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M의 <코미 양은 커뮤증입니다>(2021) - 영상연출이 돋보인 애니
미디어: 애니메이션 TV
제작: OLM TEAM KOJIMA
감독: 와타나베 아유무
제목: 코미 양은 커뮤증입니다
장르: 학원, 일상, 코미디
방영일자: 2021 4분기 (1기) + 2022 2분기 (2기)
편당 러닝타임: 24분
화수: 12화 (1기) + 12화 (2기)
가끔 애니메이션을 다 보고 나면 오프닝과 엔딩을 찾게 되는 작품들이 있을 것이다. <코미 양은 커뮤증입니다>가 대표적인 예시였다. 작품을 다 보고 나서 오프닝과 엔딩을 몇 번씩이나 보았는지 모르겠다. 영상 안에서 인물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계속 보게 되었다. 특히, 2기 엔딩에서는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이 모든 등장인물들을 꿰차고 있는 게 느껴질 정도로 인물들의 성격을 너무 잘 표현하였다. 그 정도로 오프닝과 엔딩 속에서 인물들이 살아있었기에 다시 찾게 되었나 보다. 그중 역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역시 1기 오프닝이 아닐까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pRFgMtHtvYY
1기 오프닝은 영상 자체로도 훌륭했다. 그러나 작품을 다 보고 오프닝을 다시 보았을 때 굉장히 많은 것을 담아두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오프닝에서 나온 몇몇 연출들이 작품 내 다른 곳에서도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애니메이션의 얼굴인 오프닝을 정말 세심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프닝과 마지막 화: 비가 그친다
마지막 화인 2기 24화의 "1년간입니다" 편을 다시 한번 봐보자. 1학년 1반 모두가 교실 청소를 하고 있다. 시간대는 화이트데이보다 지난 어느 날이다. 학급의 마지막 날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날의 끝에서는 비가 오고 있다. 그걸 어색하게 바라보는 코미와 타다노는 1학년의 추억들을 되짚어보며 즐거웠지 않냐고 한다. 그리고 타다노는 이렇게 말을 한다.
비가 그치질 않네요. 그래도 언젠가는 그치겠죠.
이후 비가 그친 후의 입학식 모습을 보여준다. 대충 봐도 알겠지만, <코미 양은 커뮤증입니다>에서 비가 그친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장치인 것이다. 타다노는 평범한 성격의 특징을 살려야 하기 때문에 대사를 잇지 못하였지만, 시청자들은 '코미 너 앞에 새로운 시작이 열릴 거야' 내지는 '새로운 시작이 열렸던 1년이었지 않냐'는 말하려던 것이었을 거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장치를 마지막 화에서만 사용했던 것이 아니다. 무려 애니메이션의 제일 처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1기 오프닝에 사용하였다.
1기 오프닝에서는 코미가 혼자 고독하게 서 있는 장면이 나온다. 그와 대조되게 다른 인물들은 두 명씩 걸어 다닌다. 그리고 비가 오고 있다. 하지만, 곧바로 비가 그치면서(없어지면서) 다른 인물들의 모습을 하나둘 보여주고 그들과 함께 지내는 코미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독했던 코미에게서 새로운 시작이 있을 거란 걸 비가 그치는(없어지는) 모습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비가 내리고 그치는 장면을 통해 새로운 시작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면은 이 두 장면이 끝이다 (만약 더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화를 보면서 '어? 비가 그치는 장면 어디서 봤는데...' 하면서 1기 오프닝을 다시 찾아본 분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연출은 반드시 써야 할 장면에서만 사용하여 극적인 효과를 주려는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의 의도를 느낄 수 있었다.
오프닝과 엔딩: 빈 공책
코미의 상징인 공책으로도 오프닝과 엔딩에서 코미의 상황이나 감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오프닝에선 빈 공책 위에 친구들이 나올 때마다 물망초가 늘어나는 연출이 기억나는가? 물망초의 꽃말은 '나를 잊지 마세요'이다. 물망초가 점점 많아지는 연출을 통해 코미가 절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이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코미에게 있어서 빈 공책은 무슨 뜻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자. 공책은 커뮤증이 걸린 코미에게 소통창구의 역할을 한다. 즉, 공책이 비어있다는 것은 소통을 할 일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오프닝에서의 빈 공책은 수많은 물망초 때문에 전혀 소통이 없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빈 공책이 없었어도 위화감은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코미 양은 커뮤증입니다> 1기 엔딩을 보고 나면 위 장면의 느낌이 사뭇 다를 것이다.
해당 장면은 1기 엔딩에서 중학생 코미에서 고등학생 코미로 전환할 때 나오는 장면으로, 공책의 첫 장부터 끝까지 비어있음을 강조한다. 코미의 중학생 시절을 생각해 보면 이 장면은 코미가 늘 고독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등학교 진학할 때까지 비어있던 공책 위에 놓인 수많은 물망초들. 코미가 오프닝 장면에서의 책상을 보았다고 생각해 보자 (실제로 1기 오프닝은 1학년 1반에서 촬영을 했다는 컨셉이다). 코미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느껴질 것이다.
코미의 빈 공책을 이렇게 대놓고 드러내는 장면 또한 내 기억이 맞다면 오프닝과 엔딩 두 장면을 제외하고는 나오지 않는다.
사실 이와 같이 애니메이션 통틀어 딱 두 번 보여준 상징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보름달이다.
코미는 커뮤증 때문에 중학생 시절을 외롭게 지냈었다. 그래서 사춘기 시절 학급에서 느낄 수 있는 중요한 감정 두 가지를 잃고 있었다. 바로 우정과 사랑이다. 빈곤하였던 코미의 감정과 경험이 풍요로워졌음을 느낄 때 보름달을 등장시켰다.
첫 번째 보름달은 1기 마지막 장면에서 나온다. 해당 장면에서는 코미가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 번째 보름달은 2기 '밸런타인데이입니다'에서 코미가 타다노에게 초콜릿을 주며 등장한다. 각각 코미가 우정과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시금 확인할 때를 나타낸다.
이처럼 <코미 양은 커뮤증입니다>에서 연출에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볼 수 있다. 특히, 첫 번째 보름달 장면은 만화책에도 없는 장면을 넣어 새로이 보여준 장면이다.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이 장면을 허투루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위와 같은 연출의 디테일을 보았을 때 오프닝과 마지막 화에서 비를 활용한 연출, 오프닝과 엔딩에서 빈 공책을 활용한 연출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요즘 시대에 스킵하기 마련인 오프닝과 엔딩에도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코미 양은 커뮤증입니다> 감독이 연출에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코미 양은 커뮤증입니다> 본편에서도 훌륭한 연출들이 많다. 특히, 1화에서 칠판으로 소통하는 코미와 타다노의 장면 연출은 작품을 본 모든 분들이 잊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본 장면은 대사가 많이 없는 장면이어서 컷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만들어 인물들의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은 의도된 구도와 배치를 통해 대사가 없음에도 시청자들이 인물들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끔 하였다. 감독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는 한 편인 것이다. 작품 내의 훌륭한 연출들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면 <코미 양은 커뮤증입니다>를 꼭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