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끓이며

김훈

by 정작가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의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한 '라면을 끓이며'는 작가가 라면을 끓이며 겪었던 소회를 글로 풀어낸 산문이다. 일찌감치 <칼의 노래>라는 작품을 통해 작가의 진면목을 확인했던 적이 있다. 김훈은 늦깎이에 데뷔한 작가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산증인이기도 하다.


'라면을 끓이며'에서 또한 문체는 간결하고 담백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라면 한 봉을 끓여 먹으면서도 이런 글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한눈에 봐도 명문임을 느끼게 하는 글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작가의 표현대로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지만 낯선 지방 소도시에서 밥 먹을 식당을 골라내는 촉도 살아있다. 낯선 타지에서 맛있는 식당을 본능적으로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은 타고난 복이다. 아니면 수십 차례 경험에서 우러난 삶의 지혜일 수도 있겠다. 삼겹살을 구워 상추에 싸서 먹는 한 입의 가치를 기술하는 대목에서는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퇴계 선생의 세 가지 반찬에 대한 일화나 김밥도 퓨전보다는 단무지, 시금치, 우엉 한 줄 넣은 김밥이 깔끔하고 단정하다는 작가의 변(辨)은 충분히 일가견이 있다.


김밥이 등장하면 당연히 따라오는 것은 라면이다. 분식집에서는 그런 맛의 배합이 거의 도식화되어 있다. 작가는 여기에서 태클을 건다. 이런 배합은 '뷔페식당의 음식을 모조리 뒤섞어서 비빈 것처럼' 엉망진창이란다. 그걸 알면서도 같이 시키는 이유는 시장기가 근원이다. 수긍할 수 있는 이유다.


'맛은 화학적 실체라기보다는 정서적 현상이다. 맛은 우리가 그것을 입안에서 누리고 있을 때만 유효한 현실이다'. 기가 막힌 표현이다. 맛의 정의를 이처럼 명징하게 드러내주는 표현을 찾기란 더 이상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그렇게 라면의 탄생 역사는 자연스럽게 옛 시절의 추억을 귀환시킨다. 소설가 이문열과 문학평론가 김현의 라면에 관한 인용 글과 일화는 작가의 라면 예찬론을 더욱 신빙성 있게 만든다.


군대에서 라면의 추억은 빼놓을 수 없는 한 토막이다. 군대 생활의 즐거움이 담배와 라면에 있다는 말은 직접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수긍이 가는 말이다. 군인들을 포함하여 전 국민에게 사랑을 받게 된 라면의 소비는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어서 먹을 것이 넘쳐나는 현실에서도 여전히 멈춰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전 세계에서 가장 라면을 사랑하는 국민이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라면시장의 팽창은 자본주의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작가의 시선은 이렇듯 냉철하다. 작은 먹거리를 통해 자본주의의 모순을 집어낼 수 있는 혜안, 작가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작가도 언급한 말이지만 이 글은 사실 라면 조리법을 소개하려고 시작한 글이다. 하지만 정작 조리법 소개가 들어있는 본론은 글의 말미에 3쪽이 전부다. 작가의 말처럼 단순히 조리법을 소개하기 위해서라면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조리법은 핑계고, 오히려 그와 관련된 사회적인 인과관계가 더 큰 의미로 작용했을 것이다. 고로 라면이 주는 의미에 대한 사유와 고찰이 주를 이룬다고 하는 것이 적확한 집필의 변(辨)이 아닐까 싶다. 라면을 끓이면서도 이런 깊은 사유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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