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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종은 Mar 27. 2024

2.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Chapter 1. 진로고민

고등학교 때 수험생활을 하면서 나의 의지를 다졌던 건 바로 내 꿈이었어. 그중 하나가 대학교 응원단이 되는 거였지. 그래서 공부가 하기 싫을 때면 그 대학교 응원단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영상이랑 사진들을 보곤 했어. 그리고 나도 꼭 저 대학교에 가서 응원단을 해야지! 라고 마음을 다잡았지. 


운 좋게도 난 정말 그 대학에 합격했고 바로 응원단에 지원했어. 응원단은 그냥 동아리처럼 가입하면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오디션 같은 걸 보더라고. 선배들 앞에서 춤도 추고 훈련도 하면서 응원단에 적합한 사람들을 뽑는 시간이 있었어. 나의 열정 덕분이었을까, 난 선배들 앞에서의 춤은 정말 최악이었지만 이 악물고 뛰어다니며 결국 합격 통보를 받았지.


그렇게 힘들게 꿈에 그리던 응원단에 들어갔는데, 거의 1~2주 만에 그만뒀어. 당시 응원단장이 전화해서 차기 단장으로 점찍고 뽑았는데 이렇게 그만두면 어떡하냐는 말까지 들었지. 


지금 생각해 보면 난 겁이 많았던 것 같아. 합격과 동시에 돌변하는 선배들의 태도는 날 첫 번째로 당황시켰었어. 친절하던 선배들은 어디 가고 갑자기 상명하복의 군대식 분위기로 돌변했거든. 심지어 신입생은 응원단실에서 거울조차 함부로 봐선 안 됐어. 선배는 하늘이고 절대적인 존재였는데, 난 그걸 받아들일 수가 없더라고. 


그리고 술을 너무 마시더라고. 지금은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학창 시절엔 술을 먹이는 문화가 있었어. 응원단은 특히 술을 많이 마시는 분위기였고, 심지어 한 선배는 자기가 술을 마시다 알코올중독이 왔다며 떨리는 손을 보여줬지. 물론 20대 초반의 허세가 담긴 말이었을 것 같은데, 난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어. 


학교 수업, 개인보다 응원단이 우선시 되는 것도 싫었지. 응원단은 수업에 빠지고 훈련하는 경우가 많았고 개인 시간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됐어. 아무래도 응원단이 유명하다 보니 교수님들도 응원단 훈련으로 빠지는 건 많이 이해해 주시는 분위기였고. 


난 그토록 가고 싶던 응원단을 겪어보고 깨달았지. 난 개인의 자유가 중요하고 합리적이지 못한 강압적 규율에 지고지순하게 따르는 타입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야. 


그렇게 난 응원단을 뛰쳐나왔는데, 조금 아쉽기도 해. 내가 겪었던 건 사실 너무나 초반이었고, 선후배 간의 끈끈한 동지애를 느끼기도 전에 관둬버렸으니까 말야. 힘든 여정 속에 끈끈해지는 결속력을 경험했더라면, 내가 본 비합리적인 선후배 문화는 사실과 달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그런 경험을 같이했던 친구들이 있었다면 아마 평생을 의지할 친구들이 생겼을 수도 있겠다 싶지. 선후배 관계도 처음에야 무섭지, 친해지면 그 속에서 또 편해지는 게 있기 마련이고 말이야. 


패션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도 대학에 들어가서 깨졌어. 난 패션디자이너가 되겠다며 수험생때 학과 커리큘럼까지 열심히 보고 어떤 수업을 들어야지 계획했었거든. 철저한 J형 인간이었지. 


신입생 OT에서 교수님과의 대화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앞으로 의류학과의 수업과 대학 생활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질문을 해서 교수님들의 시선을 끌기도 했어. 누가 봐도 그 학과에 진학할 뚜렷한 목표를 가진 학생이었지. 


그런데 결국 난 그 학과에 가지 않았어. 왜냐햐면 직접 옷을 만들어보면서 내가 하고 싶던 건 예술 혹은 취미이지 산업 디자이너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거든. 나는 내가 만들고 싶은 옷을 만들고 싶었는데, 디자이너가 하는 일을 사실 '팔리는 옷'을 만들어야 했어. 나 혼자 만들고 만족하는 건 취미이지 업이 될 수 없거든. 물론 내가 좋아하는 걸 대다수가 좋아하면 될 일이지만, 나는 그렇지가 않더라고. 취향이 독특했나 봐. 


그리고 교수님과 상담해 봤는데, 대학교에서는 패션과 관련한 관리직을 교육하는 거지 디자이너를 교육하기엔 내가 너무 늦었다는 거야. 업계에선 고등학교 때부터 디자인학과에서 공부하고 실질적으로 옷을 만들던 친구들의 실력을 따라가기 어렵고, 막내로 들어가기엔 대학 갔다 유학 갔다 오면 나이가 너무 많아진다는 거지. 


직접 내가 경험해 보고 또 교수님과 상담도 많이 하면서 나는 나의 꿈을 접었어. 내가 생각하던 길과는 너무 다르다고 느꼈거든.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또 막상 그렇지도 않더라고. 디자이너는 그냥 실력이 있으면 되는 거지 나이가 어떻고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아. 나는 그 분야에 아는 사람이 없었고, 업계의 현실을 들을 수 있는 창구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잘못 판단 했던 것 같기도 해. 


20대의 판단이 그렇지 뭐. 시야가 좁아. 그때는 되게 신중하게 생각하고, 선택의 큰 이유라고 생각했던 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정말 별거 아닌 거 있지. 그때 조금 더 많은 선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도 들어. 


그렇다고 후회되진 않아. 왜냐면, 지금 와서 알게 된 건데 난 그쪽으로는 영 센스가 없는 것 같아. 아마 그 길을 꾸역꾸역 갔으면 꽤 고생했을 것 같거든.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은 다를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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