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편집자들이 한데 모여 있는 카톡방이 있다. ‘출판사 평판 조회’라는 채팅방인데, 이곳에 오늘 이런 글이 올라왔다. “10년 차 이상 편집자들은 요즘 이직 잘되나요?” 아래 답이 달렸다. “10년 차면 마흔에 가까울 텐데 힘들지 않을까요.” 마흔 넘으면 먹고살기 힘든 곳, 이곳이 편집자의 세상이다.
스물다섯 살, 처음 내 손으로 돈을 벌었을 때를 떠올려 본다. 내가 ‘그나마’ 잘하는 것을 열심히 했더니 월급을 주더라. 글을 쓰고 물 흐르듯이 다듬는 정도는 훌륭하게는 못해도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범위의 일이었다. 그간 아르바이트로 용써서 번 돈보다는 훨씬 많이 주고, 심지어 매달 꼬박꼬박 주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제 편집자로서 10년이 넘는 연차가 쌓인 나는 ‘그나마’ 잘하는 정도로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걸 안다. 적어도 내 연봉의 열 배쯤 되는 매출을 벌어들여야 한다.
문제는 편집자의 연차가 쌓이는 만큼 편집자에게 요구되는 능력(기획력과 편집력)이 쑥쑥 늘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기획력은 절대 경력과 비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평소 얼마나 다양한 세계에 감각을 열어 놓고 있는지, 그 감각을 통해 얻어낸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체화할 능력이 있는지, 저자를 향해 확신을 갖고 돌진해 낼 용기가 있는지, 지금껏 편집자로서 어떤 경험들을 해 왔고 어떤 어려움들을 극복해 냈는지…. 편집자의 능력이라는 간단한 말에는 이 모든 요소가 담겨 있다. 이 중 일부는 태생적으로 타고나는 것이고, 일부는 경험치로 쌓일 수 있는 것이다. 일부는 슬프게도 편집자의 나이와 관련이 있다. 나를 둘러싼 세계가 달라지면 당연히 내 감각도 달라지지 않겠는가. 이렇게 써 놓고 보니, 편집자로 오래 살기 힘들다는 말이 피부로 와 닿는다.
요즘 자꾸 회사원으로 십 년 넘게 살면서 낮을 빼앗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이면 고흐의 〈죄수들의 원형 보행〉 속 죄수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편집자의 세상에선 죄수 자격을 얻기도 쉽지 않다. 죄수가 되려면 죄수의 자격을 증명하라. 오늘도 나는 죄수의 자격을 증명하기 위해 내 감각을 한껏 열어 두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