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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와소피 Dec 20. 2023

3년의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통일/북한 책소개] 아랫집 윗집 사이에 (2)

활동했던 내용을 정리하다가 2020년 말에 통일부 블로그에 기고할 뻔했던(?) 아니, 나는 기고했지만 무슨 일인지 실리지 않았던 글 네 편을 발견했다. 북한/통일과 관련한 책을 소개한 네 편의 연재글인데 이렇게 버려지기에는 아까워 브런치에 업로드한다. 




학생들과 통일에 대해 이야기 할 때, 1945년부터 1948년 사이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한다. 누군가에게는 분단의 아픔과 상처로 가득한 시기이겠지만, 나에게는 비로소 해방을 맞아 한반도에 새로운 정치체제를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꿈과 이상이 가득한 시기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통일에 대한 설렘을 느끼게 해주고 싶을 때 이 시기를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경제적 이익이나 민족적 당위성을 이유로 통일을 이야기할 때보다, 내가 살고 싶은 나라를 상상해보라고 할 때 더욱 눈을 반짝인다.


1945년 8월 15일, 사람들은 분명 해방의 기쁨과 동시에 내가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든다는 희망에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해방된 한반도는 더 이상 일제의 치하에 놓인 조선도, 국왕이 존재하는 조선도, 정치 개혁의 꿈이 꿈틀대던 대한제국도 아니었다. 정통성을 가진 정부가 없는 상태에서 한반도는 모든 이가 한번쯤 여러 꿈과 이상을 실현해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 시기를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는 책 두 권을 소개하려고 한다.



1945년 8월 15일을 상상해보자


길윤형의 《26일 동안의 광복》의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8월 14일 여운형은 조선의 2인자인 엔도 류사쿠 정무총감의 연통을 받는다. 일본이 곧 항복할테니 다음날 급히 관저로 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엔도는 여운형에게 일본 사람들이 보복을 당할 것이 두려워 치안을 맡겼다. 하지만 여운형은 치안 관리를 넘어 어떻게 독립 국가를 세울 것인지, 어떤 세력들과 결집할 것인지 생각하고 행동하기 시작했고 좌우를 모두 아우르는 민족통일정부를 세우고자 했다. 우리 손으로 해방한 것이 아니라 일본군의 항복으로 해방을 맞은 만큼 한반도에서는 단일 세력이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6일 동안의 광복》은 이렇게 여운형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송진우, 임시정부, 총독부, 미군정 등의 입장에서 8월 15일부터 9월 9일까지의 이야기를 빠른 속도로 다루고 있다. 내용 면에서도 긴박하고 박진감 있지만, 흥미진진한 서술은 단번에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가 결정하는 정치체제로 새로운 정부를 수립한다는 것이 얼마나 설레고 긴장되는 느낌이었을지 그들의 의지와 갈등을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다. 




다른 책 조한성의 《해방 후 3년》은 민족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움직였던 지도자 7명을 중심으로 해방 이후 1948년 남북 단독정부 수립까지의 시기를 다룬다. 여운형, 김규식, 김구, 박헌영, 이승만, 송진우, 김일성. 이미 각자의 평전과 역사서가 있을 정도로 잘 알려진 인물들이지만, 이 책에서는 이들이 어떻게 서로 협상하고 대립해왔는지에 더욱 조명한다. 각자가 원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였는지 비교해볼 수 있고, 분단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6일동안의 광복》이 빠른 속도의 다큐멘터리라면, <해방 후 3년>은 7인의 이야기를 각각 다룬 단편 소설 같다. 두 책을 비교하며 읽으면 1945년부터 1948년 사이를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더 많은 이들의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남북관계가 되려면


1945년 8월 15일과 그 이후의 3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두 가지 면에서 도움이 된다. 먼저, 당시 선택할 수 있었던 다른 정치이념과 정치체제를 살펴 볼 수 있다. 위의 두 책에서는 실제로 다양한 정치이념을 지녔던 인물들의 목소리를 소개한다. 여운형은 사회주의 세력이 포함 가능한 민주주의를 추구했다. 이승만은 사회주의를 거부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했다. 김규식은 이승만과 민주주의에 대한 지향은 비슷했지만, 사회주의 세력과 부분적으로 합작해서라도 통일정부가 필요하다고 봤다. 박헌영과 김일성은 공산당이 중심이 되는 사회주의 체제를 구상했다. 그리고 각자의 정체체제 안에서 평등, 자유와 같은 가치들이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상이한 정책적 구상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정치제도와 가치를 둘러싼 이런 치열한 논쟁과 씨름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내가 살고 싶은 국가는 어떤 곳인지에 대한 상상의 벽을 허무는 데 도움이 된다. 


두 번째는 통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통일 이후 어떤 정치체제를 가진 국가가 되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를 가질 수 있다. 해방 이후, 대다수의 남북 주민들은 분단을 원하지 않았다. 당시에 이미 미소 양국에 의해 한반도가 분할 점령된 상태여서 남북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만일 남북 간 합의를 통해 통일을 이뤄낸다면 우리는 다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를 꿈꿔볼 수 있다.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밝힌다. 하지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우리의 입장일 뿐, 북한은 다르게 생각할 테다. 그리고 이때 '민주적'이란 절차적 민주주의, 즉 남한과 북한의 인구비례에 따른 총 선거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현재 한국의 정치체제를 의미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과거 남북은 단독정부 수립을 결정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이는 결국 분단으로 이어졌다. 통일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남북이 함께 만들 나라는 어떤 정치체제일지 구체적인 상상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에서 해방 이후의 역사는 지난 시간 우리가 가졌던 다양한 정치적 의견과 합의 과정이 어땠는지 돌아 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아마도 가장 바람직한 통일은 남북 주민이 각자가 내가 살고 싶은 나라를 상상하고, 이를 민주적 의사결정을 통해 결정한 내용일 것이다. 그 내용이 무엇일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각자의 몫과 책임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사실 통일과 같이 먼 미래가 아니더라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국가에서는 민주적 의사결정이 잘 이루어지는지, 우리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지부터 먼저 성찰해 볼 일이다. 



글. 오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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