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1914) - '나'와 나
미디어: 책
제목: 마음
지은이: 나쓰메 소세키
옮긴이: 송태욱
출판사: 현암사
출간연도: 2019 (초판 8쇄)
원문 출간연도: 1914
페이지: 295p
처음으로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게 되었다. 그중, <마음>이 입문하기에 좋다고 하여 나쓰메 소세키의 첫 시작을 <마음>으로 하게 되었다. 일단 현암사에서 표지를 간지나게 뽑아낸 게 맛도리였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지만 기회가 된다면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정도로 표지 감성이 엄청나다. 때깔 좋은 포장지 안에 뭐가 있나 하고 리본을 풀어보니 너무 재밌어서 뒤로 공중제비를 돌 뻔했다. 뿐만 아니라 내 마음을 톡 건드려주는 부분들도 많았다. 역시 <마음>이었다.
살아 숨 쉬는 소설 <마음>
나는 일본 매체를 많이 접했을뿐더러 나쓰메 소세키가 상황묘사의 핵심요소들을 콕콕 짚어 표현한 덕분에 공간적 디테일이 살아있는 상상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재밌게 상상하며 읽은 부분들은 따로 메모까지 해두었을 정도였다. 그중 두 가지 장면을 소개하려 한다. 선생님과 목서, 그리고 아버지와 졸업장 장면이다.
나는 선생님 댁과 이 목서를 전부터 마음속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처럼 함께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이 나무 앞에 서서 다시 이 집 현관에 들어설 올가을을 생각할 때 지금까지 격자문 사이로 비치던 현관의 전등이 문득 꺼졌다. (p100)
묘한 매력적인 이끌림이 있는 선생님 집의 현관문을 나오니 달콤한 향이 매력적인 목서가 한 그루 서있다. 잠깐 본가에 내려갔다가 가을이 되면 목서의 향에 이끌려 이 집에 다시 돌아올 날을 상상하고 있다. 그러다가, 현관 불이 탁하고 꺼지면서 세상이 어두워진다. 괜히 살짝 한 번 뒤돌아보고 제 갈길을 가는 '나'. 올가을은 오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질 좋은 종이로 된 졸업장은 한번 접히자 좀처럼 아버지 뜻대로 펴지지 않았다. 적당한 위치에 놓이자마자 금세 원래 접힌 상태로 돌아가 쓰러지려고 했다. (p106)
아들이 가져온 졸업장이 자랑스러워 잘 보이는 곳에 전시해두려 한다. 하지만 뜻대로 잘 펴지지 않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려 하며 힘 없이 쓰러지는 졸업장. 그리고 병으로 누워있는 아버지와 병세에 대해 이야기하는 '나'와 어머니의 장면으로 전환된다. 픽 쓰러지는 졸업장의 모습과 아버지의 누워있는 모습이 물 흐르듯이 연결된다.
이렇듯 <마음>에서는 중요한 포인트들이 살아 숨 쉬는 장면들이 많았다. 그런데, 사실 <마음>이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마음>의 '나'와 내가 그렇게나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나'와 나
입으로는 축하한다면서 마음속으로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선생님이,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닌데 무슨 대단한 일처럼 기뻐해주는 아버지보다 내게는 오히려 고상해 보였다. 나는 결국 아버지의 무지에서 나오는 촌스러움이 불쾌했던 것이다. (p105)
'나'는 도쿄제국대학을 나왔고, 나도 서울 소재지 대학에 입학했다. '나'가 아버지에게 졸업장을 보여주던 장면처럼, 나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별생각 없이 학기 성적이 좋았다고 외할머니께 말씀드리면 외할머니는 그렇게나 기뻐하셨다. 속으로 '별 대단한 일도 아닌데'라고 생각했다. 대학원에 들어와서도 그랬다. 처음으로 논문을 제출했을 때 외할머니는 내가 집안의 자랑거리라면서 이제 졸업하는 거냐고 말씀하셨다. 대학원 졸업은 논문의 질과 양뿐만 아니라 지도교수님의 허락까지 떨어져야 하는 험난한 과정인데, 그 사실을 모르는 외할머니의 말씀을 들었을 때 괜히 짜증이 났다. '나'처럼 촌스러움이 불쾌했던 것이다.
이런 걸 보면 내 마음은 아직도 어린가 보다. 어쩌면 어렸을 때의 마음이 더 성숙했던 것 같다. 어렸을 때의 나는 레고 조립과 퍼즐 맞추기를 좋아했다. 완성품을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내가 마치 대단한 작품을 만든 것 마냥 외할머니가 그렇게 기뻐하시고 좋아해 주셨다. 그게 좋았던 것 같다.
덕분에 <마음>을 읽으며 중간중간 안부전화를 많이 드렸다. 외할머니는 그런 나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내게 하셨다. 그때, 나의 촌스러움이 불쾌했다. 외할머니는 나의 사소한 행동이라도 기뻐하셨지만, 나는 외할머니의 사소한 행동조차 불쾌해했던 나의 마음이 싫었다. 그래서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지만 전화를 더 자주 드리자고 생각했다.
이러한 이유로 <마음>을 몰입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읽었다. 특히, '나'가 선생님의 편지를 받아 읽을 때는 내가 진짜 그 편지를 들고 줄줄 읽는 것 같았다. 너무 몰입한 나머지 '이런 중요한 사실들을 왜 나한테?'라고 생각일 들 정도였다. 이 리뷰도 굉장히 재밌게 썼다. '나'의 행동들을 돌이켜보는 게 마치 내 과거를 들추는 것 같았고, 정리를 위해 선생님의 생각들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마치 '나'가 선생님의 묘한 매력에 끌렸다는 장면 같았다. 이상 '나'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일체화되어 읽을 수 있던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