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의 이름 없는 꽃도 가까이서 자세히, 오래 들여다보면 아름답다
2025년 한국형 클레멘트 코스 디딤돌인문학 사업을 인문공동체 책고집(대표 최준영)이 맡아 진행했다. 클레멘트 코스는 1995년 미국의 언론인 얼 쇼리스가 뉴욕 주변의 노숙인을 모아 철학, 문학, 미술사, 역사 등을 가르쳤던 인문강좌이며 한국형 클레멘트 코스는 그 정신을 이어 국내의 노숙인과 재소자, 저소득 주민들에게 인문학을 통해 삶의 희망과 꿈을 품게 하자는 취지로 운영되는 강좌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예산을 세우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발주한 사업으로 전국의 교정시설, 노숙인시설, 지역자활센터 53곳에서 521 강좌가 진행 중이다. 필자는 관계 맺는 그림 읽기 ‘화삼독畵三讀’을 주제로 미술인문학 수업을 맡아 전국을 누볐다. 이들 기관은 특별히 외딴곳은 아니지만 대체로 일상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지점에 자리했다. 그곳을 찾아다니다 보니 우리가 사는 곳 가까이에도 희망을 잃고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이 적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강의 장소는 익산의 이리자선원이었다. 노인, 장애인, 복합 질병 등 다양한 사정과 특성을 지닌 분들이 함께 생활하는 노숙인 재활 복지시설이다. 강의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원장님과 담당 복지사께 인사를 드리고 강의장 환경을 살폈다. 잠시 후 수강생들이 한 분씩 들어오셨는데 첫눈에도 몸과 마음이 무척 불편하고 의사표현도 어려워 보였다. 참여한 열두 분 가운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은 네 분 정도였다. 강의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날은 모든 것을 내려놓는 시간이었다. 머릿속에 바리바리 챙겨 온 강의 내용은 그대로 접어두고 정말 ‘몸’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눈을 맞추고 손바닥을 마주치고 작은 몸짓이라도 보이면 크게 반응했다. 말귀를 온전히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그들은 눈과 귀를 열고 나를 바라보았다. 강의장 앞에 서면 ‘나는 이런 수준까지 사유를 끌어올린 사람입니다’하고 강사로서의 나를 세우고 싶은 유혹에 흔들리지만 그날은 그런 유혹 자체가 설 자리가 없었다. 언어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인문학의 원형과 마주한 순간이었다.
디딤돌인문학강좌 시간만큼은 참여하는 분들이 주인공이다. 주인공 자리에 앉히면 빛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레미제라블」의 장발장도 교도소 재소자였다.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을 감옥에 갇혔던 절도범을 빅토르 위고가 주인공 자리로 끌어올린 것이다. 들판의 이름 없는 꽃도 가까이서 자세히, 오래 들여다보면 아름답다. 디딤돌인문학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세우고 서로가 빛나는 시간이다.
주인공 자리에 앉혀도 수강생들은 표현을 잊은 듯 표현을 망설인다. 마음속 응어리를 풀지 못하고 술로 울분을 삼켜온 세월이 얼마나 길었을까. 인문학은 ‘표현’이다. 표현해야 건강해진다. 디딤돌인문학은 몸짓, 음악, 그림, 명상, 대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표현할 또 하나의 언어를 찾아가는 시간이다. 자신을 소모하는 방식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방식으로 내면의 에너지를 바깥으로 흘려보내는 배움이다.
강의가 끝난 뒤 한 수강생과 오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열세 살에 부모님을 잃었다”며 시작된 이야기는 거리의 삶에서 유흥업소 기도, 재소자, 노숙인의 삶으로 이어졌다. 담담하게 풀어낸 이야기에는 ‘척’이 없었다. 있는 척, 아는 척, 꾸밈도 환상도 없었다. 사회적 가면 뒤에 숨어 사는 나 자신이 순간 부끄러웠다. 이야기 중간에 잡은 그분의 손을 끝날 때까지 놓지 않았다.
어려운 이웃을 보고 불편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나눔에 참여했다는 분들이 주위에 있다. ‘내 마음 편해지자고 하는 일’이라는 고백은 솔직하고 진실하다. 다만 이런 활동은 개인 영역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 디딤돌인문학 사업을 통해 체계적으로 많은 분과 함께하다 보니 우리 공동체를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어려운 이웃에게 지속적으로 디딤돌이 되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