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 모이는 곳에는 대부분 여왕벌이 생긴다.
쎄 보이는 여왕벌 곁에는 늘 수군수군, 킥킥거리는 맹한 표정의 시녀가 한둘 있지.
여왕벌은 결코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고 시녀 군단이 있음으로써 완성된다.
그런 무리는 여학생이 몇 안 되던 내 대학생 시절에도 있었고,
졸업하고 한참 지나 다시 모였을 때도 있었다.
내가 쉰 전후해서 남녀노소 모두 있는 어떤 계절 세미나에 참가했을 때도 있었고.
여자들 모임에 잠깐 나갔을 때도 그녀들은 있었다.
지극히 개인주의자인 나는 어느 누구도 개의치 않지만,
대체로 여왕벌은 나를 싫어한다, 경계한다, 는 느낌을 받는다.
내 주관적인 경험으로 볼 때 여왕벌과 시녀군단은 매력적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왠지 모를 적의와 경쟁심으로 들끓는 불편한 심리 상태에 있는 천덕꾸러기 분위기를 풍겼다.
쎄 보이려 하는 여왕벌은 시녀군단을 거느리고 있으니 자신이 리더십이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볼 때는 리더십이 아니라,
단지 주류에 대한 적개심을 내뿜는 소심한 반항심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어떤 신념이나 가치를 갖고 사람들을 설득, 인솔하는 리더가 아니라,
주인공을 시기하고 질투해서 사사건건 발목을 걸면서 삐죽거릴 뿐인 일종의 반작용이다.
시녀들은 여왕벌과 비슷한 심리 구조를 가졌으나 혼자서는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나약한 인물들이어서,
언행이 강해 보이는 여왕벌 곁에 찰싹 들러붙어서,
그 힘을 빌려 거들먹거리는 거지.
여자들 모임에서 만난 여왕벌은 전형적인 천덕꾸러기 아줌마 스타일이었는데 나이가 나보다 한참 아래로 보였다.
두어 번 자리를 같이 해 낯이 익자 슬슬 내게 말을 놓는데.
뭐 나이 갖고 유세 부릴 생각은 없으니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어느 날 또 그러니까 내 나이를 알고 있는 총무가 모른 척 내 학번을 묻네.
그래서 대답하니까 여왕벌 표정이 순간 싸하다가,
잠시 후 아주 어색하게 하하하하 웃더니.
"그렇게 어린 양 하니까 내가 속았잖아요!" 하는 거다.
순간적으로 자신을 피해자, 나를 가해자로 뒤집어버리는 놀라운 스킬.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자리만 지켰는걸요.
맨날 떠드는 사람은 자기였으면서 말입니다.
그다음에 모였을 때 여왕벌은 "모든 부부의 의무 이혼"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중이었다.
모든 부부는 결혼하고 10년 지나면 다 이혼해야 한다는 거다.
어이없어서 내가,
할 사람은 하고 안 할 사람은 안 하는 거지,
무슨 이혼까지 강제해요.
잘 사는 부부한테는 무슨 날벼락이게요? 하니까.
이혼하고 싶어도 남들 눈 때문에 못하는 부부들이 많으니까 강제로 다 이혼하게 하고.
그렇게 좋으면 다시 재혼하면 되잖아요?, 라면서 빽, 성질부리네.
어우,
저런 심술이라니.
내게 한 말은 애교였구나.
미처 몰랐던 사람의 심리를 드러내줘서 고맙다, 해야 할지.
결혼, 이혼 말고도 남의 행복을 바라보는 그런 식의 심리가 있는 건 사실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