하는 사람의 잔소리도 들으면 화가 나는데 생판 모르는 사람이 다짜고짜 비난을 해 온다면 미안한 감정이 들다 가도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하는 억울한 마음이 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긴 글을 보냅니다. 이제 저는 흡연자님을 대면하고 싶지 않습니다. 막상 우리가 대면해서 나눌 이야기도 무척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 불편한 감정의 실체를 확인할 뿐이지요. 요즘은 주민들끼리 감정이 상해 법적인 문제까지 가는 일이 흔한 뉴스인 세상이잖아요. 아무리 서로 예의 있게 이야기한다고 해도 감정이 상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요. 집은 우리가 가장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공간에서 얼굴을 붉히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저의 가장 큰 바람은 이 글을 보신 흡연자님이 집에서 흡연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혹여 제 바람이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생각하려 합니다.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조용히 창문을 닫는 일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다만 맡고 싶지 않은 냄새를 맡게 되어 불편함을 느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런 말이 있잖아요. 내가 편안함을 느낀다면 다른 누군가가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는 말이요. 이웃 간의 다툼은 누가 잘못을 했다기보다 서로 각자가 편안한 방식만을 취하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담배 피우지 말아 달라는 소리를 장황하게도 늘어놓는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보고 싶었습니다. 불편한 감정에 대해 서로 비난하지 않고 이해하는 방식이면 어떨까 하는 마음입니다.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좋은 이웃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 냄새’ 나는 아파트 풍경에 저도 일부분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이제 시작하는 여름을 함께 잘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을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710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