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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와소피 Jan 03. 2024

3만 4,021개의 이야기

[통일/북한 책소개] 아랫집 윗집 사이에 (4)

활동했던 내용을 정리하다가 2020년 말에 통일부 블로그에 기고할 뻔했던(?) 아니, 나는 기고했지만 무슨 일인지 실리지 않았던 글 네 편을 발견했다. 북한/통일과 관련한 책을 소개한 네 편의 연재글인데 이렇게 버려지기에는 아까워 브런치에 업로드한다. 




몇 년 전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센터 실무자로 일했을 때다. 사회통합사업으로 북한이탈주민이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총 네 분의 북한이탈주민이 사전 인터뷰를 통해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하여 책 제목과 목차를 정했다. 사람들은 책 제목을 보고 신청을 했고, 북한이탈주민과 직접 마주 앉아 약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참가자 중 한 분이 이런 후기를 남겼다. "북한이탈주민 이야기라고 해서 기대하고 왔는데 북한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어서 아쉬웠어요." 뜻밖의 반응이었다. 그 분이 참여한 사람책은 꿈 많은 평범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고, 북한에서의 삶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 행사에 참여한 대다수는 북한이탈주민에게 기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 이야기를 상상해 보자면 대략 이렇다. 북한에서 힘들었던 경험, 탈북을 결심한 동기, 우여곡절 끝에 성공한 탈북 , 북한 사람들의 일상, 남한에 처음 와 느낀 감탄, 어렵지만 성실하게 적응하는 현재, 남한 사회에 대한 감사 등등. 하지만 모든 북한이탈주민의 삶이 이렇게 수렴되진 않는다. 우리가 기대했던 이야기와 기대하지 안않았던 이야기가 담긴, 북한이탈주민이 쓴 책 두 권을 소개한다. 



3만 4,021가지의 이야기


주승현 작가의 《조난자들》은 북한이탈주민을 포함한 분단 체제 하에서 조난자로 살아가는 이들을 주제로 쓴 에세이다. 그가 소개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의 사례는 너무 다양해서 하나의 일관된 모습으로 묶이지 않는다. 마치 나와 친구의 공통점이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사실 외에는 없는 것처럼, 북한에서 왔다는 것을 제외하면 삶의 환경, 성격, 직업 등 모든 것이 다르다. 그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한국 사회도 다르게 읽힌다. 많은 사람들은 북한이탈주민이 한국에서의 삶에 전반적으로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남한 사회에 잘 적응한 북한이탈주민도 있는 반면, 해외로 탈남하거나, 다시 재입북한 사람들도 있다고 이야기 한다. 이는 단지 남한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북한에서 중위층이었던 사람이 느끼는 박탈감이 하위층의 사람보다 훨씬 크다. 북한에서 좋은 직업을 갖고 평범하게 살았지만 한국에서는 그만큼의 삶의 수준을 누리거나 대우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상대적 박탈감은 하급 계층의 탈북민보다 중간 계층의 탈북민일수록 더하다. 북한에서는 나름 잘나갔지만, 한국에서 그들의 경력은 폄훼되고 생계마저도 위태로운 처지로 내몰린다. 교사 출신의 탈북민은 식당 주방보조로, 북한군 연대장 출신의 탈북민은 주유소 아르바이트로, 연구자 출신의 탈북민은 이삿짐을 옮기며 살아간다. 《조난자들》, 70쪽 


이처럼 어떤 이들에게는 남한 사회가 도리어 기회가 차단된 곳처럼 느껴질 수 있고, 어떤 이들에게는 기회가 많은 자유로운 곳일 수도 있다. 또한 안정적인 수입이 있고, 번듯한 직업을 가지는 것만이 이들의 안정적인 삶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북한이탈주민은 북한에서 태어나고 교육을 받은 이후에 한국으로 왔다는 이유로 늘 '북한 사람'이라는 의심과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은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선택하고 이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방해한다. 그래서 북한이탈주민 중 한 명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은 마치 조난당한 것처럼 안전한 곳을 찾아 여전히 헤매고 있다. 


여러 명의 이야기가 담긴 앞의 책과 달리, 장영진 작가가 쓴 《붉은 넥타이》는 자신의 인생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작가는 남북의 차이 혹은 북한이탈주민의 경험이 아닌, 성소수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 간다. 북한에서 사랑했던 사람, 상대에게 끊임없이 미안하기만 했던 결혼, 남한에 와서 깨닫게 된 자신의 정체성, 그리고 또다른 사랑과 이별, 그리움을 이야기한다. 물론 읽는 이의 시각에 따라 북한의 일상은 얼마나 어려웠는지, 북한의 정치체제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방점을 둘 수도 있다. 그러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북한과 남한이라는 배경보다도,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발현하는 주인공에 더 몰입하게 된다. 장영진 작가처럼 북한이탈주민 모두가 자신의 삶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를 쓴다면, 그 이야기는 절대 한 가지일 수 없다. 분명, 3만 4,021개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이름을 넘어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자신의 정체성을 단 한가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필요와 상황에 따라,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특정 정체성이 드러난다. 나 또한 상황에 따라서 평소에 잘 가지도 않는 고향 출신인 것을 강조하기도 하고, 졸업 후 찾아가지도 않는 모교 출신인 것을 드러내기도 하고, 연락도 잘 안 하는 그 사람과 아는 사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잘 언급하지 않던 병력을 장황하게 늘어놓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 모두 필요와 때로는 이익에 따라 내 정체성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선택해서 산다. 북한이탈주민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출신과 다른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온전히 그들의 선택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가 차별이어서는 안 된다. 


"주체는 개별성으로 인식되지만, 타자는 집단으로 지칭된다." 작가 스테파니 스탈이 한 말이다. 이 두 책을 통해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다양한 이야기를 발견하고, 이들이 가지고 있을 다른 이야기들을 상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글. 오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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