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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옷 Jul 11. 2019

현실은 여전히 엉망진창

공간부랑자의 허무가 여행의 감흥을 짓누를 때








내가 처음 에어비앤비를 이용한 건 베로나에서였다. 1박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화재 때문에 기차가 연착하기도 했고, 도시가 예쁘길래 하루 자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전까지 에어비앤비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10년 전 이야기) 우연히 피렌체에서 만난 누군가가 어디 숙소냐고 묵었을 때 에어비앤비로 잡았다고 했던 게 기억났다. 그래서 바로 에어비앤비에 접속했고, 평이 좋은 방 하나를 27유로에 예약했다.


노란색 페인트칠이 되어 있는 벽이 인상적이었던 방이었다. 원목 바닥 위로 카펫이 깔려 있었고, 책상과 침대 머리맡에 각각 무드등이 놓여 있었다. 방에는 침대와 책상, 작은 옷장과 전신 거울 같은 최소한의 가구들이 놓여 있었고, 노란 벽에는 대비되는 초록색 그림이 걸려 있었다.


나는 그 방에 누워 책을 뒤적거리기도 하고, 책상에 앉아 미뤄왔던 일기를 쓰고, 노트북에 사진을 옮겨 담고를 하며 저녁을 보냈다. 마치 집에서 하듯이.


하지만 분명히 집과는 달랐다. 집에도 내 방이 있지만, 내 방과 이곳의 방은 너무나 달랐다. 불필요한 짐 없이 단출하지만 그래서 심플하고 예쁜 방이었다. 인터넷에서 보아온 인테리어 사진에서 봤을 법한 그런 방. 창밖으로는 베로나 풍경이 보이는 그런 방. 내가 꿈꾸던 방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하룻밤이지만, 이게 '내 방'이라는 것이.


그때 나는 아예 에어비앤비 시스템을 처음 접해서 모든 게 다 너무 생소하고, 신기했다. 에어비앤비 주인은 4-50대쯤 되어 보이는 여자였는데, 한 층에 두 개의 집이 있었다. 하나는 자신의 집이고, 그 앞집은 에어비앤비용으로 쓰는 것 같았다. 에어비앤비용 집에는 방과 화장실이 각각 두 개 있었다. 나는 작은 방을 썼고 다른 손님은 없는 줄 알았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한 부부가 식탁에 먼저 앉아 있었다. 어제 늦게 도착했다는 그들은 먼저 아침을 먹고 있었는데, 몇 종류의 빵과 씨리얼, 오믈렛과 간단한 과일이 있던 빵에서 우리는 같이 식사를 했다.


이미 아침 식사 전에 씻고 준비를 다 마쳤던 부부는 갈 길이 멀다며 급하게 식사를 마치고 떠났고, 나는 저녁 기차를 예약했고 베로나는 작은 도시였으므로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느긋하게 차를 한 잔 더 마시며, 그때 나는 에어비앤비에 완벽하게 영업당했다. 호스텔이나 민박, 호텔과는 다른 분명한 매력. 그건 바로 에어비앤비가 공유하는 것이 '집'이고, '방'이라는 거였다.


큰 창 너머로 보이는 베로나의 풍경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매일 아침 보는 그 풍경이었고, 단 하룻밤이었지만 마치 나도 그들이 된 것 같았다. 바로 이거야말로 여행자들이 꿈꾸는, 경험하고 싶은 하루가 아닐까? 그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약간의 돈이면(단돈 27유로), 마음껏 외로울 수 있고(그때 나는 한 달이 넘게 혼자 여행 중이어서 외롭다는 생각이 좀 들었는데, 전세 낸 듯 혼자서 거실이며 방을 누리고 있으니 그 외로움조차 '진짜 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감정 같아서 좀 취해 있었다) 마음껏 여행의 로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




임시에서 임시로
임의적인 곳에서 임의적인 곳으로




그 뒤로 에어비앤비를 몇 번 더 이용했다. 단 며칠이긴 해도 예쁜 곳에서 자고 싶어 신중하게도 골랐다. 써보니 에어비앤비에도 단점은 있었다. 요즘은 에어비앤비 역시 리조트나 객실 예약 같은 느낌의 비즈니스 모델 중 하나가 되어 정말로 '민박' 같은 개념은 아니게 되기도 했고, 애초부터 호텔 서비스를 바랄 수 없어 불편한 점들도 있다. 오래 머물수록 내 집 같은 느낌...인 만큼 정말 내 집처럼 청소도 내가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머물면 가장 좋은 점이 매일매일 새 수건을 갈아준다는 것인데, 에어비앤비에서 숙박할 경우에는 수건 개수가 모자라기도 하고, 수건을 매번 갈아주지 않아 내가 세탁해서 써야 한다. 에어비앤비의 장점이 고스란히 단점으로 느껴질 때쯤, 나는 에어비앤비에서 호텔로 다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여행은 웬만하면 호텔'이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에어비앤비에서 느꼈던 매력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에어비앤비가 내게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꿈꿔왔던 '공간'에 잠시나마 내가 머무를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감성이냐면, 정말 예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나도 모르게 "여기가 우리 집이었으면 좋겠다"라거나 "여기가 내 작업실이면 좋겠다"라고 중얼중얼 흘러나온 속마음을 돈으로 현실화시킨 느낌 말이다. 은유가 아닌 물리적인 '자기만의 방'이 없는 세대가 선택한 대안이 카페인 것처럼, 나는 여행을 떠나곤 했다. 마치 ‘여행자’이기 때문에 ‘자기만의 방’이 없는 공간부랑자인 것처럼 말이다. 그건 가끔 스스로에게도 먹히는 하얀거짓말이었고, 때론 그 가난한 외로움을 무기 삼아 취해 있기도 했다.


