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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un 26. 2024

어린이와의 일주일

동화로 시작해 막장드라마로 끝나다

우리반 월요일 시간표는 국국과과수수. 아이들이 시간표를 보며 한숨을 내쉰다.

"얘들아, 피할 수 없으면 즐겨!"했더니,

"즐길 수 없으면 피해도 돼요?" 한다.

어? 그러네? 나랑 같이 피하자.



옆 반의 반 별명은 청바지다. 담임이 질색팔색했지만 아이들의 투표로 결정되었다. 청바지가 뭔고 하니, '청춘은 바로 지금!'이란다. 건배사라고 옆 반 담임샘과 같이 웃었는데, 남 일이 아니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주축이 되어 친한 친구들끼리 모임을 만들어서 이름을 붙였는데 '동남아'라는거다.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동네에 남아있는 아저씨들' 이라고............아니 얘들아, 인생 2회차세요?



어느 날 적은 시조 한 수


내가왜 그랬을꼬 내가왜 그랬을꼬

이 모든 프로젝트 그 어떤 협동학습

너거들 위한다고 고민하고 준비했네


6학년 경제단원 사회과 체험활동

생산자 생산활동 소비자 소비활동

사장님 경험하며 이거저거 해보세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동학년 선생님들 다같이 으쌰으쌰

금요일 준비해서 간식까지 품의했네


그러니 이놈들아 열심히 하려무나

준비한 선생님들 정성이 안보이냐

골아프다 괜히했나 후회막급 귀찮구나


내다시 하나봐라 내다시 하나봐라

그래도 다시한번 자료실 기웃대며

더 좋은 수업위해 오늘도 힘을낸다


이러니 옛날부터 선생똥 다썩어서

똥개도 안먹는다 이런말 들려오지

내속도 썩었을까 방구냄새 독하고나



==============


브런치에 이렇게 아이들과의 소소한 일상을 한 가지씩 적어두고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생길까 기대하곤했다. 이슬방울을 모으듯 조금씩 모아서 꽉 차면 발행을 눌러야지 했는데, 오늘 험난하고 아픈 현실을 마주했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간에 물리적인 마찰이 일어났다. 오후 수업을 마치고 그 중 피해를 입힌 아이 부모에게 해당 반 담임이 전화를 걸었다. 담임은 학부모에게 이러이러한 일이 발생했고, 물리적인 상해가 있어서 배상할 수도 있고, 재발방지를 위해 가정에서도 지도 바란다는 상식적인 내용을 전달했다.

"선생님, 지금 얘기 끝나신건가요?"

교사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우리 애 담임이 맞느냐, 왜 이리 편파적으로 얘기하냐, 문제상황부터 얘기하면 내가 받을 충격은 생각 안하냐, 우리 애 마음은 생각해 봤냐, 이렇게 아이를 선입견을 갖고 대하는 교사의 태도는 문제 아니냐, 라며 학부모가 전화기 너머로 고성을 지르고 화를 냈다. 교사에 대한 존중은 커녕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도 없이 무조건 소리지르고 매도하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발령받은지 3년이 안되는 젊은 담임교사는 무례한 태도에 더이상 대화가 되지 않을 같다며 간신히 전화를 끊고, 우리 교실에 와서 펑펑 눈물을 쏟았다. 자신을 편파적인 교사취급하며 교육과정을 가르치려드는 태도로 소리지르는 학부모의 말을 듣고나서 이상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떨리는 손으로 연신 눈물을 닦아대는 선생님을 다독여서 함께 교감선생님을 찾아갔다.  


교권침해사안에 대해 마음 아프고 분노하지만 이런 상황에 교사가 취할 수 있는 스탠스는 매우 좁다. 당장 내일 교실에서 그 아이를 대면하고 수업하는 것이 힘들다하고 안정을 취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내일과 모레 병가를 내기로했다. 마음 잘 추스르고 극복해서 더 단단해지기를 응원하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선배교사라서 절로 미안했다. 아마도 내일 출근하면 나도 그 반에 보결을 들어가게 되겠지. 담임선생님이 왜 출근을 못하시는지, 아이들은 이해할까?


그래, 내가 있는 곳은 차갑고 무시무시한 전쟁터지, 동화 속 요정 나라가 아니야. 내 마음에도 두꺼운 얼음이 깔린다. '어린이와의 일주일'이라는 제목을 달아두었던 내 글은 이렇게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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