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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종은 Jan 03. 2022

옷 못 입는 남편이 좋다

패션에 관심 없는 그대라서 다행이다

결혼에 대해 상상할 때면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었다. 지금까지는 집에서 편하게 있었는데, 결혼하면 이제 집에서 편하게 있을 수 없는 걸까. 목 늘어난 티와 무릎 나온 츄리닝 대신 어쩐지 꾸민 듯 안 꾸민듯한 홈웨어를 입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 혹시나 빨래할 때 들키면 부끄러우니 속옷도 언제나 세트로 예쁜 것만 입어야 할 것 같았다. 


사실 이 정도로 안 해도 되긴 하겠지만, 그냥 나는 그렇게 하고 싶었다. 남편에게는 언제나 여자이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신혼 초엔 괜히 편하다며 예쁜 레깅스를 입고 있기도 하고, 사실은 외출복이었던 트레이닝복을 실내복 인척 입고 있었다. 


그런데 역시 자연스럽지 않은 모습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남편은 내가 뭘 입고 있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물론 본인이 뭘 입고 있는지도 신경 안 쓰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옷이란 그저 몸을 가리는 용도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 보였다. 


남편의 패션 센스는 이미 알고 있었다. 처음 만난 날 그의 패션은 아직까지도 내가 놀리는 포인트이니 말이다. 말로만 듣던 체크남방에 빈폴 가방을 메고 있던 그. 당시 내가 좋아하던 미드 '빅뱅이론'의 레너드가 눈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그와 가장 처음 했던 게 아마 쇼핑이었던 거 같기도 하다. 


아마 남편을 소개팅 자리에서 만났더라면 입고 있던 옷을 보고 매력을 못 느꼈을지도 모른다(소개팅에선 또 깔끔하게 하고 나왔을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나는 친구였고, 그의 패션을 웃어넘기며 기꺼이 함께 쇼핑을 도와주는 조력자가 되어줄 수 있었다. 


연애시절엔 당연 옷 잘 입는 남자가 매력적이다. 그냥 딱 봐도 센스 있고 멋있는 옷차림이 매력 있는 건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하지면 결혼을 하고 나니 내 남편이 패션센스가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옷을 사주면 브랜드가 어쩌네 디자인이 어쩌네 이러쿵저러쿵 군말 없이 잘 입는다. 나도 좀 꾸며야 하나 눈치 볼 필요도 없고, 내 옷차림이 어떤가에 대해서도 일말의 지적이 없다. 한없이 편하게 있어도 그냥 나 자체를 보며 사랑해주고, 가끔 꾸미면 그거 나름 예쁘다고 좋아해 준다. 


특히 아이를 낳고 나를 너무 놓아버린 듯한 모습에 자존감이 떨어질 때가 있는데, 패션에 일말의 관심 없는 그는 큰 도움이 되었다. 아무래도 남편이 패션에 신경 쓰는 타입이었다면, 나한테 뭐라고 하지 않더라도 괜스레 신경 쓰였을 것 같다. 머리를 만지는 그를 보며 나도 머리를 하고 싶어 졌을 테고, 멋진 신발과 옷을 입는 그를 보며 나도 나를 꾸미고 싶어 졌을 것 같다. 하지만 아기를 키우면서 자기 관리를 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 그런 스트레스받을 일 없이 그냥 편하게 있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또 쓸데없는 데 돈 쓰지 않아서 좋다. 패션은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많이 필요한 분야다. 그런데 만약 남편이 신발이라도 좋아했어봐라. 간혹 TV에 나오는 신발 애호가들처럼 신발장에 자기 신발을 꽉 채우고 방에까지 신발을 전시하고 싶어 했다면 아마 크게 싸웠을지도 모른다. 시계가 이쁘다며 호시탐탐 시계 살 궁리를 한다거나, 어느 브랜드 슈트가 핏이 좋다느니 어휴. 애인이었을땐 멋져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그 돈이 결국 같은 통장에서 나가는 돈이 되면 복장 터질 것 같다. 


물론 나도 패션에 크게 돈 쓰는 타입은 아니기에 이런 남자가 잘 맞는 걸 수도 있다. 나는 꾸미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편하게 있는 것도 좋아한다. 밖에 나갈 약속이 생기면 좋지만, 그 약속이 취소되면 더 좋아하는 타입이랄까. 일평생 꾸미지 않아도 나를 사랑스러운 여자로 보아주는 이가 있다니 이 얼마나 좋은가. 부부가 되어 가족이 되면 당연히 서로에게 편한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다가 보면 서로 이성적 매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패션에 관심 없는 남자가 남편이 되면 안심하고 편해져라. 그는 당신이 어떠한 옷을 입고 있든 그저 '옷을 입고 있다' 정도만 인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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