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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Sep 29. 2020

두뇌게임 : 누구냐, 넌?

“김 선생~! 그 반에 오늘 전입생 있어요~”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교무부 학적계 선생님이 알려준다.

“순수 전입이에요? 아니면 사연이 있는 아이인가요?”

“실사(實査) 나갔었어요. 실제 엄마랑 아이랑 전입해서 살아요.”     


희성이는 혼자 나타났다.

어머니가 바쁘시단다.     


여러 필요한 서류들과 교과서 등을 점검하고 종례 후 잠깐 남으라 했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한 차례 면담을 다 한 뒤라, 어차피 이 친구 차례이기도 했다.     


“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는 작년에 큰일이 있었어요. 두 차례 수면제를 먹었었어요.”     


갑자기 나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자신은 학교 다닐 때 회장이었는데, 자신을 시기한 무리들로부터 중학교 때부터 왕따와 학교폭력을 당해 시달림을 받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 119가 오는 것을 얼핏 보긴 했는데 정신 들어보니 3일 동안 중환자실에서 깨어나지 못했대요. 담임 선생님이 그냥 학교 나오지 말고 집에서 쉬라고 하셔서 결국 그 이후 2학기가 끝날 때까지 안 나갔어요. 그리고나서 이리로 전학 온 거예요.”     


나는 얼른 그녀의 생활기록부를 들췄다.

그러나 거기엔 1년 개근.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 학교에서 덮어 준 걸까. 3달이나 학교에 안 나간 아이를 출석 처리하다니.

나는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 진짜 힘들었겠구나. 내가 묻지도 않는 이야기이고 너도 떠올리기 괴로운 이야기들 일텐데 나한테 하는 이유는?”     


“ 아... 그건 선생님이 아무래도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요.”     


그녀는 당차게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봇물 터뜨리듯 쏟아냈다. 나는 계속 귀를 의심하며 들었다.     

사물함을 열었는데 자기 사진이 들어 있는 액자가 유리가 깨진 채로 협박 편지와 함께 들어있던 일, 어느 날 교실에서 없어진 지갑이 자신의 사물함에 발견되어 도둑으로 몰린 이야기, 화장실에 들어가 있는 사이 누군가 머리 위로 화장실 쓰레기통을 거꾸로 쏟아버렸으며, 건물 위에서 물감을 쏟아버려 교복 위에 뒤집어쓴 일, 자기가 한 일도 아닌데 헛소문을 퍼뜨리며 괴롭히는 무리들의 이야기들이 술술 흘러나왔다.     


나는 이런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눈을 정면으로 들여다보았다. 아이들은 눈빛을 속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신할 수 없었다.     


“선생님, 자기가 당한 괴로운 이야기들을 이렇게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할 수 있나요? 꼭 소설책에서나 볼 수 있는 믿기 어려운 방식으로 괴롭힘당했던데. 설마 이게 사실인지 정말 분간이 안돼요.”


“ 중학교 때부터 상담실이나 기관에서 장기로 상담을 자주 받는 아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 말하다 보니 오픈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기도 해요. 그게 반복되니까요.” 나는 이야기를 마치고 상담 선생님과 함께 지속적인 협조를 다짐하며 상담실을 나왔다.     




본격적인 관찰이 시작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결석을 했다.

“아버지는 세 딸 중에 둘째 언니만 좋아했어요. 결국 부모님 이혼 후 둘째 언니가 아버지를 따라나섰죠. 그런데 그 언니가 재작년에 건물에서 투신해서 죽었어요. 꽃다운 나이 20세였죠. 언니가 죽은 지 딱 1년 되는 날, 제가 수면제를 먹었어요. 아버지가 미웠어요. 아버지는 우리를 돌보지 않고 생활비도 끊어버렸어요. 그런데 어제 지하철역에서 아버지를 우연히 마주친 거예요. 그 인간의 전화번호를 머릿속에서 지웠었는데, 억지로 생각해내서 제가 전화를 걸었어요. 그런데 그 인간은 제가 뒤에서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전화를 확인하더니 받질 않더라고요. 그렇게 아버지는 제게서 진짜로 떠나갔어요. 마치 머릿결을 스치는 바람처럼.”    

 

순간 무엇인가 탁 하고 머릿속을 스쳤다.

바람처럼 사라졌다고 말할 때의 그녀의 눈빛은 아이들이 이야기를 지어낼 때 무심코 쓰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니...저것은...설마 소설을 쓰고 있는 걸까...?     

확인해보니 둘째 언니의 일은 사실이었다. 하루 24시간 머릿속에 희성이가 들어가 있었다. 무슨 사고가 터질지 늘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기분이란 게 이런 걸 말하는구나. 아니...하필 교실에 왜 베란다가 있는 거지? 건물 설립 이래 수십 년간 멀쩡히 존재하던 베란다까지 원망스러웠다. 갑자기 모든 게 걱정으로 다가왔다. 베란다 절대 출입금지.     


어느 날 회장이 황급히 나를 찾아왔다.

교실에서 지갑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그 순간에 잠시 조상님의 묘를 잘못 쓴 게 아닐까. 생각했다. 아니 올해 나한테 왜 이러는 겁니까.    

