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노는 1958년 55세에 도불(渡佛)전을 마지막으로 파리로 떠났다. 프랑스 생활 30년에도 불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몰랐다. 더군다나 동양미술학원을 개원하고 3천 명이 넘는 유럽 사람들을 제자로 둔 스승이었다. 이응노는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전통적 사군자로 시작해서 전위적인 추상화까지 동서양의 미술을 두루 섭렵한 작가였다. 이응노는 똑같은 그림을 두 번 그리지 않았다. 한두 가지 대표적 스타일을 반복해서 그리는 인기 화가들과 다르게 이응노의 변화는 무궁무진하고 거침없었다. 선승의 고행에 농밀하게 아름다운 불어가 불편했던 것일까. 사람의 정신과 민족의 얼은 사용하는 말과 글 속에 깃든다. 서양 사람을 닮아가면서 그들과 경쟁할 수 없는 일이다. 이응노는 파리 한복판에서 유창한 충청도 사투리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