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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진혼의 붓질로 존재를 묻다

김창열이 붙든 것은 ‘물’이 아니라 ‘물방울’이었다

by 윌마

http://www.newswell.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460

※ 김창열 회고전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12월 21일까지 열린다.



“어억!” 김창열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내장 깊숙이 고여 있던 무엇이 한순간 터져 나온 듯한 외마디 비명이었다. 그것은 굴곡 많은 길의 끝에서 닳아 뭉개진 소리였고, 동시에 억눌린 울분이 막힌 숨구멍을 뚫고 나오는 소리였다. 일상을 찢은 비명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어두운 여운을 남긴 채 입언저리부터 진물처럼 흘러내렸다. 정작 그의 주위는 평온했다. 끔찍한 사건도 없었고, 몸에는 아무런 고통도 없었다. 비명은 과거의 어떤 지점에서 역류하여 시간의 장막을 찢고 나오는 것 같았다. 소리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마치 짐승처럼.



그의 내면을 불시에 덮친 것은 전쟁의 기억이었다. 미아리 고개를 넘는데, 사방에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탱크가 지나간 자리에 바람 빠진 럭비공 같은 사람 머리가 뒹굴었다. 차마 비명도 지르지도 못하고 숨이 끊어진 사람들. 나오지 못한 비명은 남은 사람의 몫이었을까. 아니었다. 목숨 붙은 자는 놀랄 틈도, 비명 지를 정신도 없었다. 비명은 입 밖으로 터져 나오지 못한 채 몸속에 쌓였다. 비명을 삼킨 채 서둘러 그곳을 떠났지만, 참혹한 장면은 평생 가슴속에 각인되었다.


김창열의 예술 세계는 바로 그 억눌린 비명에서 출발했다. 비명은 붓질로 옮겨졌고, 물감의 질감으로 변주되었다. 1950년대 후반 그는 ‘현대미술가협회’를 주도하며, 서구에서 유입된 앵포르멜을 한국의 상황에 새롭게 접목하려는 실험을 이끌었다. 김창열에게 앵포르멜은 단순한 양식이 아니라, 총알 자국과 탱크의 흔적처럼 전쟁의 고통스러운 절규를 화면에 메우는 행위였고, 죽음을 위로하는 제의(祭儀)와도 같았다. 그래서 그는 작품에 ‘제사’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시기는 그의 예술 세계에서 상처를 형상화하는 중요한 시작점이 되었다.


1971년, 김창열은 마침내 물방울과 조우한다. 캔버스를 재사용하기 위해 뿌려둔 물이 우연히 맺히는 순간, 그는 충만한 형태의 세계를 보았다.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전쟁의 기억, 앵포르멜의 절규, 창자 미술의 실험을 거쳐 도달한 필연의 결과였다. 김창열이 붙든 것은 ‘물’이 아니라 ‘물방울’이었다. 물이 끝없이 흘러 만물을 감싸는 보편적 존재라면, 물방울은 개별의 아픔을 증언하며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각각의 방울은 눈물처럼 작지만, 그 안에는 기억과 비명, 삶과 죽음, 멈춰 선 시간의 무게가 응축되어 있다. 물방울은 위태롭고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듯 보이지만, 화면 위에서 온전한 존재로 고유의 시간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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