 

학교에서 일어나는 도난사건은 제일 골치 아픈 사건이다. 일단 아이들끼리 서로 믿지 못하고 감시해야 하는 불신을 만든다. 가방을 뒤지고, 누가 그날 수상한 낌새를 보였는지 써내게 하거나 신고를 받거나 등등 지갑이 나올 때까지 며칠을 한 푸닥거리해야 한다. 가장 어려운 점은 그동안 쌓아왔던 학급 분위기가 한 번에 엉망이 되는 것이다.     


“누구 지갑인데?”

“희성이요.”     


희성이는 지갑 속에 돈이 얼마 없었으니 괜찮다고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우리 반 소라가 범인 같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그녀의 눈을 힘주어 쳐다보았다. 네 생각엔 소라가 분명하다는 거야? 네, 선생님. 소라가 무언가 감추고 나가는 것을 봤어요. 그녀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 소라의 행적은 이미 문제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아이들은 괴로움을 토로했다. 

“선생님, 우리 너무 재밌게 잘 지내고 있는데, 혹시라도 쟤가 아닐까? 하고 서로를 의심해야하니 너무 마음이 힘들어요.” 우리 반의 제일 왈가닥인 정미마저도 나를 찾아와서 울고 갔다.     




“엄마, 엄마가 말하는 애... 걔가 좀 이상한 게 맞는 거 같아요. 단순한 거짓말쟁이라고 하기엔 그 이상의 뭐가 있는 것 같아요. ” 

늘 골머리를 썩고 힘들어하는 나를 보다 못해 대학생 딸이 거들기 시작했다. 대학도서관에서 관련한 논문까지 다 뒤져봤는데 아무래도 이거 같다는 것이다.     


“해리(解離).”     


해리성 정체성 장애(解離性正體性障碍, 의학: 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란 흔히 이중인격 또는 다중인격이라고 불리는 정신질환으로써 어떤 정신적 충격이 계기가 되어 불안정한 개인의 기억 등의 일부가 해리돼 마치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증세다. (위키백과)     


그 지갑은 결국 회장의 사물함에서 발견되었다. 회장은 울고불고 학급은 술렁대고 복도에는 학교에서 급히 CCTV를 설치해주었다. 결국 지갑 도난사건은 자신의 잘못을 치우친 어떤 아이가 그냥 회장의 사물함으로 돌려준 것일 것이다 라는 아이들의 추측으로 유야무야 정리되었다.    

 

그날 이후, 학급에서는 소소한 이상한 일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불현듯 희성이가 전학 온 날 나에게 해준 이야기가 하나둘씩 실현되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우리 딸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희성이는 눈동자의 흔들림 없이도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 순간에는 정말 다른 존재로 느껴지기도 했다.  

    

걱정이 되어 쉬는 시간에 교실에 가보니 철없는 몇몇 녀석들이 교실 뒷구석에서 춤추고 깔깔대고 있었다. 엊그제 교실에서 말뚝 박기 하다가 걸려서 혼난 아이들이기도 했다. 적응을 돕고 기꺼이 자신들의 무리에 희성이를 넣어준 우정의 사도들에게 희성이는 도난 자작극을 벌여 괴롭히고 그것을 즐기는 것인가? 그러나 만약 해리성 정체성 장애라면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 않는가? 난 정신분석학자도 아닌데 어쩌란 말인가. 괜히 자극해서 사고라도 나면?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당하기만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정작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답답한 상태가 학년 말까지 계속되었다.          


결국 희성이는 고3이 되자, 우리 반 아이들의 무리에서 스스로 빠져나갔다. 그녀의 여러 분란 작전은 거의 실패로 돌아가고 불안불안 여러 선생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사히 졸업을 했다.     




졸업 후, 그 왈가닥 제자들 7명이 찾아왔다. 이제는 그 사건 사고가 많았던 해를 일종의 추억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나의 은퇴식에는 자기네들을 꼭 불러야 한다며 여전히 의리를 자랑하는 이 친구들은 술도 말술을 마신다. 학교 앞에 놀러와 술 사달라고 외치면 나는 싫지 않은 투정을 하며 기꺼이 그날의 물주가 되어준다. 그냥 그렇게라도 내 마음의 빚을 갚고 싶었다. 선생님을 위한 폭탄주를 특별히 조제 하겠다며 익살꾼 재희가 콜라와 소주를 섞는다. 한참 깔깔대던 아이들이 술이 들어가자 어김없이 자신들의 파란만장했던 고2때 추억을 회상하며 떠들기 시작했다.     


“선생님, 솔직히 그 해에 많이 힘드셨죠?”
 “뭐...다 말할 수는 없는데, 하여간 그 해는 사실 좀 힘들었어.”
 “에이...저희도 눈치라는 게 있죠!! 자세히는 몰라도 선생님이 점점 얼굴이 초췌해지셔서 저희가 속상했었어요. 애들끼리 모여서 우리 담임 선생님을 구하자! 하고 애들이 다 말했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우리 반 분위기가 망할까봐 공부도 열심히 하고, 청소도 열심히 하고, 더 수다 떨고 뒤에서 막 춤추고 그런 거였어요…….하하하하하!!!”     


아니, 너희들. 그걸 왜 이제야 말해.     


나는 그날 오랜만에 부어라 마셔라 같이 술을 마셨다.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가슴속으로 계속 미안하다. 미안하다...하고 수십 번 반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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