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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가져야 할 (富)에 대하여 / 고명환 / 라곰

by 정작가

2024년 교보문고에서 한강 작가와 더불어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개그맨 출신 작가 고명환의 작품이다. <고전이 답했다> 시리즈 중 전작이 삶에 대한 내용이었다면, 이번 책은 부(富)에 대해 다루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부를 획득하는 것은 필수조건이 되어버렸다. 물신주의를 비판하는 경우도 많지만 돈에 대한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아픔을 모른다. 필자도 한 때는 돈에 대해 초연한 척 살아왔지만 막상 재정위기를 겪고 보니, 엄청난 부자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적어도 생활비는 기본적으로 확보해 놓고 살아야 인생에 큰 부담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저자 또한 그런 부에 대한 생각을 이 책에 풀어놓는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돈은 무엇인가, 2부 돈은 어떻게 벌어야 하는가, 3부 당신은 부를 가질 수 있는 사람 인가로 분류되어 있다. 매 장을 구성하는 형식은 간단하다. 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나 고전 속에 새겨진 글을 토대로 소개하고, 마지막에서는 Q&A라는 형식으로 이를 정리하는 식이다. 대부분의 장에서는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고전 내용이 짤막하게 인용되어 있다. 저자가 이런 방식을 택한 것은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텍스트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막연히 저자의 생각을 옮기는 것보다 이런 식의 인용문은 글의 객관성을 높여주고, 수준을 향상하는 효과가 있다.

이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 ‘들어가며’에서 언급한 저자의 말은 우리가 그동안 ‘마땅히 가져야 할 부(富)’를 갖지 못했던 이유를 설명한다. 인용을 하면 다음과 같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나와 대학교까지 졸업하고 직장에 취업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연봉 1억 원 이하의 사람으로 가둬버린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연봉 1억 원 이하의 세계에 살고 있다. 문제는 자신이 연봉 1억 원 이하의 세계에서만 살고 있다는 자체를 모른다는 점이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어떤 조건 하에서 살아가도록 교육받고 길러졌는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봉 몇천만 원의 범위 내에서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고, 필자 또한 수십 년 동안 그런 세월을 겪으며 살았다. 이런 저자의 자각은 그가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도전을 꾀했고, 특히 수천 권의 고전 읽기를 통해 생각의 토양을 남들보다 확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식당을 운영하면서 집필과 강연, 공연 기획과 제작 등 다양한 일들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사회가 요구하는 평범한 인간의 삶을 거부하고, 자기 방식대로 운명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저자가 말하는 부(富)에 대한 담론은 철저히 삶 속에서 체득한 철학에 기초한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고전이 답했다 – 마땅히 가져야 할 부에 대하여>는 단편적으로 부에 대한 이야기만을 다루지 않는다.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된 고전은 그 자체로서 ‘책 속의 책’이라는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해 낸다. 이를테면,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의 확연한 공통점, 도전의 의미, 발상의 전환, 성공의 법칙, 일을 대하는 태도, 고통을 대하는 방식 등 인생을 살아가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지혜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내용들이 즐비하다. 자기 생각 속에만 거하는 관념이 아니라 우리가 익히 알고 있거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사상적으로 거인의 힘을 지녔던 이들의 생각을 흡수하는 과정은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어 주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


부록인 ‘부자들의 언어’에서는 기본 편과 응응 편으로 나누어 경제 관련 용어들을 알기 쉽게 풀어놓고 있다. 이 부분만 숙지하더라도 개략적으로 경제의 문외한이라는 소리는 듣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각 용어에는 QR코드가 붙어 있어, 좀 더 상세한 강연을 들을 수도 있다.


우리가 독서를 하는 이유는 책을 읽고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한 측면이 크다. 독서의 본질적인 의미가 사유인데도 이를 간과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단순히 저자의 생각과 주장을 받아들이는데 머물게 하지 않는다. 저자가 던진 46가지 질문들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적어 보고, 이를 통해 사유의 관점에서 읽은 내용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명환 작가의 <고전이 답했다> 시리즈는 고전을 통해 형이상적인 사유의 가치를 설파하지 않는다. 전작에서는 ‘삶’, 이번 책에서는 ‘부’를 다루었을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삶=돈’이라고 하는 도식이 낯설지 않다. 한때는 부(富)를 부정하는 것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특히 고전과 관련된 책에서는 부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금기시하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 그런 물신화된 세상을 비판하면서도 여전히 부에 대한 갈망을 주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이는 이중적인 행태는 지양함이 옳지 않을까, 싶다. 차라리 저자처럼 과감하게 고전을 통해 마땅히 부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필자 또한 종교의 영향 등으로 부에 대한 인식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던 시절이 있었다. 역설적으로 그런 종교가 오히려 자본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목도하면서 더 이상 그런 인식이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 뒤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눈길을 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만큼 돈을 벌고 싶은가? 그렇다면 수많은 돈이 반짝일 수 있도록 당신 안에 텅 빈 공간을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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