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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남이 Jan 02. 2024

나의 글쓰기 친구

글 쓰는 여자들의 특별한 친구

가만 생각해 보니 글쓰기로 친구를 사귄 것이 처음은 아니다. 때는 중학교 2학년. 천리안으로 대표되는 PC통신 시절. 나는 한 연예인의 팬카페에서 게시글로 매달 통계 1,2,3위를 석권하는 사람이었고, 나와 위를 다투던 친구 E와 친해지게 되었다. 우리는 다음(daum)의 옛 버전인 한메일의 아이디를 만들 때, 우리가 함께 선망한 연예인의 이름 뒤에 각자의 이니셜을 붙여 우정아이디를 만들기도 했었는데 나는 다음이 카카오가 될 때까지 그 아이디를 사용했다. E는 양산에 살고, 나는 울산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손 편지로 우정을 주고받았다. E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매달 우리의 연예인이 가장 잘 나온 잡지를 구하고, 엠알케이 편지지를 사 모았다. 나는 소심한 모범생 스타일의 학생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었으면 좋았으련만 공부도 노는 것도 그냥 어중간한 학생이었다. E의 아버지는 목사였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교회와 성당을 구분하였고, 성직자도 결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나보다 더 착한 학생이었어야 할 친구는 목사인 아빠 속을 꽤나 썩이는 딸이었다. E의 편지에는 늘 사건이 있었다. 어떤 오빠를 알게 되어 부산까지 놀러를 다녀왔다는 둥, 친구들과 생일을 맞아 술을 먹었다는 둥 얘기를 전해 올 때마다 어떤 리액션을 해야 할지 잘 몰랐다. 그래도 되냐고 하기엔 너무 범생이 같아 보이고, 아는 척을 하기에는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그녀는 성적도 상위권이어서 이래저래 평범한 나를 기죽이기도 했다. E는 자신의 세계를 늘 답답해했고 틈만 나면 탈출하려 애썼다. 우리는 실제 만남을 준비하기도 했었는데 나는 고작 15살인 내가 시외버스를 혼자 탈 수 있다는 사실에도 놀라워하는 수준이라 친구의 계획에 쉽게 응하지 못했다. 그때 우리가 만났더라면, 그 친구를 통해 세상을 넓혔더라면 내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E는 마침내 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더 큰 세계로 넘어갔다. 우리의 손 편지는 자연스럽게 중단되었고, 나중에 대학에 가서 싸이월드를 통해 그 친구의 근황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우리의 모습이 너무 달라 우정아이디만이 우리가 친구였다는 흔적으로 남았다.


새해 연휴에 '글 쓰는 여자들의 특별한 친구'를 읽었다. 현재 시점의 나의 글쓰기 친구 J가 연말 선물로 건네준 책이다. 책에는 다양한 여자들의 우정이 등장한다. 그녀들이 서로에게 끌리는 이유는 다양하면서도 비슷하다. 코코 샤넬은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자신의 뿌리에 열등감이 있었다. 뼛속부터 왕족인 피아니스트 미시아의 교양과 문화적 자산에 홀딱 반해 친구가 된다. 보부아르라는 여성 작가는 라이벌 의식이 우정이 되었다. 피아노를 잘 치고 글씨도 멋지게 쓰는 자자라는 친구에게 호감을 가졌고, 자자의 예민하면서도 대범한 태도, 분명한 의사표현에 호기심과 매력을 느꼈다. 버지니아울프의 남편인 레너드는 버지니아의 지성에 매료되어 자신에게 남성적 매력을 전혀 느끼지 못했노라 고백하는 버지니아에게 결혼만 할 수 있다면 자신의 다른 욕망을 모두 포기하겠다고 하였고, 그녀에게 끝까지 가장 완벽한 글쓰기 메이트가 되어주었다. 그들은 각자 다른 이유에서 우정을 시작하였으나 자신과 반대되는 매력을 가진 이들에게 매력을 느꼈다는 점에서 유사한 경향을 가진다. 반대에 끌렸다는 말은 또한 서로의 개성과 재능을 발견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들은 읽기와 쓰기라는 도구를 통해 서로를 성장시켰다. 때로는 응원하면서 때로는 다그치면서, 끌어주면서 다독이면서 서로를 지지하고 믿어주었다.


이 책을 선물 한 나의 글쓰기 친구 J는 2020년 글쓰기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나는 J의 지적인 면이 좋았다. 책을 읽는 흉내를 내던 나는 진짜로 오랫동안 책을 읽어온 사람을 보면 하트 안경을 끼고 만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2년, 그저 멤버로만 알고 지내던 J에게 글쓰기 메이트가 되어 달라고 제안했다. J는 읽고 쓰는 것에 능숙한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우리의 데면데면한 사이가 마감을 지키기에는 최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2주에 한 번씩 편지를 주고받으며 1년을 꼬박 마감을 지켜 약 60편 정도의 글을 읽고 써냈다. 그 옛날의 언니들이 그랬듯 우리도 읽고 쓰며 서로를 응원하고 발견하면서 우정을 쌓았다. 나의 어려움을 드러내지 않고는 더 이상 글을 쓰기 어려운 시점에 이르렀을 때, 나는 불안하고도 조심스럽게 나의 이야기를 꾹꾹 담아 보냈다.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여올까. 어떻게 나를 위로해 줄까. 일주일 동안 몹시 떨리는 마음으로 답장을 기다렸다. 드디어 친애하는 그녀의 답장이 도착했고 나는 그냥 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J는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큰 비밀을 발설(?)하며 나를 놀라게 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치부와 부끄러움이 있다고, 사람마다 그런 일 하나쯤은 있는 거라고 대단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너무나 세련된 방식으로 귀한 위로를 받았다. 또 우리는 한 사람과의 긴밀한 연결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고도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로 우리가 세상과 물리적으로 단절되었을 때, J 와의 서신 교환이 있어 고립의 시간도 잘 견딜 수 있었다.


그런 J와 다시 글쓰기를 시작한다. 이제 마감을 지키기에는 최적의 사이가 아니게 되었지만(우리의 마감은 월요일이지만 오늘은 화요일이다.) 글쓰기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사람이, 내 글에 무조건 반응해 줄 한 사람이 있어 용기를 내어 글을 올린다. 이것은 몹시나 거창한 새해 다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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