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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상은에게

by 피어라

너는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그저 걷는 사람. 너를 처음 본 날, 너는 탬버린을 흔들면서 세상 환한 미소로 무대 위를 겅중겅중 뛰어다녔지. 푸른 쉐도우나 붉은 입술은 없었어. 높은 굽의 구두도, 짧고 요란한 스커트도 아니었어. 뜻모를 후렴구를 그저 신 나게 불렀지. 생일을 축하하고, 사랑을 할거라고도 노래했어.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모두가 희망과 자신감에 차 있던 그 때.


무대위에서 너는 마냥 웃고 노래하는 철없는 아이 같았는데. 어느 날 팬들의 환호와 조명을 뒤로하고 돌연 사라졌지. 최고의 자리를 뒤로하고 유학을 떠났다했어.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이 너를 잊어갈 때 쯤, 너는 싱어송라이터가 되어 신곡을 발표했어. 일본에서도 활동하고 자신의 노래를 만들고 불렀어. 예전처럼 뜨거운 사랑이나나 폭발적인 인기와 상관없이 너의 길을 갔어. 그 긴다리로 음악이라는 세계를 향해 혼자 뚜벅뚜벅 걸어갔지.


그리고 돌아와 [공무도하가]로 너의 음악을 증명했다. 이 음반을 나는 지금도 너무 사랑해. 아직도 앨범에 수록된 [새]를 부르며 울기도 하는걸. 이 노래 이후로도 나는 가끔 너를 보았어. [비밀의 화원]을 들으며 청량한 삶의 희망도 느껴보고, [삶은 여행]을 부르며 성찰의 시간도 가져보았지.


그 후로 오랫동안 잊고 지냈는데, 올 가을 우연히 너를 만났어. 도서관 서가에 꽂힌 그림책이었지. 아, 쉰이 넘어도 너는 여전히 여전히, 너의 세상을 걷고 있더라. 콘서트도 하고 그림과 글을 쓰기도 하며 영상작업도 하고 있었어.


너의 노래처럼, 너의 여행을 즐기고 있었던거야.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무서워하지 않고 사랑하며 살고 있는 사람. 그게 너였어.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너는 날아오르는 사람이었어. 길의 끝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솟구쳐 오르는 사람. 그렇게 걷고 걷다가 마침내 너는 하늘 위를 날아오르는 새, 높은 이상의 세계를 향해 자유롭게 날아가기를 바라는 새, 너는 그 새가 되었어. 무서워하지 않고 높이, 멀리, 여전히 날고 있는.


그러니 너는 이제, 무서워하지 않고 나는 사람. 저 넓은 하늘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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