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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주 Mar 01. 2024

누가 가해자인가

위선이 들끓는 세상, 누구를 위한 정의였나


나는 고등학생이었을 때 몰카 피해자였다.

나를 좋아하던 남자애가 다른 학교에 다니는 본인 친구에게 내 전신사진을 몰래 찍어 보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때 화는 조금 났지만 수치스러움을 느끼진 않았다. 아니 사실 화도 안 났던 것 같다. 그저 그 애가 너무 하찮게 느껴져 웃음밖에 안 났던 것 같다.

나는 이 사실을 어른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고, 내가 직접 그 애를 응징하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다른 반 한 여자애가 어떻게 알았는지 이 사실을 선생님들께 알렸다. 정말 너무 어이가 없었다.

이건 나를 위한 게 아니었다. 갑자기 일이 커졌다.

선생님들이 나를 찾기 시작했고, 주변에서는 나를 안쓰러운 시선으로 보기 시작했다.

나는 계속 괜찮았는데 갑자기 괜찮지 않아졌다.

선생님들은 부모님께 이 상황을 알려야 한다고 했다. 나는 솔직히 이런 얘기를 부모님과 하고 싶지도 않았고, 부모님은 실제 상황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걱정할 것 같아서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말하지 말라고 계속 설득했지만 선생님들은 뜻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그중 한 선생은 나보고 따지고 보면 그렇게 별일은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뭐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선생이란 작자가 그런 말을 나에게 직접 이야기하고, 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부모님에게 알리려고 하는 태도가 너무 어이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갔더니 엄마가 나에게 말을 꺼냈고, 그런 이야기하는 상황 자체가 너무 불편해서 얼레벌레 넘기기는 했다. (다행히 아빠는 지금까지도 모른다.)

또 친구들에게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어필했지만 그들은 날 동정하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내가 수치스럽지 않은 게 이상한 건가?

이런 상황에서는 괜찮으면 안 되는 건가?

이런 생각이 자꾸만 들기 시작했고, 말과는 다르게 진심으로 걱정하지도 않으면서 이런 사건 자체에 흥미를 느끼는 그들에게 진절머리가 났고, 또 혼란스러웠다.

잘못한 건 그 남자 앤데 왜 내가 이런 불편한 상황에 놓였을까.

나중에는 그 남자애와 같이 성희롱한 친구 모두 직접 만나 통쾌하게 복수하기는 했다. 그 후 나를 찍은 그 친구는 진심으로 반성하며 사과했고, 나는 용서했다.

사실 나는 그 애랑 그 일 이전에 몇 번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친구가 친구를 잘못 만나 한순간에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고, 또 이런 일이 아니더라도 계속 뭔가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면서 살 것 같았다. 안타까웠고, 불쌍했다. 그 친구의 잘못을 미화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솔직히 나에게 더 큰 상처를 준 것은 그 애가 아닌 주변 사람들이었다. 행동하지 않았다고 해서 자신은 선한 사람이라고 착각하지만 그들은 혀 끝에 달린 칼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모든 것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버린다. 정의라는 이름 아래 전혀 정의롭지 않은 행동을 하지만 지금도 그때 본인이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학교는 작은 사회이자 정치판이었고, 나에겐 너무 씁쓸한 기억으로 남은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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