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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영 Nov 05. 2023

종오소호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좇아서 한다


같이 사는 친구는 승부욕이 강해서 뭘 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인데, 옆에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보통 끝장이 나는 쪽은 본인인 경우가 많았다.


 '비염에는 수영이 쥐약'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도 주 5일 수영 연습을, 어느 날 저녁엔 모르는 사람에게 친구가 응급실에 있다는 연락이 와서 강북삼성병원까지 좇아갔더니 요가를 하다가 팔이 꺾였다나 뭐라나, 그 뒤에도 그 팔로 테니스를 감행, 여전히 운동을 하다가 종종 다쳐온다.


그래서 그녀의 관심사는 '용한 병원'. 우리 집에는 트레이너들이 쓰는 미세전류 마사지기 등등 재활에 도움이 되는 별별 보조기구들이 구비되어 있다. 요즘도 가지각색 부상을 달리던 그녀는 망원동에 괜찮아 보이는 한의원을 알아봐 와서 같이 가자고 꼬시기 시작했다.


같이 가자는 말에 혹하던 타이밍이었다. 10월마다 반강제적으로 해야만 하는 프로젝트가 있다. 해가 쌓일수록 이번엔 얼마나 성과를 내는가에 대한 막연한 부담감과 후회가 있긴 하지만 사실 예전에 비해 부담은 많이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둔한 머리에 비해 몸은 많이 지쳐있는지 돌봐달라는 시그널들을 보내곤 했다.



한의원을 가자더니 자꾸 망원동 골목길을 헤집다가 신축 빌라 앞에 섰다. 오기 전 미리 네이버 예약을 해야 하고, 호출을 해야 들어갈 수 있는 신기한 한의원.


원장님이 후리한 옷을 입고 맞이하셨는데, 금세 가운을 걸치고 돌아왔다. 자고로 내가 생각하는 한의원이라 함은 할머니들의 사랑방이자 뜨끈하게 지지는 곳. 그런데 여기는 미니멀리스트의 정점에 달하는 인테리어와 절제된 미감이 매력적인 곳이었다. 원장님은 필라테스 자격증도 있으셔서 필라테스 기구가 있는 방도 있었다. SNS를 보니 이 공간에서 연말 음악회도 열리는 것 같아. 역시 망원 피플은 다르구나.  



진단 전 작성하는 '체질에 대한 체크리스트'가 상당히 상세했는데, 그걸 토대로 진단받으니 몰랐던 나는 몰랐던 내 체질의 특징에 대해 잘 알려주셨다. 한의원의 꽃말은 한방침이 아닌가, 혈자리에 침도 맞고 빨간 조명을 보며 누워 있다가 상비약과 일주일치 보약도 구매 완.


상당히 신선한 한의원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업계마다 평준화된 레퍼런스들이 있는데 그 틀을 깼다는 느낌이 강해서인데, 이곳의 이름을 보면 더더욱 그 가치관이 와닿았다.


종오소호(從吾所好)는 논어에서 나온 말로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좇아서 한다.'는 의미다. <소호한의원>이라는 이름도 거기서 따온 말이다. 원장님과는 이번 한 번 대화를 해본 것이 전부이지만 오는 환자들에게 애정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모습이 좋았다.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 본인의 방식대로 본인이 사랑하는 일을 풀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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