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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마 Jul 05. 2024

(첫 서평)나는 사랑을 걱정하지 않는다

인정욕구를 채워주신 조정선샘 고맙습니다

페북 친구 조정선 전 MBC PD님 써주신 그림 에세이 <나는 사랑을 걱정하지 않는다> 서평입니다. 감동이에요~


가끔 글을 읽으며 책의 향기를 맡아본다.

어떤 책은 야생화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내나

시원한 허브향이 날 것 같기도 하다.

(새로 산 것일수록 잉크냄새만 진동할 뿐이지만 ㅎㅎ)


그동안 접해보지 못한 싱싱한 묘사나 표현들이 넘쳐나면 일단은 매력적이다. 눈으로 보는데 그치지 않고, 소리 내서 읽으면, 어느새 시가 되고 노랫말이 되는 문장들은 운문(韻文)이 아니라도 멜로디를 붙여보고 싶다.


글을 읽을 때 이건 멋진 건축물인가? 착각이 들 때도 있다. 작가가 자신이 사용할 단어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후에 저울에 달아서, 서로 비슷한 무게끼리만, 앞뒤로 배치해서 균형을 이룬 것 같이 절묘하게 느껴진다.


아름다운 책을 집에 비유한다면, ‘벽돌’은 어휘다.

정성스레 고르고 다듬으며 때로는 장식을 넣어 구워내는 건 작가의 역할이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벽돌을 크기와 무늬에 따라 견고하고 예술적으로 배치하는 게 필수다.


좋은 책을 만난다는 건, 디자인이 잘 된 집을 만나는 것만큼 행복하다.

강태운의 <나는 사랑을 걱정하지 않는다>가 그런 책이다.


명화(名畵)를 해설한 서적이지만, 기존에 나온 평론가의 해석이나 예술가의 전기에 나온 자료를 짜깁기한 수준이 결코 아니다.

그림을 더 오래, 더 자세히,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을 꼭꼭 집어냈다.


마치 그림 속의 인물들과 시시콜콜 대화를 나누고,

“내가 이렇게 써도 될까?” 허락까지 득한 듯이,

자기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작품을 풀어냈다.


강태운 작가는 대기업에서 오래 근무한 후

번아웃된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퇴사, 무작정 영국으로 건너갔단다. 아마 그때 미술관을 다니면서 그림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나 보다.


그는 그림을 통해서 그동안 자신의 삶이 얼마나 황폐했으며, 스스로 옥죄어 살았는지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표현을 가슴에 새길 수 있었겠지.


“그림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 어떤 보답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림은 내가 의심하고 적대할 때도 환대를 멈추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림은 당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사람(일부 인용)이라고 말한다“ (16쪽)

어떤 샐러리맨이든 회사에서는 딱 이와 반대되는 경험만 한다. 징그럽게 ㅎㅎ


그는 화삼독(畵三讀)이란 말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신영복 선생이 생전에 썼던 서삼독(書三讀)을 그림으로 바꾼 거다. 작품을 감상할 때, 최소 세 번은 곱씹어보라는 뜻이다, 그림 그 자체를 읽고, 작가와 그 시대를 읽고, 마지막으로 ‘나를 읽는’ 게 중요하다.


비단 그림뿐이랴!

우리가 접하는 모든 예술과 문학 작품들은 결국

‘나를 거울에 비취보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한 자기성찰이야말로 우리가 인생을 사는 맛이 아닐까.


책에는 28명의 국내외 아티스트와 그들의 대표작품을 소개했는데, 그림을 보고 느낀 이미지를 광고카피처럼 한 문장씩으로 요약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에게는 <미래를 아는 사람은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확실히 나혜석은 시대를 자각한 천재였다.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부조리한 사회에 저항하며 정직하게 살았던 거다.

다만 시대가 너무 일러서 스스로는 혜택을 못 받은 안타까움이 있었을 뿐.


책의 제목인 <나는 사랑을 걱정하지 않는다>는

작가가 프랑스의 화가 ‘다비브 자맹’의 작품 사랑(Amour)을 보고, 영감을 받아 생각해낸 카피문구다.


연인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눈을 감은 채, 한없는 평온을 누리는 표정을 지을 때, 작가는 갑자기 두려움에 휩싸인다.


“프레임 밖에는 폭풍우 같은 삶의 난관이 두 사람을 기다라고 있을 터였다. (중략) 프레임을 부수고 들어와 두 사람을 흔들어 깨울 것이다. (중략)

이런 염려와 상관없이 연인은 다른 세상을 사는 듯, 평온하다. 순간, 그들을 응원하려 했던 내가 무색해졌다. (중략) 그들에게 내 껍데기를 씌우고 응원하겠다며 손을 내민 거였다“  (270~271쪽)


그러면서 작가가 내린 결론은 이거다.


“나는 봄 햇살을 걱정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봄 햇살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사랑이다.

나는 사랑을 걱정하지 않는다“

(274쪽)


타인의 사랑을 재단하지 마라! 불모의 땅처럼 보이지만, 주변에는 사랑이 넘친다.

우리가 조금의 관심을 가지면 보이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이다.


미술작품에서 세상의 사랑까지 발견해 내다니!

#강태운

#나는사랑을걱정하지않는다

#화삼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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