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나무는 대립이 아닌 서로를 보완하고 증명하는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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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누렇게 익을 채비를 한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수능일이 코앞이다.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아이와 엄마 사이에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드러나지 않은 신경전까지 고려하면 고3 수험생을 둔 가정은 정중동(靜中動)이다. 내신을 챙기고 늦은 밤까지 학원에 매달린 아이는 주말에도 쉴 틈이 없다. 아이는 숨이 막혔을 것이다. 엄마는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쓰며 아이를 달랜다. 몸집이 엄마보다 커진 아이에게 엄마의 채찍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이제 아이는 엄마가 보여준 헌신에 뭐라도 해야겠다는 의지로 하루를 달린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간다면 모든 공을 엄마에게 돌리겠다는 아이는 엄마와 특별한 애착 관계를 키워가는 중이다. 엄마 품은 숨이 막히지만 안전하다.
그 옆에서 아빠는 둘 사이의 설명할 수 없는 관계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내 자리를 옮겨 캔버스 앞에 선다. 캔버스라고 다를까. 아무 준비 없이 흰 캔버스 앞에 서면 두려움을 느낀다. 캔버스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주위를 서성거린다. 애써 붓을 잡았지만, 시작부터 망쳤다. 까만 묵색이었다.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에 선 것처럼 처참한 기분이 들었다. 무슨 생각에서였던지 캔버스를 까맣게 덧칠했다. 그만둘까 하는 마음을 인내하며 칠하고 또 칠했다. 덧칠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위로였다. 까맣게 막막한 바탕 위에서 나는 새로운 시작을 생각했다. 오히려 어떤 고백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바탕이었다. 망친 채로 돌아섰다면 이래저래 힘든 날이었을 것이다. 흠잡을 데 없는 작품보다 더 애착이 간다.
애착(愛着)은 몹시 사랑하거나 끌리어서 떨어지지 않는 관계를 의미한다. 대부분 양육자나 특별한 사회적 대상과 형성하는 친밀한 정서적 유대관계에서 나타난다. 애착(愛着)이 있기까지 모든 과정이 순탄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머릿속으로는 목표와 과정이 함께 올바른 때를 일컫는 진선진미(盡善盡美)를 외치고,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추구하지만, 우리 삶은 다분히 인간적이다. 오만과 질투로 얼룩지고, 잘못과 실수와 참회와 용서로 점철된 땅 위에서 오랜 시간 인내한, 그러기에 더 애착이 가는 한 사람의 주름진 얼굴.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다.
오늘 만난 에곤 실레의 <사나운 대기 속의 겨울나무>는 그 애착 관계의 본질을 관통하는 작품이다. 에곤 실레에게 자신을 포함한 인간이 처한 자리는 매서운 찬 바람이 부는 겨울의 길목이었다. 앙상한 나무는 사나운 대기 속에서 가지를 휘날리고 있다. 실레의 그림에는 각지고 비실제적인 선들로 가득하다. 실레의 선과 색채는 안으로 감추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밀어내면서 드러나게 한다. 어두운 회색 조각들로 얼기설기 얽힌 배경은 대상의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실레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게 아니라, 대상을 관찰하는 자신의 내면 상태가 대상에 투영되도록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실레가 그린 나무는 인간을 닮았다.
인간은 시련을 통해 성장한다. 마찬가지로 사나운 대기는 나무를 인내의 생명으로 키운다. 바람에 흔들릴수록 나무는 뿌리를 깊게 내린다. 고통스럽고 외롭게만 보이던 나뭇가지에서 어느새 강한 생명력이 묻어난다. 연약하게 보이던 나무는 이제 가시 박힌 채찍처럼 대기를 가르며 바람의 가슴팍을 찢는다. 불안과 죽음처럼 나를 짓누르는 모든 억압에 저항하는 원초적 몸짓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바람은 나무의 흔들림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바람은 눈이 아니라 몸이 느낀다. 그래서 실레의 그림은 감각적이다. 바람과 나무는 대립이 아닌 서로를 보완하고 증명하는 관계다.
이상적인 삶은 광고에나 존재할 뿐 현실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일이 잘못되면 자신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세우려는 심리적 충동도 이상화의 다른 측면이다. 결혼, 상대, 미래를 너무 이상화하면 더 깊은 갈등과 혼란을 초래한다. 남는 건 공허함 뿐이다. 애착도 마찬가지다. 나무를 뒤흔드는 불안정한 대기처럼 사나운 애착이 기본값일지도 모른다. 숨 막히지만, 안전했던 모자(母子)의 관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