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켄의 <우마무스메 새로운 시대의 문>(2024): 최강은 나다
미디어: 애니메이션 TV
제작: CygamesPictures
감독: 야마모토 켄
제목: 우마무스메 새로운 시대의 문
장르: 경마, 스포츠
개봉일자: 2024 7월 11일 (한국)
러닝타임: 24분
게임 <우마무스메>를 원작으로 한 극장판 영화 <새로운 시대의 문>이 최근 개봉했다. 이게 영화 <위대한 쇼맨>과 같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재밌다고 하길래 기대는 했지만 '얼마나 재밌겠어?'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의 문>은 자그마한 의심을 했던 나의 뒤통수를 세 번 쳤다. 강렬한 작화와 사운드로 주는 액션감으로, 가슴을 들끓게 만드는 서사로, 그리고 마지막까지 여운을 남기는 철학까지. 이건 십덕들만 울리는 <우마무스메>가 아니었다. 몸속에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울리는 <새로운 시대의 문>이었다.
최강은 나다
<새로운 시대의 문>은 경'마'가 아닌 '경'마에 초점을 둔 영화였다. 영화 초반부터 거친 숨과 미친 듯이 흘러나오는 땀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일그러진 얼굴을 과장되게 그려 놓았다. 특히 후반부에서의 기술 발동 연출은 <우마무스메>를 아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흥분감을 안겨준다. <우마무스메>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고유기가 연상되게끔,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무언가 일어날 거야'라는 예고를 베이스 사운드와 번쩍거리는 색감으로 강렬하게 전달한다. 이어지는 거친 작화를 통한 잔디를 부숴버리며 앞으로 미친 듯이 뛰어나가는 표현은 우승을 갈망하는 그들의 터질 듯한 감정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액션 영화로써 <새로운 시대의 문>의 볼거리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문>은 스포츠 성장물로서도 기대 이상이었다. 영화의 제목인 '새로운 시대'는 21세기가 시작되는 2001년을 뜻한다. 기념비적인 연도에 경마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고 사랑받는 경기인 '일본 더비'에서 우승한 정글 포켓에게 아나운서는 "21세기 신시대의 문의 주인공은 바로 정글 포켓이다"라는 낭만적인 멘트를 외쳤다. <새로운 시대의 문>은 이러한 배경을 깔아 둔 이야기였다.
하지만 단순한 우승만으로는 당연히 재미없을 터. 각본의 치밀함은 환상의 삼관마 아그네스 타키온을 정글 포켓의 성장 매개체로 사용한 데서 드러난다. 아그네스 타키온은 실제로 일본 더비가 열리기 전 경기였던 '호프풀 스테이크스(라디오탄파배 3세 스테이크스)'와 '사츠키상'에서 그 정글 포켓을 압도적인 차이로 우승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후 부상으로 은퇴를 하여 더 이상 경마장에서는 볼 수 없었다. 지금도 사람들은 상상한다. 만약 아그네스 타키온이 있었다면 일본 더비 우승마는 달랐을까? <새로운 시대의 문>은 이 역사를 철저하게 활용한다. 정글 포켓과 아그네스 타키온을 라이벌 구도로 만들어 둔 후 정글 포켓에게는 '다음은 꼭 이긴다'라는 과제를 내준다. 그런데 돌연 아그네스 타키온이 사츠키상 이후 은퇴한다. 비록 일본 더비를 우승했지만 더 이상 달릴 이유(아그네스 타키온을 이긴다)를 잃어버린 정글 포켓. 정글 포켓이 '우마무스메는 왜 달리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답을 내리는 과정 속에서 희로애락을 그린 것이 <새로운 시대의 문>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새로운 시대의 문>은 관객을 더욱 흥분시키는 요소를 더한다. 바로 아그네스 타키온과 같은 환상의 삼관마 후지 키세키를 활용한 점이다. 환상의 삼관마 아그네스 타키온으로 고난과 역경을 주었다면, 다른 환상의 삼관마 후지 키세키로 극복과 성공을 주는 대립구도를 만들어 냈다. 같은 환상의 삼관마지만 주인공 정글 포켓에게 주는 감정을 달리하여 성장을 이끌어낸다. 여기서 오는 정글 포켓의 값진 승리는 심장을 요동치게 한다.
더 나아가 각본의 치밀함이 드러나는 점은 환상의 삼관마들의 부활이었다. 환상의 삼관마는 과거에 촉망받았지만 부상으로 인해 은퇴를 한 말이다. <새로운 시대의 문>에서도 후지 키세키와 아그네스 타키온은 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경기장을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글 포켓과 같이 '우마무스메는 왜 달리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제대로 뛰지 못하는 자신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계속해서 고뇌한다. 그들의 성장까지 같이 그려낸 것이 <새로운 시대의 문>의 이야기이다.
<새로운 시대의 문>에서 그들의 성장에 더 감동받을 수 있던 이유는 디테일한 연출 덕분이었다. 정글 포켓은 부서진 프리즘이라는 물건을 통해, 후지 키세키는 버드나무 그늘이라는 배경을 통해, 아그네스 타키온은 히키코모리의 모습이라는 행동을 통해 그들의 불안감과 초조함을 순수 시각만으로 강렬하게 전달한다. 마지막까지 프리즘이라는 물건이, 버드나무 그늘이라는 배경이, 히키코모리라는 행동이 어떻게 바뀌어가는지 <새로운 시대의 문>을 주의 깊게 본다면 그들에게 더욱 푹 빠지게 될 것이다.
사실 '우마무스메는 왜 달리는가?'에 앞서 '우마무스메는 달리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한다. 즉, '우마무스메는 왜 달리는가?'라는 질문은 곧 '우마무스메는 왜 살아가는가?'로 치환할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우마무스메는 사람과 닮아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문>은 이 점을 철저하게 이용했다. 사람처럼 움직이고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는 우마무스메를 통해 '우마무스메는 왜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을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처럼 느끼게끔 착각하게 만든다.
<새로운 시대의 문>의 캐치프레이즈는 최강은 나다였다. 경기에서 1등을 향해 달려가는 그들에게 어울리는 한 마디다. 그런데 작품 내에서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의 답으로 '1등을 하기 위해'가 아니라 '어제의 나를 이기기 위해'를 내세웠다. 이를 보았을 때 <새로운 시대의 문>에서 진짜로 하고 싶었던 한 마디는 최강은 오늘의 나다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