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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난 Jun 06. 2024

젊은 사람들의 여행은

스위스 여행

베른과 로잔에 머무는 2박 3일 동안 비와 함께 했다. 휴양을 위해 온 것이 아니니 넉넉하지 않은 여행자의 마음이 조급해질 수밖에. 로잔을 떠나려니 맑은 하늘이 나타났다. 비 내리는 제네바호수만 봐서 맑은 날의 제네바호수 가를 걸어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지만 다음 목적지가 내 발길을 잡아끌었다. 체르마트다. 체르마트를 가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마터호른 때문이다. 높은 산이 대개 그렇듯 날씨 변덕이 심해서 선명한 모습을 보기 어렵다니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해서 그 가능성을 높여보고 싶었다.


미테호른은 높이가 4,478m, 마터호른을 가장 잘 볼 수 있다는 고르너그라트도 높이가 3,135m에 이른다. 이처럼 높은 산에 둘러싸인 체르마트 역시 1,620m나 되는 곳에 있다. 최고 높이가 1,708m인 설악산 정상에 체르마트가 건설된 셈이다. 이처럼 높은 지역임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로잔을 떠난 기차가 체르마트에 가까워지면서 푸른 풀밭이 하얀 눈밭으로 변했다.


체르마트 숙소에 가방을 맡기고 고르너그라트로 가는 산악열차에 올랐다. 서둘러 마터호른을 보고 싶은 조바심 때문이다. 경이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열차가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5월인데도 하얀 눈이 두툼하게 쌓여 있고, 눈도 날리고 있었다. 고르너그라트 역에 도착했다. 심한 눈보라로 인해 앞을 볼 수가 없었다. 마터호른은커녕 코앞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밭에서 인증사진(?)만 찍고 마터호른은 그림자도 보지 못한 채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산했다. 고르너그라트에서는 거세게 날리던 눈보라가 체르마트 시내에서는 눈 녹듯 사라지고 없었다. 이렇게 허망할 수가….


시내에서도 마터호른이 잘 보이는 전망대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제법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데 여기에서도 문제의 그 산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서 젊은 한국인 커플을 만났다. 그들은 수시로 웹캠을 통해 고르너그라트 전망대 주변 기상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맑은 날 산악열차에 오르기 위해서란다. 그런 첨단장비(?)가 있는 것도 모르고 거금(?)을 날리고 마터호른은 보지도 못하다니…. 안타까워하는 내게 젊은 사내가 시내에 있는 키르헤다리(교회 다리)에서도 마터호른이 잘 보인다고 귀띔해 주었다. 덕택에 다음 날 아침 황금빛으로 빛나는 마터호른을 볼 수 있었다. 웹캠의 존재를 진작 알았다면 고르너그라트에서 마터호른을 직관했을 텐데….


체르마트를 떠나 인터라켄으로 향했다. 마터호른에 맞먹는 4,158m의 융프라우를 위시하여 아이거, 묀히 등 고산준령이 가득한 동네다. 도착한 다음 날 피르스트(First)에 오르기 위하여 곤돌라를 탔다. 4인승 곤돌라에 함께 탄 사람은 젊은 한국인 부부다. 그들은 스위스에서 캠핑 여행을 하고 있었다. 유럽에서 렌터카 비용이 가장 싼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차를 빌려 곧바로 인터라켄에 왔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인터라켄에 도착한 이후 내내 비가 내려 초조했는데 야영한 지 3일 만에 마침내 선명한 융프라우와 피르스트를 보게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아직 알프스 트레일은 시도하지 못하고 차량으로 이동하며 야영한다는 그들에게서 건강한 행복이 느껴졌다.


루체른의 리기산. ‘산들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해발 1,797m의 비교적 낮은(?) 산이다. 비록 높이는 낮아도 주변에 펼쳐진 알프스의 웅장한 파노라마를 감상할 수 있어서 많은 사랑을 받는 산이다. 이곳을 찾은 많은 관광객 가운데 초등학교 저학년쯤으로 보이는 아들과 함께 여행 온 젊은 아빠가 있었다. 아이가 묻는 것에 열심히 대답해 주고, 아이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모습을 보며 그 나이 때의 내 모습을 떠올려봤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스위스를 여행하는 동안 많은 한국인을 만났다. 그들에게서, 젊은 사람들의 여행에서 건강한 행복을 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세월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들처럼 다양하게, 지금보다 더 값지게 나도 여행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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