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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빈 Jul 02. 2019

고맙습니다, 헝가리안

지난달 초 이야기...


자정께 허블레아니호 침몰현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부다페스트에서의 나의 임무가 끝난 직후였다. 낮에는 경찰이 통제하던 머르기트 다리 하류쪽 인도를 걸은 뒤 강변으로 내려왔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금빛 옷을 입은 국회의사당과 어부의 성이 보였다. 
강변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과 초가 족히 50m 정도 길이로 놓여져 있었다. 부다페스트에 당도한 뒤 현장을 둘러봤을 때보다 더 빽빽히 놓여있었다.
60~70대로 보이는 헝가리 남성이 꺼져있는 초의 심지에 일일이 불을 붙이고 있었다. 그에게 다가갔다. 사진을 발행할 것도 아니었지만 직업 본능으로 사진을 찍었다. 나를 보고서는 애잔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며 말을 건넸다.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한국인을 위로해주는 말이라는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에게서 돌아서는 데 그냥 갑자기 눈물이 터져나왔다. 슬퍼서도, 서러워서도, 힘들어서도 아닌 것 같은데... 
꽃고 강을 잔잔하게 지켜보던 헝가리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었다. 다른 남성도 다가오더니 주먹을 쥔 채 가슴에 손을 올렸다. 길건너에 있던 한 중년 여성은 나와 눈이 마주치길 기다린 듯했다. 고개를 수차례 끄덕거렸다. 눈물은 왜 나오는 지 의미도 모른 채 계속 흘러내렸다. 
마르기트 다리 인근은 현지인과 관갱객으로 북적이는 곳이다. 구조팀 본부 천막이 쳐진 머르기트 섬 역시 그렇다. 아침부터 조깅하는 이들로 넘쳐난다. 연인들이 벤치에 앉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분수대 인근은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귓가를 간지럽힌다.
한켠에선 헝가리·한국 측 구조대원들이 굳은 표정으로 묵묵히 선체 인양 준비 및 실종자 수색작업을 한다. 
첫날엔 이질적인 풍경으로 보였다. 야속한 느낌도 들었다. 허블레아니호 탑승객이 대부분 자국민이었어도 이런 풍경일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곧 자연스러워졌다. 
이들의 일상이었다. 슬픔도 애도도 일상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조깅을 하던 한 중년 여성은 취재 중이던 후배를 보고선 가슴에 손을 얹고 고개를 끄덕거렸다고 한다. 
희생자들의 대부분이 자국민이었어도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든다. 다뉴브 강변의 연인들, 산책하는 시민들이 불과 수십∼100여m 거리에서 일어난 일을 모르고 있지 않는다고 본다. 사랑을 속삭이다가도 지긋이 침몰현장을 바라보고 슬퍼하지 않았을까.
머르기트 다리에서 200m 정도 떨어진 숙소를 다니면서, 그리고 다리 앞 '기자실'로 삼은 카페를 들락거리면서 무수한 헝가리인들을 지나쳤다. 
많은 이들이 따뜻한 눈빛을 보내줬다. 동양인이 왜 머르기트 다리 인근에서 서성이는지 아는 듯했다.
카페에서 일하는 중 옆 테이블의 헝가리 남성이 한국인이냐고 묻고선 위로의 말을 건넸다.
다뉴브강에서 수십년간 활동해온 헝가리 잠수부들과 헝가리 당국측은 우리측의 계속된 선체진입 요청에 난감했을 순 있지만, 한국 잠수부들이 선체밖 잠수를 할수 있도록 했다. 인터뷰를 했던 헝가리 잠수부는 한국 잠수부들을 존경한다면서도 "이젠 지금까지 경험한 수중환경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라 했다. 기저에 어떤 정치경제학이 흐를수도 있지만 헝가리가 한국 당국의 입장과 한국인의 마음을 최대한 존중해주고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애초 침몰 사고가 터진 다음날 아침 베를린에 부다페스트행 직항편이 없어서 취재출장을 피해갔다. 뉴스통신사 특성상 도착시간이 중요하기 때문에 아침 부다페스트행 직항편이 있던 다른 특파원들이 갔다. 이런 재난은 제3자로 기사를 읽기도 마음이 무거워, 직접 취재현장에 가는 것은 피했으면 했다. 그러다 며칠후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고는 부랴부랴 부다페스트행 항공편에 올랐다. 
봉인하고 싶은 기억이 될 출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헝가리인들이 보내는 따뜻한 시선, 현장에서 함께 일한 훌륭한 후배님들 덕분에 '부다에서의 5박6일'은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는 기억의 저장고에 쌓아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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