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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님 Jul 12. 2023

기대하는 마음

현정언니에게 쓰는 첫 번째 편지

나다정 언니.


“띵동”하고 첫 편지가 왔을 때, 저는 가족들과 영화관에 있었어요. 자리를 잘못 찾아 들어가는 바람에 팝콘 통을 한 아름 안고는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한 줄 앞으로 옮긴 직후였지요. 두 시간 내내 메일함이 궁금해 들썩거렸는데 막상 시간이 났을 땐 쉽게 열어보지 못하겠더라고요. 편지를 주고받고 싶다는 저의 마음을 지나가는 말처럼, 그저 농담처럼 가볍게 들리기를 바라며 몇 차례 띄워 보냈는데 그것이 이렇게 형태를 갖추어 오다니요. 괜한 숙제를 만들어 드린 게 아닌지 덜컥 걱정되기도 했어요.


생각해 보면 저는 늘 속으로 언니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서로 알게 되고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누고, 언니가 타인을 대하는 모습을 곁눈질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이럴 때 언니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는 저를 발견했어요.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다는 건 이럴 때 유리하죠. 내가 기억하는 그 사람의 주된 특징은 보통 나에게 없는, 있기를 바라는 좋은 점들이니까요. 종종 저는 마치 게임 캐릭터를 교체하듯 좋아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어 생각하고 행동해 보려고 해요. 다른 이의 생각과 행동은 어디까지나 나의 짐작이고 짐작은 틀릴 때가 더 많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저는 점점 나은 사람 쪽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날 본 영화는 [엘리멘탈]이라는 애니메이션이었어요. 가족을 떠나 말도 통하지 않는 새로운 땅에 와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터전을 일군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누구보다 이해하고 자랑스러워하지만 아버지가 원하는 것과 자신이 원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며 괴로워하는 딸 앰버의 이야기가 나온답니다. 앰버의 아버지는 어린 앰버를 무릎에 앉히고 “너만 준비되면 이 가게는 네 것이 될 거야”라고 이야기해요. 어린 앰버는 준비된 상태가 되기 위해, 다시 말해 아버지의 마음에 들기 위해 무진 애를 씁니다. 진상 손님들에게도 유연하게 대처하려면 상대방을 들여다보아야 한다지요. 성질을 죽이고요. 불같은(불 그 자체인) 앰버는 가게에서 크고 작은 사고들을 내고 수습하며 ‘나는 부족한 딸이야. 나는 왜 이럴까?’ 자책합니다. 빠릿빠릿하게 척척 잘 해냈던 모든 순간은 재와 함께 먼지가 되어 날아가 버리고, 못났던 순간들만 남아 앰버를 괴롭힙니다. 성장한 앰버는 어느 순간 자신이 정말 잘하는,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되는데요, 이때도 자책은 잊지 않고 문을 두드려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뒷전에 놓으며, 진짜 자신의 욕구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나쁜 딸이야’ 하고 중얼거리던 앰버의 모습이 2주가 지난 지금까지 종종 생각나요.


아이들에게 기대한다는 건 어떤 걸까요 언니. 저는 늘 아이들의 미래에 내가 원하는 색을 먼저 칠하지 않으려고 애써 왔어요.  학생 때 학기 초에 써내야 했던 문서 중에 ‘내가 원하는 직업’ 옆에 늘 ‘부모님이 원하는 직업’ 칸이 있었던 걸 떠올리면서요. 혹시라도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바람이 아이를 오염시킬까 두려웠던 것 같아요. 그런가 하면 아이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게 가능할까, 애정을 가지고 있는 대상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고민하는 순간도 분명 있답니다. 저는 사실 바라고 있어요. 우리 아이들이 자기 앞가림은 하는 사람이 되기를, 자신을 아끼고 남도 그만큼 신경 쓰는 사람이 되기를, 넘어진 자리에서 스스로 일어나 툭툭 털고 나아갈 힘을 갖게 되기를 바라요. 어떤 바람도 기대도 갖지 않는다면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요. 부모의 기대 덕분에 그나마 내가 되는대로 살지 않고 어떻게든 바로 서기 위해 애써 온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관건은 ‘바란다’는 것 자체보다 ‘무엇’을 바라는 것인지가 될 것 같기도 해요. 어쨌거나 저는 저희 아이들이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사는 것을 원치는 않으니까요. 기대에 못 미쳤다고 자신을 몰아세우는 모습은 정말이지 보고 싶지 않은데, 이렇게 쓰면서 며칠 전 두 자릿수 곱하기 두 자릿수를 엉망으로 했다고 아이에게 길길이 날뛰던 제가 떠올랐어요(요즘 쥐구멍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습니다).


언니는 아이에게 어떤 종류의 기대를 하나요? 혹은 전혀 기대하지 않는 엄마일까요?

아이들은 우리에게 어떤 걸 바라고 있을까요?


뜬구름같은 질문들을 펼쳐놓고 하교 시간을 맞이하러 갑니다.

언니, 편지 정말 고마워요. 백발이 성성한 우리가 돋보기 너머 글자를 읽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상상하며 피식 웃어봤어요. 주신 다정한 말들을 고이 담아 간직할게요. 앞으로도 계속 써주세요!


백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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