현실은 초라하다. 취향 가득한 인테리어는 없다. 인테리어만 없나. 인테리어가 없는 이유는 인테리어를 할 방도, 집도 없어서다. 아마 평생 벌어도 감당되지 않을 집값, 맥시멀리스트에 가까운 내 짐들 역시 그렇게 두질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예쁜 집, 내 방에 대한 로망이 없는 건 아니다. 예쁜 인테리어 사진들에 나도 환장한다. 로망도 있다. 구체적으로 이렇게 꾸미고 살고 싶다는 느낌도 있고. 하지만 딱 거기에서 그친다. 현실화할 수가 없으니까.


에어비앤비는 잠시지만 로망을 현실화시킨다. 그러나 며칠이든 몇 달이든 그건 임시적이고 일시적이다.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그렇다. 여행은 언제나 임시적이고 일시적인 것 아닌가. 현실은 잊고, 좋은 공간과 경험(추억) 등을 시간과 돈으로 구매하는 것에 가깝다. 초라한 나의 방은 저 멀리에 둔 채, 캐리어와 배낭 하나만큼의 짐을 들고 나는 몸만 오면 된다. 내 로망의 공간에.


얼마 전 친구와 휴가 이야기를 나눴다. 같이 여행을 간 적도 있었던 친구도 나만큼이나 여행을 좋아했는데 작년도 그렇고 올해도 휴가는 패스한다고 했다. 요즘은 여행보다 집에 있는 게 좋다는 게 친구의 말이었다.

여행이 피곤한 이유야 뻔했다. 더운데 돌아다니기도 싫고, 괜히 성수기에 돈 계산하기도 싫고, 이것저것 예약하고 계획을 잡는 것도 피곤하다고.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내겐 인상에 강하게 남았다. 대출을 끼고 산 집이라고 앓는 소리를 했지만, 친구는 그래도 ‘내 집’이 생긴 후로 이제는 여행보다 집에 있는 게 좋다고 했다. 아직 부족하긴 하지만, 집이 마음에 드니까 굳이 다른 곳에 갈 생각이 안 든다고. 여기야말로 나의 공간, 이라는 그 안락함이 주는 게 있다고.

여행의 감흥과 집의 관계에 대해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없다. 친구 역시도 이러다 또 여행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를 거라고 했지만, 적어도 나는 그 말에서 이제껏 에어비앤비를 포함한 호텔이며 카페 등등에 머무를 때 내가 느꼈던 위화감이 뭔지 깨달았다.


어쩌면 나는 여행을 좋아했던 게 아니라 공간부랑자처럼 다녔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여행자'라는 허울 좋은 이름을 덮어쓰고 그나마 좋은 공간들로 건너뛰어 다니는. 그런다고 현실이 완전히 가려지는 것도 아닌데 나는 잠시 그게 나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즐거움이 맞다. 몇 번의 여행을 다녀왔을 땐 숨통이 트인 것 같았고, 분명 현실과 다른 그 부분에 대한 즐거움이 컸는데, 어느 순간부터 여행의 감흥보다 다시 돌아와 버렸다는 허탈함이 더 커졌다. '자기만의 방'이 없던 내가 잠시 공간을 누릴 수 있는 사치가 허용되는 게 바로 여행이었다. 여행은 겪는 것이라고 하지만, 여행 당시만 행복했다는 생각과 현실로 돌아오면 썰물처럼 밀려드는 그 이상한 허무함이 여행의 감흥보다 더 크다고 느껴질 땐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 작은 방에 누워 나는 왜 여행을 갔던 걸까 곱씹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잠시 미뤄뒀던 엉망진창 현실이 나를 잡아먹기 전에 또다시 여행을 떠날 수밖에. 이건 여행이 아니라 도망인가 싶지만 말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돌아오면 다시 턱 숨이 막히는 기분이라 차라리 아무데도 가지 말고 그냥 있는 게 더 나을까 그런 생각을 도에서 도를 오가는 심정으로 왔다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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