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역마살이 껴도 단단히 꼈나 보다. 해외에 나온 것 자체가 이미 넓은 세상을 체험하며 돌아다니는 역마의 기운이 아닐까 싶은데, 다채로운 하우스메이트들과 새집에서 친해진 지 5개월도 안 되어 9월 말에 회사 동기가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사무실이 확장 이전하며 위치가 달라져서, 급한 대로 1달간 동기네 집으로 이사하여 지내기로 했다. 사실 급하게 이사 오지 않아도 되었지만, 주간 이동이 발표되면 친구들 보러 갈 것이고 한국도 몇 달간 다녀올 것이기 때문에 일단 단출하게 동기 집으로 이사하여 짐을 맡기고 남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이 집에서도 인원이 나까지 4명이다. 나와 동기, 그리고 그 동기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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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집에서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인도네시아인 하메들과 살았다면, 이번 집에서는 말레이+태국 혼혈 말레이시아인들, 태국인 동기와 살게 되었다. 그래서 뜬금없이 태국어를 배우게 되었다. 일상회화에 쓰는 간단한 말들을 배웠다. 말레이시아는 태국과 국경이 접해 있어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도 버스나 차로 왕래할 수 있으며, 접경 지역인 Kedah 주에서 태국 문화와 말레이 문화, 언어가 섞인 삶을 볼 수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살면 이렇게 다양한 문화를 접하기가 참 좋다. 공용어인 영어는 늘 사용하게 되고, 말레이어와 중국어도 많이 듣게 되고, 인도계 말레이시아인 분들도 많기에 힌디어나 타밀어도 들을 수 있다. 심지어 태국어까지 들을 수 있다니. 마음만 먹으면 멀티랭귀지를 구사하기에 좋은 환경이다. 다만 한국 친구와 연락하고 만날 때 외에는 한국어를 잘 안 쓰게 돼서 가끔 가족들에게 전화했을 때 외국어가 튀어나오거나, 언어의 병목현상이 발생한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한 문장 안에서 영어랑 말레이시아를 섞어서 말하기도 하다 보니, 로컬 친구들하고 이야기할 때도 여러 언어가 섞이기도 한다.
주로 같은 종교를 가진 경우나 같은 민족끼리 결혼하기는 하지만, 아버지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인 데 어머니는 필리핀계 분이시거나, 아버지는 말레이 무슬림인데 어머니는 태국인인 경우 등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섞인 가족들도 의외로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말레이시아에 살면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어떤 강박에서 많이 자유로워졌다. 한국에 있을 때는 뭔가 사회에서 통용되는 기준들을 아무래도 좀 신경을 썼는데, 말레이시아 살면서는 그런 부분에서 생각이 유연해지고 보다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곳이기에 해외가 천국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좋은 점도, 안 맞는 점도 있을 수 있다. 그래도 말레이시아에 살면서 다양한 문화와 특성을 접하고, 한국에서라면 엄두도 못 냈을 잦은 이동과 문화충격을 경험하며, 내면이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생각이 다 옳은 것이 아니고, 얼마든지 다양한 가능성과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체험하는 삶. 마음이 비옥하고 여유로워지는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