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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un 10. 2024

DMZ생태평화공원과 한탄강 주상절리

철원으로 가세요!

지난 주말, 철원에 다녀왔다. 가족여행으로 철원을 간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이랬다. 

-철원에 간다고? 거기 뭐가 있는데? 그 멀리까지 뭐하러 가?

남편에게 철원은 관광지라기보다 군부대가 있던 곳, 흙먼지가 가득한 도로를 몇 시간씩 달려야 도착했던 곳, 메마르고 삭막한 도시라는 인상이었다고 했다. 두 아들은 철원이라는 도시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역사와 의미를 가진 곳인지 아무런 사전지식도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충동적으로 결정한 여행답게 유명관광지는 숙박을 할 수 없었고, 안 가본 곳을 가보고 싶어서 철원을 골랐을 뿐이다. 낯선 도시 철원에 사춘기 두 아들과 함께 2박3일간 다녀왔다.

철원에 가보겠다고 결정한 건 DMZ생태평화공원과 주상절리를 보고 싶어서였다. 아이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역사인문환경을 접하고, 무엇보다 디지털기기에서 멀어져 자연속에서 많이 걷고 느끼길 원했기 때문이다. 분단국가, 한국전쟁과 휴전을 실감하며 근현대사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건 솔직히 엄마의 욕심이다. 지뢰밭과 철책을 보며 흥미라도 느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으로 DMZ 탐방을 신청했고, 호국보훈의 달 6월, 현충일 다음 재량휴업일을 맞아 아침일찍 서둘러 철원으로 떠났다.


생태평화공원 방문자 센터에 도착해서 관련 교육을 간단히 듣고, 군사시설이므로 네비게이션을 차단한 후 차량으로 이동했다. 대기하고 있던 군인 두 분, 해설사 두 분과 함께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순수한 자연과 인간이 만든 전쟁의 흔적이 대조되는 길을 걸었다. DMZ의 배경설명과 전쟁의 상흔도 안타까웠지만 해설사분이 들려주시는 개인의 굴곡진 삶의 이야기가 더욱 마음에 닿았다. 전쟁으로 소실된 주민등록을 새로 만드는데, 친척 어른이 해주면서 며느리 이름을 몰라 '김씨'라고 등록해서 죽을때 까지 '김씨'라는 이름으로 사셨다는 증조모님 이야기, 민통선 안에 마을을 조성하고 지뢰로 발목을 잃어가며 농지를 개간하고 뿌리를 내리며 사는 마을 사람들 이야기,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군사시설과 용양보습지를 배경으로 탐방객들 가슴에 흘러들어갔다.

두 시간 동안 걸으며 자라도 보고 유혈목이도 보고, 가마우지와 버드나무 군락도 보았다. 총을 들고 경비를 서고 있는 젊은 군인과, 남북으로 끊어진 철도의 흔적과 적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마련해놓은 온갖 군사시설도 보았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동료들끼리 모여 탐방하는 스무명 남짓의 탐방객들은 무엇을 보고 어떤 것을 느끼며 걸었을까. 용양보습지는 예상보다 많은 울림을 주었다.


DMZ생태평화공원 방문자센터에는 숙박시설도 있어서 같이 예약을 해두었다. 숙소는 샤워실이 외부에 따로 있고, 취사가 안되지만 7만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2만원은 철원지역상품권으로 돌려주어 실제로는 5만원이면 4인가족이 하룻밤을 묶을 수 있다. 이 날 우리 가족만 예약해서 건물 전체를 통채로 넷이서 사용했다. 근처 와수리 하나로 마트에서 장을 보고 식사를 포장해서 오붓하게 저녁시간을 보냈다. 우리 식구들 말고는 아무도 없는 밤, 인공적인 소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새카만 밤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아침이 되었다.


다음 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비오는 날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 식구들은 비 오는 날 여행하는 것도 좋아한다. 운치있고 덥지 않아 걷기에도 좋고 맑은 날과 또 다른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상절리도 그랬다. 내리는 빗속에서 신발이 젖고 우산이 불편해도 마냥 즐겁게 길을 나섰다.


한탄강 주상절리길은 2021년에 조성된 관광지로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한탄강 세계지질공원에 속해있다. 몇년 되지 않아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을 것 같지만 벌써 200만이 넘게 다녀가며 철원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자리잡고 있다. 3.6KM에 달하는 길을 걸면 주상절리협곡과 바위, 자잘한 폭포들까지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 잔도길의 아찔함과 즐거움까지 경험할 수 있다. 6월은 입장료도 50% 할인중이고, 일부는 또 철원지역상품권으로 돌려준다. 고물가시대, 알뜰한 여행이 가능해서 철원에 대한 인상이 좋을 수 밖에 없었다.


특이한 모양의 바위와 절벽, 구비구비 흐르는 강물, 절벽에 매달아놓은 다리까지, 감탄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길이 끝나있었다. 드르니 매표소와 순담 매표소, 어느 쪽에서 출발하더라도 무료로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있어 편리하게 되돌아갈 수 있다.(셔틀버스는 주말에만 운행)

주상절리길을 걸은 김에 고석정에도 들렀다. 외로운 바위라는 고석, 그곳에 지었다는 정자 고석정. 절벽위에서 내려다보기만 했던 한탄강 계곡을 직접 내려가서 보니 또다른 즐거움이었다. 바로 옆에서 레프팅을 즐기는 사람들의 힘찬 함성이 들리고 통통배가 지나다니는 모습도 운치있었다. 강에 와서 배도 한 번 타봐야지. 결국 통통배를 타고 유람하는 즐거움까지 만끽했다. 고석정 옆에 자리한 팔각정자에 들러보니 세종강무정이라는 해설이 붙어있었다.  세종이 군사훈련을 진행하고 연회를 베푼 역사적인 장소란다. 그간 성군의 이미지로만 알고 있던 세종이 군사강국을 이끌고 꾸준히 군사훈련을 지휘했던 군주라는 점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고석정과 주상절리를 둘러보고 한탄강을 따라 철원을 떠났다. 철원이 이렇게 이야기가 가득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하고 있는 곳인 줄 이제 알았다. 만나는 사람들 모두 친절하고 철원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호의를 보내주어 감사했다. 강원도로 떠난다면 철원도 들러보라고 소개하고 싶을 만큼. 이틀 내내 많이 걷고 경사가 급한 계단을 많이 오르내려서 다리가 후들거리긴했지만, 네 식구가 함께하며 보고 들었던 것들을 위해서라면 근육통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떠나지 않았으면 알지 못했을 것들이 너무나 많은 여행이었다.



ps- 그런 의미에서 책도 한 권 소개~

어도연 올해의 추천도서 목록 중에서 -

ps 2 - 도로도 완전 잘 뚫려있어요! 편하게 다녀오실 수 있어요~~

ps 3 -해설 내용이나 계단등을 봤을 때 두 군데 다 초등 고학년 이상은 되어야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ps 4- 음식도 완전 맛나게 잘 먹었어요! 먹는 얘기까지 하기 힘들어서 뺐을 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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