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생각지도 못했던, 가을 축제와 함께한 대형 콘서트
회사가 망할 것 같아도 쉽게 사라지진 않는다. 나 역시도 일이 당장 없을 것 같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지점에서 연결연결 되어서 일이, 진행된다. 마포구의 가장 큰 축제인 '마포나루 새우젓 축제'는 2020년부터 지속적으로 연락을 했던 곳이다. 방송국이 있는 곳이 마포이기도 하고, 지역 축제와 연계해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나는 줄곧 '원더 버스킹'이라는 음악 공연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는데 다른 장르의 음악 콘텐츠를 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던 차에, 회사 라디오 콘텐츠 중 '손태진의 스윗 랑데부'팀에서 제안을 받았다. 가을 콘서트를 함께 해보자고.
그렇게 여름부터 시작된 프로젝트는, 협찬처를 서둘러 찾아야 했고 (네.... 어떤 콘텐츠든지 제작비를 구해와야 합니다...) 뇌 셀의 한 칸에서 마포 축제가 떠올랐다. 다행히 축제 세팅이 다 완료되지 않은 상황이라서, 일정이 촉박하긴 했지만 협업 기회가 남아 있었고 축제 마지막날을 함께 하게 되었다. 손태진 씨는 2020년 제작했던 프로그램 '힐링스테이지 그대에게'에도 출연한 인연이 있었고 그 후 트로트 프로그램에서 우승하는 등, 대형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었기에 다시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나 역시도 반가웠다.
회사는 회사대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촉박한 시간을 보내고 나는 나대로, 프로젝트를 진행시켜야 하니 바쁜 9월, 10월이 이어졌다. 9월에는 콘서트 공개 녹화를 함께할 출연자를 세팅해야 했다. 이번 라인업은 손태진-신성-에녹으로 이어지는 트로트 경연대회 3인방과 가을날 너무 잘 어울리는 매혹적인 보이스 박기영 님, 히트곡 부자 변진섭 님, 테너 김현수 님으로 구성했다. 섭외의 과정은 완료 지점까지 까임과 기다림, 긴장의 무한 루프다. 음악 프로그램은 섭외가 구성의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고통' 속에서도 무조건 참고 기다려야 한다. 나 좋다는 사람보다 싫다는 이가 더 많은 섭외의 세계에선 '죄송합니다, 그날 일정이 있어서요'와 같은 말을 수도 없이 듣게 된다. 상처는 금물. 이번 섭외도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낸 끝에 손태진 님과의 인연, 프로그램과의 인연, 피디와의 인연 등 다양한 인연의 겹으로 완성했다.
섭외가 끝나면 이제 공연 세팅이 기다리고 있다. 공연장을 A부터 Z까지 처음부터 세팅하는 경우도 있고, 행사 중간에 동참하게 되어서 기존에 세팅된 스태프들과 손발을 맞춰야 하는 상황도 있다. 이번 경우는 후자였다. 마포구의 대형 프로젝트다 보니 조율할 것이 많았다. 계속해오던 우리 팀이라면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도 혹시 모를 일들에 대비해 확인의 과정이 필요했다. 누락된 부분은 요청해야 했고, 진행하면서 몰랐던 부분도 새로운 스태프들로부터 배우게 된다. 일정이 빡빡한 축제 무대의 경우, 녹화 당일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가수의 리허설 시간을 확보해야 하고, 무대 세팅 시간도 확보하며, 기존의 행사 계획도 차질을 빚어선 안된다.
10월 22일 녹화 당일은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정신을 깜빡 잃은 것 같다. 그 정도로 하루가 1시간처럼 지나갔던 날이다. 아침 10시부터 밤 11시까지- 오종종 거리며, 현장을 세팅하고 진행하고 하다 보면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시간도 온다. 오늘은 화내지 말아야지 했던 나와의 약속도 종종 깨트리게 된다. 가령 이런 것이다. 공연 전 무대 세팅을 하던 중 알전구가 깨졌다. 알전구 유리 조각이 무대 사방으로 튀었다. 알전구는 유리니까 어제든 깨질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30분 후 이 무대에서 비보이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단 거다. 우리의 실수로, 누군가가 공연하는데 차질이 생기면 안 된다. 축제 현장에 당연히 비와 쓰레받기가 있겠지 싶지만. 그렇지 않다. ㅎㅎㅎ 어떻게든 찾아내어 무대를 안전한 장소로 만들어야 한다. 화내지 말아야 하다가도, 화가 올라오는 순간 중 하나다.
또, 가수들은 대기하고 있는데 앞 행사가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가수들에게 리허설 시간을 줘야 하는데... 애가 탄다. 목이 탄다. 속이 탄다. 새까맣게 ㅎㅎㅎㅎ
그래도 예상치 못했던 제안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의 녹화가 사고 없이 잘 마무리되면 그것처럼 감사한 일이 또 없다. 감사합니다. 퇴근길 하늘을 보며 조용히 읇조린다.
회사 사정이 어려우니 하반기에 뭔 일이 있으려나 싶었지만. 일은 있었다. 끊이지 않고 계속.
끝날 때 까진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을 우린 종종 쓴다.
맞다. 무엇이든 확언하긴 힘들다.
인생에서 겨우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예측하기 힘든 것이 인생이라는 정도 아니겠나.
11월도, 12월도 나는 이 불안한고, 때론 달콤한 인생의 초콜릿 상자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른 채 마주할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