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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롱님 Nov 01. 2020

광고홍보쟁이 엄마는 뭐가 달라?

광고홍보쟁이 엄마표 미디어 놀이 #2


4살쯤 되던 아이가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나에게 “엄마 뭐해?”라고 물어왔다. “엄마 일해." 하며 답하니 "엄마는 무슨 일 해?"라고 묻는다. 내가 하는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엄마는 생각하고(기획) 그 생각을 토닥토닥해서 하얀 화면에 이렇게 글자로 쓰는 일(제안서 작성)을 해.”라고 얼버부리며 말했다. “그러네. 하얀색 위로 까만색이 생기네.”하며 아이도 토닥토닥 해보겠다고 했다. 빈 파워포인트 페이지에 검은색의 무언가가 나타나고 지워지는 모습을 신기해했다.


이후 어린이집에서 엄마, 아빠 직업을 소개하는 활동이 있었다. 당시 아이는 엄마는 회사에 가서 토닥토닥하는 일을 한다고 말했단다. 조금씩 크면서 친구 엄마, 아빠 직업은 ‘사’ 자로 끝난다며, 엄마 직업은 뭐냐고 물었다. “A 엄마는 미용사, B 아빠는 버스기사, B 엄마는 간호사래. 엄마 직업도 사로 끝나?” “흠…… 엄마는 광고를 만드는 사람이야.”라고 얘기했다. 엄마 직업이 사로 끝나지 않아 서운한 눈치였다. “꽁이가 보는 뽀로로 만화 시작하기 전과 끝난 뒤에 나오는 장난감, 음료수 소개하는 거 기억나? 그걸 광고라고 하는데 그런 걸 만들어."라고 덧붙여 설명했는데 아이의 대답은 짧았다.  “응.”


출처: PxHere

아, 나는 내 직업을 쉽게, 단 한 번에 설명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내가 대학에서 광고홍보학을 전공할 수 있게 허락해준 부모님도 '그래서... 넌 무슨 일을 하냐'라고 여태 물으신다. 신랑도, 남동생도 비슷하다. 어느 날 꽁이 친구 엄마들에게 내 직업을 소개하면서 아이에게 설명하기 어렵다는 고충을 털어놨다. 그러니 그냥 광고홍보라고 말하면 된단다. 계속 설명하면 아이가 더 이해하기 어렵다고. 그날부터 나는 '엄마는 광고홍보일 해'라고 한 문장으로 말한다. 한결 가볍다.



엄마이기 이전부터, 엄마로 일하며 사는 지금에도 미디어 속에서 살고 있다. 주변의 모든 채널이 타깃 미디어가 되고, 그런 미디어에 클라이언트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노출시키는 게 나의 일이다. TV를 보고 신문, 잡지를 읽고 라디오를 듣고 포탈, SNS 등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또 본다. 미디어가 너무 많아져 팟캐스트, 유튜브, 틱톡, 게임, 심지어 오픈 채팅방도 들여다본다. 핵심은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본다(듣는다)는 거다. 출퇴근 시간엔 버스, 지하철 곳곳의 광고판을 두리번거리고, 라디오엔 어떤 광고/협찬이 붙는지 듣고, 동시에 스마트폰 속을 들여다보며 기사와 광고를 모니터링한다. 심지어 내 앞사람이 어떤 콘텐츠를 소비하는지도 엿본다.


출처: Flickr


카페나 맛집을 선택할 때, 쇼핑을 할 때, 여행을 떠날 때, 아이 학원을 보낼 때 등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나는 미어캣처럼 주변을 살핀다. 이런류의 미디어 얼리어댑터는 미디어를 학습하고 미디어의 정량/정성적인 면을 분석하고 일에 적용시킨다. 미디어를 소비하면서 미디어를 구매하는 양면성을 지닌 내가 엄마가 되었다. 광고홍보쟁이 엄마가 아이를 키우며 알려주는 미디어는 다른 엄마와 다른 뭔가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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