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설명회에 다녀온 상사가 한국인 지원자들의 이력서를 몇 개 추려내어 내밀며 내게 물었다. 지원자들의 학벌에 대해, 한국에서 유명한 대학(頭良い大学)인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잠깐만, 그럼 나도 지원했을 때 학교를 봤다는 거잖아?’라는 생각이 스치며 지원자들의 학교를 살피기 시작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또한 학력 사회라는 이야기, 모든 기업은 아니지만 일부 기업에서는 여전히 학벌을 본다는 이야기들을 말로만 들었는데, 직접 겪게 되니 여간 현실로 다가오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는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다가, 내가 누군가를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 제법 낯설었다. 하지만 가장 낯설었던 것은 직접적으로 마주한 일본 사회와 기업의 현실이었다. 마치 손흥민이 축구를 잘하는 걸 알고는 있더라도 직접 경기장에서 보면 더욱 놀라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기업이 학력을 보고 인재를 선발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지 않는다. 기업이 그들의 기호에 맞게 원하는 인재를 선발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며, 따라서 다양한 기준 중에서 학력을 중시하는 채용 문화 또한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이 갖고 있는 부작용이 없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지원자로서 마주하게 되는 현실적인 문제를 인식하고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을 테다.
도쿄대학, 게이오대학, 와세다대학 졸업생만 가입할 수 있는 클럽
<일본 기업, 얼마나 학벌을 중시할까>
간혹 일본 취업에서 학벌은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는 ‘오해’를 하곤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주로 대기업, 유명기업 등에서는 (특히 신입 채용 시) 여전히 학력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경영 지원이나 인사와 같은 ‘핵심 부서’는 물론, ‘경영간부 후보 인재’까지 학벌을 보고 일정 인원을 선발하곤 한다. 특히 입사 시험이 우수한 사람(결과적으로 대개 고학력인 경우가 많은 까닭에)을 경영간부 후보로 선발하여 지켜보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며, 상위 학교일수록 ‘승진 고속 열차’를 타기 쉽다는 이야기 또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참고 자료)
한국과 비교하면 체감하는 ‘정도의 차이’는 물론 있겠지만 일본 또한 학력 사회인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높은 브랜드 가치를 지닌 좋은 조건의 기업이나 직무라면 학력을 중요시할 가능성이 다분하리라 생각한다. 이를 흔히 ‘학력 필터’라고 일컫는다. 기업 채용 설명회 모집 시에 소위 ‘스펙’이 좋은 지원자들과 그렇지 않은 지원자들의 ‘파이’가 정해져 있다. 말하자면 스펙이 조금 좋지 못한 지원자는 설명회 참가조차 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기업 설명회 모집 사이트 자체를 ‘편차치 상위 학교’에 우선적으로 오픈하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이렇듯 일본 사회에서 학력 필터는 어렵지 않게 실감할 수 있다.
<참고 자료 >
1. ‘신입 채용 시, 학력이 필요하다’고 말한 응답자 비율이 약 65%로 나타난 설문 조사 결과
2. ‘일본이 아직 학력 사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응답자 비율이 약 61%로 나타난 설문 조사 결과
<학력만이 모든 것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물론 학력이 좋지 못하다고 해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은 아니다. 확실히 일본에서 학력은 중요한 지표가 되는 반면, 학력을 중요시하지 않는 기업이나 직무도 얼마든지 있는 까닭이다. 학력이 채용과는 무관하다고 말한 비율이 훨씬 높은 설문 조사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도 있고 말이다. (참고 자료) 적어도 서류 전형을 지나 면접으로 가게 되면 학력은 그 힘을 크게 잃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학력에는 ‘유통 기한’이 있다. 학력이 온전히 힘을 발휘하는 것은, 20대 내지는 입사 후 수년 정도까지라고 흔히 이야기한다. 입사하고 5년이 넘어간 뒤로는 능력과 성과로 판단하는 셈이다. 중도 채용(경력직)의 경우 또한 학력보다는 직무 경력이 중요시되는 일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실제 비즈니스 현장에서 축적된 기술’이 가장 현실적이고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물론 학력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좋고, 이전에 다녔던 회사 이름도 유명한 곳이면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중시하는 것은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이다. 따라서 학력 면에서 조금 부족하다 생각되더라도 회사가 요구하는 직무 경험과 기술을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 지원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물론 직무 경험, 실적, 태도, 동기, 기술 등 다양한 매력을 어필해야 함은 필수라 할 수 있다)
<결정적인 한 수는 따로 있다>
스마트폰을 하나 사러 간다고 하자. 브랜드를 중시하여 유명 브랜드의 스마트폰을 골랐다. 물론 유명 브랜드가 제 값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막상 구매해서 써보니 스펙은 최고 수준인데 배터리 효율이나 메모리 효율이 현저히 떨어진다면, 그 스마트폰에 대한 평가가 어떨지는 너무나도 자명하다. 고급 스마트폰일수록 그것이 갖는 정체성은 브랜드 자체가 아니라 최신 기술(혁신)과 더불어 작업 처리의 효율성이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일 테다.
그러니까, 결정적인 한 방은 따로 있다는 거다. 학벌, 물론 좋은 무기 중 하나이다. 그렇다고 학벌이 무슨 ‘인피니티 건틀렛’ 쯤 되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학벌이란 무기가 없다면 다른 무기를 준비하면 될 일이다. 훌륭한 학벌이 없더라도 일본 취업에 있어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으며 학벌 이외의 무기로도 충분히 다양한 기회를 얻을 수 있기도 하다. 자신만이 갖고 있는 결정적인 무기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무기를 더욱 날카롭게 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길 권한다. 결국 결정적인 ‘한 수’는 학력이 아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학력을 걱정하기보다는 지금까지의 경력과 축적해온 기술을 잘 정리하고 어필하여, 매력적인 인재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사족 - 5월 25일 토요일, 회사 채용 면접에 들어간다. 중도 채용 면접이다. 화려한 학벌 대신 자신만의 매력이 확실한 지원자가 많이 와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